[Opinion] 댄서들의 이유 있는 자신감 - 스트릿 우먼 파이터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1.09.0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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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타 공인 경연 프로그램 ‘덕후’다. 초등학교 시절, 케이블 TV가 나오던 할머니 댁에서 본 ‘도전 슈퍼모델’이 시작이었다. 늦은 밤, 얼른 자러 가라는 할머니 몰래 소리를 줄이고 숨죽여 보던 프로그램. 졸음이 몰려와 몇 분 보는 게 다였지만, 강렬한 인상이 남았다. 맹렬한 경쟁 속 자신만만한 참가자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그 후로 패션부터 음악, 요리, 시각예술까지 다양한 분야의 경연 프로그램과 함께 자랐다. 인기가 빵 터지는 프로그램은 친구, 가족들과 함께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며 보는 재미로,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은 프로그램은 남몰래 좋은 것을 혼자 간직하는 느낌으로 즐겼다.


어떤 주제이건 경연 프로그램의 문법이 너무 익숙해진 ‘고인 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서바이벌이라면 고일대로 고인 나를 사로잡은 프로그램이 있다. 요즘 내 한 주의 시작점을 화요일로 만든 바로 그 프로그램. Mnet의 ‘스트릿 우먼 파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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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주인공은 여성 댄서들이다. 블랙핑크, 있지(ITZY), 청하 등 유명 아이돌의 안무가, 세계 유수의 댄스 경연 대회 우승자, 국가대표 B-girl 등 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댄서들이 모두 등장한다.


하지만 개인전은 아니다. 그들이 속한 8개 댄스 크루들 간의 경쟁으로 진행된다. 팀별로 한 명씩 나와 각자의 춤 실력으로 경쟁이 진행되지만, 점수는 크루 단위로 돌아간다.


하나의 팀으로 함께 발맞춰 춤을 추는 ‘크루’. 크루의 이름으로 무대에 오른다는 점이 이 프로그램에 가장 몰입하게 하는 지점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팀플레이를 떠올리게 한다.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과정, 그 시간 속에 스며드는 우정과 동질감, 소속감. 그와 동시에 크고 작은 오해와 끊이지 않은 갈등들.


그래서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키워드를 이렇게 정해보기로 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성’으로.

 

 

 

마주 보고 추는 춤


 

 

  

지난주, 많은 이에게 감동을 전해준 두 사람이 있다. 홀리뱅 크루의 ‘허니제이’와 코카N버터 크루의 ‘리헤이’다. 두 크루의 리더끼리 맞붙는다는 소리에 스테이지가 뜨거워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과거 허니제이와 리헤이는 같은 크루에서, 하나의 팀으로 활동했다.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동고동락했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이가 틀어졌다.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앙금이 쌓이다 못해 터져버렸고, 결국 결별을 선언했다. 구체적인 사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미운 점, 서운한 점을 꾹꾹 누르다 보면, 나중엔 왜 그랬는지 이유도 잊은 채 부정적 감정만 남는 경험은 알 것만 같다.


두 사람은 서로 SNS 친구도 끊고, 소식을 차단한 채 각자의 크루를 만들어 활동을 이어갔다. 댄서들은 둘의 결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둘이 지닌 춤 실력도 물론 출중하지만, 하나가 되어 선보인 퍼포먼스의 힘이 대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헤어짐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으리라 생각한다.


프로그램은 1화부터 허니제이와 리헤이의 갈등을 부각시켰다. 서로에 대해 말한 인터뷰를 교차로 편집하면서, 둘이 얼마나 무섭고 뜨거운 대결을 보여줄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현장의 모든 댄서들, 그리고 시청자들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던 두 사람의 배틀이 펼쳐질 시간이었다.


한 명씩 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리헤이는 귀로 들리는 음악을 눈으로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박자를 모두 잡고, 작게 쪼개 몸으로 표현하는 모습이었다. 스크린 너머로 강한 힘과 리듬감이 느껴졌다. 허니제이는 언어를 몸으로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가볍게 뛰고 움직이는데, 그 속에서 전달되는 메시지는 말로 듣는 것처럼 선명했다.


기대를 뛰어넘는 둘의 무대에 심사위원들도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결국 40초 간 동시에 춤을 추는 재대결이 이어졌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다시 음악이 재생되었고, 순간 지켜보던 모두가 깜짝 놀란 얼굴로 탄성을 질렀다.


허니제이와 리헤이,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동작으로 춤을 췄다. 마치 하나의 팀으로 구성한 무대인 것처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 등장한 이 장면은 큰 울림을 전했다. 깊어진 갈등 끝에 돌아섰지만, 함께 한 시간은 마음에도, 몸에도 새겨져 있었다.


무대가 끝난 뒤, 허니제이는 이런 말을 했다. 리헤이와 항상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춤을 췄었는데 서로를 마주 보고 춤을 추는 건 처음이라고. 나에겐 둘이 오랜 오해를 풀고, 서로를 다시 바라볼 준비가 되었다는 말처럼 들렸다. 둘은 가볍지만 진한 포옹을 나눴고, 지켜보던 코카N버터 크루원들은 오래 기다려온 눈물을 흘렸다.


방송 후, 두 사람은 사람들의 소원대로 SNS ‘맞팔’을 했다. 서로를 팔로우 하다, 별 뜻 없이 생각했었는데, 어쩐지 그만큼 어렵고도 근사한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만 이겨보겠습니다.


 


 

 

다시 마주 선 허니제이와 리헤이 만큼 인상 깊은 주인공들이 있다. 라치카 크루의 ‘피넛’과 프라우드먼 크루의 ‘립제이’이다. 이 매력적인 관계도 둘의 과거에서 출발한다.


둘은 같은 왁킹 장르의 춤을 추면서, 많은 왁킹 대회에서 1:1 대결 상대로 만났다. 두 사람 모두 최선을 다해 임했지만, 매번 립제이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고 한다. 립제이에겐 자랑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지만, 피넛에게는 분명 징크스라고 부를 수도 있는 아쉽고, 안타까운 기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넛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1:1 댄스 배틀의 상대로 립제이의 이름을 외친다. 이번에는 반드시 승리해서, 지난 아쉬움을 모두 날려버리겠다고 말한다. 왁킹의 황제라는 립제이를 당당히 호명한 피넛, 모두가 놀라움과 기대감에 환호했다.


피넛은 열정과 노력이 한가득 담긴 춤을 보여줬다. 평생 데뷔를 꿈꾸던 주인공이 마침내 무대에 선 뮤지컬의 엔딩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간절한 마음과 성실하게 준비해온 시간이 눈에 그려지는 무대였다. 연이어 같은 곡에 춤을 추는 립제이는 역시 대단했다. 우열을 가릴 수 없어 재대결이 진행되었고, 함께 춤을 추는 둘은 꼭 한 팀 같았다.


결과는 이번에도 립제이의 승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누구도 아쉬운 얼굴이 아니었다. 피넛은 처음에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듯, 최선을 다해 멋지게 승리했다. 비록 승부에선 패배했지만 감정이 뛰어오르는 듯한 역동적인 무대는 그 어떤 것보다 인상적이었다. 불타는 듯한 열정, 그리고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상대를 지목하는 용기와 자신감으로 피넛이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한 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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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크루 간의 관계성만큼, 하나의 크루 안에서 나누는 마음은 감동적이었다. 같은 크루 원들이 서로 응원하고, 힘을 실어주는 모습은 전혀 관계없는 나까지 같은 팀원인 것처럼 뭉클한 마음이 들게 했다.


원트 크루의 ‘효진초이’와 ‘채연’이 그랬다. 채연은 아이돌 그룹 출신으로 그룹 안에서 춤을 잘 추기로 유명한 멤버이지만, 댄서들과는 다른 영역이란 이유로 존중받지 못했다. 의기소침해진 채연을 본 효진초이는 ‘넌 어딜 가나 주목받을 팔자야’, ‘채연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따뜻한 말로 채연을 품어주었다.


라치카 크루의 ‘가비’도 같은 크루원인 ‘시미즈’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자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우리 시미즈가 제일 잘했고, 칭찬 제일 많이 받았어, 그럼 된 거야.’ 말하며 그를 감싼다.


크루 간 점수를 놓고 싸우는 무대를 앞두고서, 무조건 이기고 오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편하게 해, 즐기고 와, 지금도 잘하고 있어, 최고야, 칭찬과 응원이 가득한 장이었다. 이기면 직접 싸운 크루원보다 더 크게 기뻐하고, 지고 돌아오면 꼭 안아주는 모습이었다. 진 사람도, 이긴 사람도 없는 경쟁 같았다.

 

 

 

더 많은 이야기를 기다리며


 

놀라운 사실이 있다. 이 많은 이야기가 2화까지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미처 담지 못한 매력적인 댄서와 크루들의 이야기도 한가득이다. 그리고 가장 설레는 건,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았다는 점이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단순한 경쟁, 경연의 의미를 넘어섰다. 댄서들은 그들의 일이자 취미인 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수많은 땀으로 만들어낸 결과를 멋지게 선보인다. 그들의 이유 있는 자신감, 화요일 저녁 직접 만나보길 바란다.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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