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명, 빛을 모으다 [영화]

영화 <1917>의 조명
글 입력 2021.09.0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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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작은 촬영을 하나 마무리한 적이 있다. 물론 장편 영화를 제작하는 프로들의 현장에서 볼 때 나름의 취미 활동 이상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마추어라고 해서 고민 없이 그냥 찍으라는 법은 없다, 이번 촬영에도 고민과 어려움은 분명 존재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조명'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 사실 과거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 적에는 오히려 고민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던 것이 조명이었다. 그저 낮에는 해가 떠 있고 밤에는 가로등을 비롯한 여러 불빛이 있으니 충분하지 않을까 했던 어이없는 사고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부끄러움을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후 영화 속 단순한 빛 한 줄기조차 쉽게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 여름의 말미에는 더욱 더 그러했다.

 

그리고 이를 돌아보며 존경심에 떠오른 영화가 하나 있었다. 샘 멘데스 감독의 작품 <1917, 2019>이다. 사실 국내의 경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2019>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겨뤘다는 점에서 해당 작품이 조금 더 많이 언급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이 영화는 음향효과상과 더불어 아카데미 촬영상과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훌륭한 작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영광에 지대한 역할을 한 요소로 '조명'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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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일까, 영화는 중반부 밤을 배경으로 전환되며 영상미는 절정을 맞이한다. 일시에 어둠을 밝힌 '조명탄'이 그 시발점일 것이다. 이런 어둠 속, 적병을 무찌른 후 기절해있던 스코필드가 눈을 뜬다. 그의 눈 속 비치는 것은 폐허가 된 마을의 잔해와 묵직한 그림자, 큰불이 난 듯 저편 너머 치솟은 채로 일렁거리는 빛무리와 연기이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총성에 그는 앞으로 달려 나간다.

 

누가 보더라도 이 장면의 시간적 배경은 밤이며 해당 공간은 망가진 채 불타는 폐허이다. 또한 홀로 명령을 완수하고자 적진을 가로지르는 스코필드의 숨 가쁜 질주와 거친 호흡, 그런 그를 뒤쫓는 독일 군의 총성과 육성이 뒤섞인다. 그리고 무거운 긴장감을 고조하듯 스코필드의 시선 속 주황 빛 화염과 그로 인한 그림자가 부서진 외벽 위 흔들거린다.


그러나 사실 이 장면에는 비법이 있다. 이 모든 것이 CG일 뿐이라거나 자연적인 빛을 배제했다는 말이 아니다. 영화의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는 'BRITISH CINEMATOGRAPHER'와의 인터뷰에서 자연광을 위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말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품이 조명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중반부의 명장면에는 오히려 조명의 활용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1917, 2019>은 카메라와 조명을 통해 인물의 감정과 위기감, 그리고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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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해당 배경을 불길하게 뒤덮었던 화염이 조명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을 속 중앙 프레임을 대부분 차지하며 불타올랐던 교회마저 조명의 불빛으로 완성된 작업물이다.

 

로저 디킨스는 화염 속에 뒤덮인 교회를 표현하고자 동원된 장비의 크기가 약 167 제곱미터였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 장면을 위해 사용된 1K 전구가 2,000개에 달했다고 하며, 이를 컴퓨터로 제어하여 빛을 만들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작업이었던 셈이다.


또한 열기로 인해 카메라에 담긴 일렁거림은 텅스텐 조명의 열기일 것이다. 해당 촬영을 위해 벽을 뒤덮은 조명은 텅스텐 조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장비는 LED 조명과 달리 뜨거운 열을 발산한다. 실제로 사용 시 열을 식혀줘야 한다. 더해 많은 전기를 끌어와야 하기에 불편함이 따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만큼 깊고 강한 빛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영화 <1917, 2019>은 이런 텅스텐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실제 불과 같은 색을 만들고 열기의 일렁임을 기술적으로 제작했던 것이다. 조명의 미학, 빛의 미학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영화 속 빛의 모습은 언제나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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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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