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그리는 예술의 모양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9.0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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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요일 아침이면 밤새 쏟아진 메일함에서 뉴스레터 하나를 끄집어낸다. 아르떼365라는 발신자에게서 온 소식이다. 아르떼365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웹진인데, 예술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이야기를 뉴스레터로 전달한다. 구독한 지 꽤 되었음에도 잘 들여다보지 않다가 교육에 관심이 생긴 후로 꼼꼼히 챙기게 되었다.


8월의 주제는 '장벽 없는 문화예술교육'이었다. 장애인의 예술교육을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 각기 고민을 담은 글들 사이에서 '감각 번역'에 대해 말하는 글을 발굴했다. 안희제 작가의 <종합에서 대체로, 감각의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글이었다. 출근길 지하철 속에서 이리저리 쏠리면서도 몇 번이고 손을 고쳐 쥐어 다시 읽게 되던 내용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꼭 찾아 읽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옮기지 않겠다.


글의 요지는 하나의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번역하게 된다면, 예술에서 더욱 다층적인 경험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시각을 촉각으로, 혹은 청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이와 같은 시도는 이미 많은 공간에 도입되어 있다. 시각예술 전시에서 만질 수 있는 전시모형을 준비하고 QR코드로 음성 해설을 서비스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서비스들을 눈여겨봤다면 제공되는 서비스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 역시 알 수 있다. 드넓은 전시장에서 손에 꼽을 만큼의 작품을 다루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체면 정도 차렸다는 것처럼.


이 글이 인상적이었던 건 단순히 그런 서비스를 짚는 것을 넘어 이 과정을 '감각 번역'이라 정의한 것이다. 특정 대상을 위해 배려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예술을 자신의 주 감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새롭게 접근하게 한다는 뉘앙스의 '번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번역은 배려가 아니라 소통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니 이러한 단어의 전환은 예술이 어떻게 다양한 감각으로 소통할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2.


8월 내내 이 생각을 가슴에 품고 다니며 다양한 이야기를 만났다. 예술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 교육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다른 감각으로 접근하는 예술 자체가 흥미로웠다. 보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으로서 눈이 아닌 감각은 어떤 모양을 그릴 수 있을지가 가장 궁금했다. 시각장애 어린이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해본 적 있다는 선생님과 대화해보기도 했고, 지금까지 있었던 시각장애 대상 전시를 찾아보기도 했다. 하루는 갤러리를 뒤적거리다 나의 보잘것없는 감각에 머쓱해졌던 날을 상기했다. 갤러리조선에서 열렸던 《나의 체셔 고양이 그리고 히말라야로부터》전에서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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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 <안구건조증>, 2020

 

 

전시에서 김윤하 작가는 시각장애인용 점자 블럭을 전시장 곳곳에 늘어놓았다. 보행에 도움을 주는 도구가 길을 가는 방향이 아니라 구석진 곳에 내팽개쳐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 근처에 <안구건조증>(2020)이라는 영상을 재생시킨다. 지하철에서 접한 시각장애인의 목소리로부터 '본다'는 것을 고찰하는 내용이었는데—'그는 정말 보지 못하는 걸까?', '나는 정말 보고 있는 걸까?'—, 작가의 사유를 따라 현실과 가상의 이미지가 교차된다. 소리가 있는 영상이라 마련된 헤드셋 위로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눈을 감고 소리를 머리 속으로 그려보세요.]


눈을 감았다. 소리를 음미했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30초도 참지 못하고 눈을 떴다. 나는 그때 내 청각의 상상력이 미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는 것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본다'는 감각에는 시각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정말 보고 있는 걸까?' 작가의 고민이 어느새 내 입에서도 따라붙던 그런 날도 있었다.

 

 

3.


감각은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볼 수 있게 하는 번역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을 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한 '시각장애인과 함께 하는 갤러리 토크 : 이야기의 모양'을 보게 되었다. 《호민과 재환》전과 연계한 온라인 작품감상 프로그램인데 두 사람이 나와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눈다. 별생각 없이 틀었던 영상에 금방 빠져들기 시작했다. 재미있기까지 했다. 정말 재미있었다.


 

이야기는 어떤 모양일까요? 복잡다단한 삶을 언어로 전달하는 이야기는 과연 어떤 모양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미술관에는 다양한 모양의 작품들이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술관에서 시각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이야기들의 모양들은 시각장애인 여러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야기의 모양>은 이러한 질문을 함께 고민하고자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함께 전시를 감상하는 시간입니다.

 

 — '시각장애인과 함께 하는 갤러리 토크 : 이야기의 모양' 영상 내레이션 중에서

 

 

영상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호민과 재환》전에 대해 간략히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전시는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는 미술작가 주재환과 <신과 함께> 등으로 유명한 웹툰작가 주호민이 각자의 매체에서 어떻게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지, 그리고 서로의 작품 세계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조망한다. 부자 사이인 두 작가의 교차점이 흥미로운 전시다.


이 전시를 바탕으로 구성한 '이야기의 모양'은 전시의 섹션마다 20분씩 할애한 세 편짜리의 영상이다. 진행은 시각장애인 심준구 방송인과 비시각장애인 성연진 미술강사가 맡았다. 이들은 전시 입구에서부터 출발해 작품들을 탐험하기 시작한다. 성연진 선생님이 작품을 소개하면 심준구 선생님의 흥미로운 질문과 해석으로 대화가 핑퐁 되는 식이었다. 라디오를 틀어놓은 것처럼 선선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침대에 누워 편한 자세로 들었다.


감상자는 소리만 듣거나, 영상 화면을 같이 보는 방식 중 편한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선생님들의 얼굴이나 전시 전경, 이미지 자료가 나와 화면을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말로도 전부 설명하기 때문에 굳이 보지 않아도 된다. 눈을 감고도 재미있다는 몇 댓글을 보고 나도 눈을 감아보기로 했다.


전시실 입구에 도착한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고 눈을 감는다. 목소리가 그리는 형태를 따라간다. 입구를 지나 첫 번째로 맞이하는 작품은 부자가 서로를 그린 초상이다. 성연진 선생님은 이들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로 말문을 연다. 그리고 크기가 얼마인지, 재료는 무엇인지, 전체적인 작품의 생김새가 어떠한지 그려낸 후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작품을 훑어낸다.


 
"동그렇게 머리를 그리고 좌우 양쪽에 작은 동그라미로 귀를 표현했고, 얼굴 아래로는 좁고 긴 목에 얼굴 폭의 반 정도로 아담하고 둥근 어깨를 그렸습니다. 인물의 얼굴 중앙에는 소프트아이스크림콘 모양의 플라스틱 장난감을 콘 쪽이 위로 가게 거꾸로 붙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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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환, <호민초상>.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시각장애인과 함께 하는 갤러리 토크 : 이야기의 모양' 캡처.

 

 

형태를 그대로 덧그릴 수 있을 만큼 디테일한 설명이 놀라웠다. "어떤 모습일지 모양이 그려지시나요?" 하는 말에 눈을 떠보니 얼추 비슷했다. 실물에 가깝게 보기 위해서 심준구 선생님이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 사이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범람한다. 작가의 세계관, 주로 쓰는 재료, 일화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내 작품이 만들어진 맥락을 되짚으며 나름의 의미를 찾아가 작품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가끔은 정확한 묘사를 위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내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새로운 감상이 나오기도 했다. 주재환 작가 작품 속 '내 돈'이라는 집착적인 문구의 반복이 '돈 내'로 읽힐 수도 있지 않냐는 심준구 선생님의 말은 시각적인 자극에 묻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콕콕 찔렀다.

 

단순하면서 기발한 형태의 작품이 많긴 했지만 설명을 들어도 그려내기 어려운 작품도 있었다. 영상에서 소개하는 모든 작품은 맞춤형 촉각 교구가 있어 이를 보완했다. 종이나 끈 같은 일상의 재료를 활용해 올록볼록한 교구를 만들어 만져볼 수 있게 했다. 아예 몸의 감각을 이용하기도 한다. 주재환 작가의 <귀찮아>(1998-2020)는 종이에 얼굴을 그린 후 집게로 눈, 귀, 정수리 등 여덟 군데를 집은 작품인데 직접 손을 이용해서 스스로의 입술과 눈꺼풀을 꼬집어 작품을 특별하게 체험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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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스크롤 촉각 교구.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시각장애인과 함께 하는 갤러리 토크 : 이야기의 모양' 캡처.

 

 

촉각 교구의 목적이 작품을 완벽히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형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수준으로 만족한다는 점도 좋았다. 가장 신선했던 것은 스크롤로 보는 웹툰의 연출 방식을 느껴보도록 한 것이다. 비닐 위에 만화의 컷을 표현하는 천을 붙이고 조금씩 비닐을 위로 움직여 칸의 여백에서 나오는 긴장감을 손으로 느껴보게 했다. 시각을 주로 이용하는 웹툰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지 않을까 싶었다. 별것 아니어 보이지만 그 별것을 지금까지 거의 해오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말로 전해 들어 구현한 상상과 실제의 격차를 그렇게 손을 이용해 줄여가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성연진 선생님이 서울시립미술관 교육홍보과의 김정아 큐레이터와 함께 기획한 것이라고 한다. 영상 녹화 전 시각장애인들을 미술관으로 초대해 사전 워크숍을 진행하며 직접 교구와 경험을 개발했다. 편안하게 들리는 영상이지만 집중해서 듣다 보면 단어 선택 하나하나 세심히 신경 썼다는 생각이 든다. 감각을 이용해 차근차근 더듬어 각자의 이미지를 조형해내기 위해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어디까지 설명할 것인가를 치밀히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일방적으로 이해하라고 무책임한 설명을 던지는 것을 뛰어넘어 같이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쉽게 보고 빠르게 판단했던 나에게는 시각장애를 가진 심준구 선생님의 감각들에서 깨닫게 되는 신선함이 많았다. 더불어 성연진 선생님이 차분히 짚어가는 예술의 형태를 들으며 적당한 속도로 작품을 음미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이 영상은 비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영상도,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영상도 아니다. 영상의 초반 내레이션처럼 이 두 주체가 모여 함께 전시를 감상하고 대화하는 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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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이들.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시각장애인과 함께 하는 갤러리 토크 : 이야기의 모양' 캡처.


 

만든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며 끝나는 영상을 보며 이 프로그램이 감각 번역의 좋은 예가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호민과 재환》전이 웹툰이라는 매체를 미술관으로 끌어와 대중들과 폭넓게 예술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를 말한다는 점에서 참 좋은 기획이었다. 최근 접했던 예술교육이나 도슨트 프로그램 중 가장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두 선생님은 각자의 소감을 전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이야기의 모양보다, 작품이 제각각의 모양으로 전달하는 이야기를 각자의 마음속에 어떻게 그리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이다. 여기에 나는 그 각기 다른 모양들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이고 싶다. 다양한 감각으로 작품을 경험한 주체들이 서로의 모양을 주고받는 일. 감각을 번역하는 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 소통일 테니까.

 

코로나로 더욱 불이 붙기는 했으나, 오프라인의 정적인 공간을 벗어나려는 욕망으로 미술관은 고립된 형태를 허물어가고 있다. 그렇게 허물어진 미술관에 여러 감각들이 생생하기를 바란다. 이런 시도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촘촘한 감각 번역으로 '본다'는 것의 다양한 의미를 공유할 사람들이, 서로의 예술의 모양을 재잘대며 미술관을 가득 채우길 바란다.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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