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난 줄을 잘 타거든. 나는 자유다." -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

글 입력 2021.09.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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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은 광대생각 창작연희극으로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현실을 동화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아동극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첫 상연 후 아이가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우울한 사건(단어)가 많이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 공연을 관람하는 도중 관객석에 많이 앉아 있던 어린아이들이 웃으며 극을 집중력 있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자, 아이들은 무조건 행복한 이야기만을 원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공연 시작 전에 시놉시스를 읽어보기는 했지만,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와 왜 ‘아프리카 도마뱀’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그래서 이 두 가지의 의문에 대해 해답을 얻는데 집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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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칠삭둥이이다. 남들은 열 달이 걸려 나오는데, 아이는 일곱 달 만에 세상에 나왔다. 아이가 칠삭둥이라는 사실은 아이가 이 세상의 누구보다 줄과 연결되어 있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 한다는 성격을 나타낸다. (동시에 여자씨가 임신 사실을 숨기려고 복대를 강하게 동여맨 것도 원인임) 우리는 모두 엄마와의 연결고리였던 탯줄을 끊으면서 태어난다. 이 극은 엄마라는 창구를 통해 태어나는 것이 아닌, 탯줄을 끊으면서 태어남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도 이 극의 중요 기제가 ‘줄’임을 알 수 있다. 탯줄을 통해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기 전부터 줄에 얽매여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며, 죽기 전까지 계속해서 줄을 번갈아 타며 결단코 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감을 강조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인간이다. 여기서 ‘일반적’이라는 단어는 특정한 개체로 비유되는 아이와의 대비되는, 또한 대부분이 생각하는 가치관을 가짐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이는 다르다. 아이는 탯줄을 끊는 순간 “자유다!”라고 말한다. 탯줄을 끊어내는 게 시원하고 자유라는 생각에 기쁘단다. 충격적이다. 이 대사가 이 극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후에 아이는 자신이 타고 놀던 줄에서 발을 떼고 세상에 있는 줄을 밟으러 내려오지만, 아이는  줄에 접근하는 태도 자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는 줄에서 어떻게 타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줄에 구속되는 사람들과 달리, 그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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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도마뱀의 꼬리를 들고 있는 아이의 모습)

 

 

태어난 아기는 무대 상의 한계로 ‘인형’으로 표현되고, 그 인형을 두 명의 여성 출연자가 꼭두각시 인형처럼 움직이고 아기의 목소리를 낸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된 것이 실제의 아기보다 더욱 생동감 있을 뿐 아니라, 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특히, 아이가 머리칼을 날리며 순간적으로 쌩하며 달리는 부분은 정말 역동적이었으며, 이 형상을 통해 이 아이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자유로운 상태에 있음이 다시금 강조되었다.

 

어미인 여자씨가 죽자, 아이는 그대로 세상에 방치된다. 그러던 중 팔려 가다 탈출한 아프리카 도마뱀이 우연히 아이를 발견한다. 그런데, 그 순간 아이가 아프리카 도마뱀의 꼬리를 뚝 떼어 뺏어 버린다. 아프리카 도마뱀은 깜짝 놀라 꼬리를 돌려달라고 하지만, 아이는 엄마 아빠를 찾아주면 돌려주겠다고 떼를 쓴다. 결국, 아프리카로 가는 것이 목적이었던 도마뱀은 아이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아이의 부모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여자씨는 죽어서 용궁으로 간 것으로 표현된다. 이 장면은 심청전을 떠올리게 하는데, 전통적인 우리의 사후 세계관 중 하나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용궁에 도착한 여자씨는 순간적인 충동으로 인한 자살로 인해 세상에 던져진 자신의 아이를 걱정하고, 이에 용왕에게 자신을 살려달라고 말한다. 용왕은 인간으로 환생시켜 주려고 하지만, 삼신 할매의 반대에 의해 무산된다. 결국, 여자씨는 자신이 환생하고 싶은 동물이었던 티라노사우루스와 비슷한 것으로 환생하게 된다. 그것이 “아프리카 도마뱀”이었다.

 

아이의 부모를 찾아주던 과정 속에서, 아프리카 도마뱀은 자신이 여자씨였음을 자각하게 된다. 삼신할매가 아이와 여자씨를 (줄로) 이어주기 위해서 도마뱀 몸에 긴 꼬리를 달아주었다고 한다. 즉, 아이가 도마뱀의 꼬리를 훔쳐가 소유함으로써 여자씨가 살아서 이어지지 못했던 아이와 여자씨의 인연이 이어지게 된다. 본 극에서 줄이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 유일한 순간이다. 이제 아이는 아프리카 도마뱀에게 꼬리를 돌려준다. 아프리카 도마뱀은 자신은 이제 떠난다고 한다. 아프리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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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카리프아”

 


의미 없는 이 단어들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언급한다. “카리프아”는 단순히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뒤에서부터 읽는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가 갖는 공간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았을 때, 카리프아는 이 극의 사건이 일어나는 현실 세계인 서울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은 특정 지역성이 아닌,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문명화된 사회를 의미함)

 

본디 아프리카 도마뱀은 꼬리가 다시 나는 동물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꼬리를 아이에게로부터 돌려받기 위해 자신의 여정을 중단했다. 이 꼬리는 아프리카 도마뱀의 꼬리의 본래적인 기능인 균형으로서가 아닌, 인연의 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난 이렇게 줄에만 매달려 있어?”

 

“너는 이제 가야지. 땅에 발을 데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난 줄에만 매달려 있어봤지 땅은 쳐다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고"

 

"그건 땅에 보이지 않는 줄이 하도 많아서 그런 거고. 

줄에 걸리지 말고 타고 놀아라."

 

"난 줄을 잘 타거든. 나는 자유다."

 


아프리카 도마뱀은 아프리카로 향하기 전 자신의 꼬리를 아이에게 준다.

 

 

“길 가다 어지러울 때 꼬리 없는 너에게 이 꼬리가 균형을 잡아 줄 거다”

 


이 말을 통해 처음부터 아이가 도마뱀의 꼬리를 훔쳐 간 것은 앞서 말한 인연을 잇는 수단이었음의 원인도 있지만, 세상사에서 벗어나 줄을 타고 있던 아이가 세상의 줄을 타게 되는 데 있어 필요했던 균형을 구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프리카는 세상만사가 복잡한 서울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장소이다. 아프리카 도마뱀의 서식지는 원래 아프리카이다. 즉, 아프리카는 자신이 살아야 되는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반대로 아이는 자신이 살아야 되는 세계가 발을 딛고 있지 않았고, 줄을 타고 타고 있었다.

 

아이는 도마뱀과의 여정을 통해 그 줄에서 발을 떼고 내려와 땅으로 내려오게 된다. 즉, 극의 결말은 각자가 속해야 하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기 전후의 그들은 동일하지 않다. 그들은 성장했으며, 그곳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안다.

 

무대 위에서 남성 출연자와 여성 출연자의 성 구분이 없다. 여성 출연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출연자가 여자씨를 연기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젠더 프리 형식이라고 생각했으나,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특정한 등장인물인 아이, 여자씨, 남자씨 모두 이름 명사가 개체성이 아닌 보편성을 띠고 있다. 이 보편성을 동시에 익명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성별의 경계도 무너뜨리고 있다. 이것을 통해 성별, 나이 등 어떤 조건에 상관없이 모두가 줄타며 살아가는 인생임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극을 보고 난 뒤 우리는 수동적으로 줄을 타던 모습이 아닌 주체적으로 줄을 타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은 동물과 위버멘쉬 사이에 걸린 줄을 타는 광대”라고 말한다. 위베멘쉬(Übermensch, 초인)는 남이 정해놓은 선악의 기준이 아닌, 자신이 정한 선악의 가치에 따라서 사는 사람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가치관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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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한민국 전통연희 축제 추진 위원회)

 

 

줄을 타는 것은 크나큰 모험이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태이다. 줄을 타는 사람들을 보면 부채로 살살 바람을 일으켜 가며 균형을 잡는다. 부채로 일어난 바람은 그 자신이 만든 것이다. 즉, 자신이 나아갈 방향의 환경을 구축해 나가며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창조를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는 사람이기에.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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