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낯선 미술관을 한 겹 벗겨내다 - 벌거벗은 미술관

글 입력 2021.09.05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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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수업 중 은사님께서 '그 시대의 트렌드를 알려면 그 시대의 광고를 보라'는 이야기를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아야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어야 하며, 동시에 홍보하고자 하는 대상을 자세히 드러내고자 노력하는 광고에는 그 당시의 트렌드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는 다시 말하자면 그 시대의 트렌드를 안다면 광고가 보다 이해 깊게 다가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연경 선수가 등장하는 광고에서 '식빵'을 왜 외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광고는 순식간에 재미없고 흥미 없는 광고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광고에서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화요소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역사 유적지는 그 장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아는 사람들에게 더 뜻깊게 다가올 것이고, 소설은 작가의 생애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 작가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준다.


미술관과 박물관에 장벽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최근에는 참여형 전시가 늘어나고 있어 이전보다는 친숙하게 느껴지지만 그런데도 전시 관람을 남녀노소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로는 엄숙한 분위기와 낯섦 등등이 있겠지만, 그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미술은 요즘 시대에 '아는 만큼 보인다'의 대표적인 예시이기 때문이다.

 

미술은 시대상을 확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사진도 없던 시절 시각적인 기록은 전부 미술 작품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사회는 조각가와 화가들의 손에 담겼다. 하지만 그 사회와 에피소드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잘 그린 그림'에서 그칠 뿐이다. 그림 속 인물이 누구인지, 어떤 상황인지,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모른다면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미술에 흥미가 많지 않은 사람들이 미술 전시회를 보기 위해 그 많은 양의 미술사를 전부 공부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벌거벗은 미술관'은 미술에 대해 전무한 사람도 쉽게 흥미를 느끼고 미술관에 첫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친절히 도와준다.

 

 

벌거벗은미술관_입체띠지.jpg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특히 즐거웠던 점은 제목이 '벌거벗은 미술관'인 것처럼, 미술에 대해 무지한 우리가 당연하게 하고 있었을 법한 착각이나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우리의 일상과 연관 지어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단순히 시간순서의 역사와 함께 설명하지 않고, '의외'라고 생각할 만큼 생소한 관점에서 미술을 설명해준다.


입시 미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석고상일 것이다. 도보 15분 거리에 있을법한 미술학원에 석고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는 왜 석고상을 입시 미술의 첫 단계로 시작할까?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일까? 그냥 그리기 쉬워서? 혹은 고전의 정수이기 때문일까.

 

제1장 '고전은 없다'에서는 바로 이런 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어째서 고전 작품을 입시 미술에서 만나게 되었는지에서 시작하는 이번 장은 점차 그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 사회, 그리스의 작품들이 다른 곳에 미친 영향, 이것이 담긴 의미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이후 2장 '문명의 표정'에서는 우리가 평소 보는 미술 작품의 '표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품 속 표정에 대한 의문은 많은 사람이 한 번쯤 가졌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되다 지난달 종료된 전시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를 관람했을 때에도 나는 지나가던 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부모님께 초상화 속 표정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것을 기억한다. 왜 저 아저씨들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느냐는 물음에 나 또한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만 속으로 간단하게 생각하다 작품 설명에 표정과 관련된 내용이 있으면 유심히 읽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초상화 속 인물에 집중했던 전시 작품 설명에 추가로 알아보고 싶다고 느꼈었기 때문에, 미술 작품 속 표정에 대해 보다 자세히 이해하기 더없이 좋았다.


3장 '반전의 박물관'에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박물관을 향한 신성한 이미지를 유쾌하게 무너트렸다. 신성하게만 여겨졌던 미술관과 박물관에 약탈과 부정적인 역사가 있었는지를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미술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교양있는 사람들'에서 거리가 먼 '놀고먹고 자기만 하는 한량들'이 어떻게 미술관과 박물관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는지도 소개한다. 즉, 우리가 평소에 가진 이미지의 반전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4장 '미술과 팬더믹'에서는 현재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유사한 역사로 자주 언급되는 흑사병과 관련된 작품들을 소개하며 코로나 팬더믹과 연관 짓고 이 책은 마무리 지어진다.


앞서 이야기했듯 미술관은 어렵고, 신성스럽고, 진중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미술관의 이미지들을 한 겹씩 벗겨낸다. 어려움을 벗겨내고, 신성스러움을 벗겨내고, 진중함을 벗겨낸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느새 벌거벗은 미술관이 눈앞에 존재하게 된다.


어렵게 느껴지는 미술에 대해 교양을 쌓고 싶다면, 하지만 역사 공부를 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든다면 이 책으로 미술에 한 발자국 다가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체의 미술관을 마주하고 나면 어느새 '별거 아니잖아' 생각이 들며 점차 미술에 다가갈 용기가 생길 것이다.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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