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응답하라, 나의 80년대여 [영화]

가장 찬란한 순간, 우리는 하나였다 - 영화 <써니>
글 입력 2021.08.2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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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마음이 몽글몽글하면서도 피식 웃게 되는 에피소드가 있다. 고등학생 때였다.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서 친구와 수다 떨고 있었는데, 한 정류장에서 엄마가 탔다. 반가운 마음에 "엄마~~"하고 불렀다. 순간 엄마를 비롯한 아주머니 몇몇 분이 뒤를 돌아보셨다.

 

그때는 '그저 나를 지나쳐가는 아주머니도 누군가의 어머니일 수도 있겠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그들이 '엄마'라는 호칭에 참 익숙해져 있구나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우리 엄마도 이름보다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 불린 세월이 더 길다. 외가댁에나 가야 성을 제외한 엄마의 이름을 들을 수 있다. 엄마는 결혼 후 일상 속에서 엄마의 이름으로 존재한 적이 얼마나 될까. 내가 알바를 하고, 화장품 이것저것을 찍어 바르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러 예쁜 카페를 찾는 것처럼, 우리 엄마에게도 빛나는 20대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우리 엄마는 예쁘지만 말이다.

 

영화 <써니>가 바로 우리네 엄마들의 이야기다. <써니>는 “가장 찬란한 순간, 우리는 하나였다”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2011년 5월 4일에 개봉했다. 고등학생 시절, 7공주 '써니'의 멤버였던 주인공 ‘나미’는 고등학생 딸과 성공한 사업가 남편을 둔 주부이지만 한편으로는 공허함을 느낀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써니의 중심이자 리더였던 ‘춘화’와 다시 만나게 되었고, 중년의 나이에 뿔뿔이 흩어진 써니 멤버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개봉 첫날 할리우드 볼록버스터인 ‘토르’와 ‘소스코드’에 밀리며 3위로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어린이날 다음 날인 5월 6일부터는 두 영화를 제치고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했다. 순 제작비가 40억 원에 불과한 작은 영화였음에도 개봉 한 달 만에 300만 관객을 달성했으며, 결국 많은 호평 속에서 736만이 넘는 기염을 토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 배우들이 전면에 등장했던 <써니>가 큰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해보기를,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학창 시절 친구들 간의 우정을 그렸다는 것이다. 10대 시절을 보내고 있거나, 혹은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두 번째는 정치적 소용돌이 그 자체였던 80년대 한국의 상황을 무겁지 않고 코믹하게 담아냄과 동시에 당시 복고적인 요소들이 70, 80 세대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파란만장한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엄마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야기다. 우리 엄마는 아직 이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본다면 눈가가 촉촉해질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엄마들의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한다.

 

 

 

가장 찬란한 순간, 우리는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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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 평점에 따르면, <써니>를 본 관람객 중에서 10대가 가장 높은 만족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써니>가 우정을 이야기하기 위해 고교 시절로 회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친구는 사는 동안 늘 중요하지만, 특히 청소년기 ‘나’의 정체성은 또래 집단에서 형성된다. <써니>의 포스터에 나와있는 캐치프레이즈, “가장 찬란한 순간, 우리는 하나였다”에도 이러한 사실이 반영되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게 빛나는 순간인 학창 시절에 ‘나’라는 개인을 ‘우리’라는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친구는 곧 ‘나’이자, ‘나’의 존재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더 나아가 남자들의 의리 넘치는 우정만이 진정한 우정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말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써니>의 일곱 멤버들은 여자 청소년들만의 의리를 표현함으로써 여자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정신적인 지지와 친밀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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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에서 예쁜 외모 덕분에 잡지 모델로 활동을 하는 얼음공주, ‘수지’는 새엄마가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라도 벌교에서 전학 온 ‘나미’를 싫어하지만, 후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며 서로 고민을 이야기하다가 울고, 껴안고 화해한다. 서로의 고민을 눈물로 보듬어 주는 두 친구의 우정은 여자 청소년들 간의 의리와 정서적 지지를 보여 준다.

 

청소년기에 형성된 진정한 우정은 써니 멤버들이 중년의 나이가 된 후에도 빛을 발한다. ‘나미’가 자신의 딸을 괴롭힌 날라리를 처단하기 위해 교복을 입고 써니 멤버들과 나서는 장면, 써니의 중심이자 ‘나미’와 재회했을 때 이미 암 말기였던 ‘춘화’가 자신이 죽고 나서 남겨질 친구들 앞으로 각기 유산을 남긴 장면 등 진정한 우정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일상이 친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청소년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라떼는 말이야, 이게 유행했어!


 

‘<써니>에 나온 80년대의 복고적인 요소들이 나를 80년대로 소환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1986년을 기본적인 시간적 배경으로 두고 있는 <써니>는 장면 곳곳에 80년대 향기가 물씬 풍기는 요소들을 적절하게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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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멤버들은 보니 엠의 ‘Sunny’에 맞춰 학교 축제 날에 춤을 추기로 했지만 결국 25년이 지나고 나서야 ‘춘화’의 장례식장에서 공연을 완성했고, ‘나미’가 짝사랑하는 대학생 오빠를 쫓아 들어갔던 다방에서는 영화 <라붐>의 명장면이 패러디되며 이 영화의 주제곡, 리처드 샌더슨의 ‘Reality’가 헤드폰에서 재생되었다. 학창 시절 누구나 한번 쯤은 해봤을 가슴 간질간질한 짝사랑의 기억을 감성적으로 회상하게 한다.

 

 

 

 

더불어 고등학교 점심시간에 방송실에서 흘러나오는 신디 로퍼의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은 여고만의 왁자지껄한 밝은 분위기를 한층 돋운다. 불량 서클 ‘소녀시대’의 리더가 써니와의 1차 맞짱에서는 ‘나미’의 신들린 욕설 연기로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날 때 소녀시대 멤버들에게 젊음의 행진 안볼거냐고 핑계를 댔는데, ‘젊음의 행진’은 1980년부터 KBS에서 방송됐던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향한 자유를 외치는 시위에서 써니 멤버들이 소녀시대와 한판 붙는 장면은 ‘우정’이 주제인 영화인만큼 어두웠던 80년대의 상황을 무겁지 않게 담아낸다. 여기에서도 조이의 ‘Touch by touch’가 흘러나오며 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나미의 집안 풍경을 보더라도 나랏돈으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공무원 아버지와 노동자들의 인권을 주장하는 운동권 오빠의 대화 장면은 웃음을 유발한다. 더불어 지금은 촌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 형형색색의 80년대 패션과 스타일링 또한 영화에 쏠쏠한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였다.

 

<써니>는 복고적인 요소들을 활용하여 80년대를 향한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그 중에서도 당시에 유행했던 팝송들을 삽입하여 사람들을 <써니>의 현장 속으로 불러들였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에 특히 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70,80 세대가 과거를 추억할 수 있었다.

 

*

 

어렸을 때 언니와 나와 동생은 엄마를 '호랑이 엄마'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 남자로 태어났다면 장군 한 자리는 꿰찼을 거라고 표현할 만큼, 엄마는 다정하기도 했지만 엄격하고 진취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50대가 된 엄마는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자식 셋이 잘못해도 예전처럼 잔소리 폭격기가 아니다. 잔소리가 적어진 점은 조금 좋지만, 엄마가 나이가 들었다는 얘기같아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찡하다.

 

그랬던 엄마가 간만에 들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멀리 사시는 친구 분이 우리집 근처로 볼 일을 처리하러 오시는 김에 오랜만에 엄마와 식사를 하기로 하셨다는 것이다. 엄마가 학창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를 반가워 하는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엄마에게 맛있는 밥집을 추천해드렸고, 다행히 엄마는 친구 분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셨다. 내가 친구를 만나는 일은 일상인데, 엄마에게는 어쩌다 한번씩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영화 <써니>를 보며, 내가 보지 못한 엄마의 학창 시절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엄마에게도 저렇게 꿈많던 소녀 시절이 있었겠지. 낭만으로 가득했던 저 시절은 엄마의 가슴 한켠에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엄마의 학창 시절이 순수함으로 빛나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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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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