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추도사 [문화 전반]

20세기라는 연극에 빠이빠이
글 입력 2021.08.1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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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Richmond Street, being blind, was a quiet street except at the hour when the Christian Brothers’ school set the boys free. 노스 리치먼드가(街)는 막다른 골목이어서 가톨릭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가 파한 후에 쏟아져 나올 때 말고는 조용했다.” - 더블리너스 중, 아라비


이 문장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문장은 우리가 학교에 입학해 듣는 첫 문학 수업의 첫 문장으로, 영국 지배하의 아일랜드에서 더 이상 아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가톨릭 학교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문장이었습니다. 이 문장 이후 이어진 일련의 수업 들에서 우리는 글을 읽는 법을 배워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동안 우리는 글 읽는 법을 하나도 몰랐다는 사실을 먼저 배우고, 그다음에 제대로 읽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죠. 첫 수업부터 그는 최고로 교육이 무능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매개로, 우리에게 최고로 유능한 교육을 선물했던 것입니다.

 

그는 항상 학생들에게 종이 위에 쓰여 있는 글자들뿐만 아니라 그가 교수가 된 이유를 함께 전달했습니다. 그가 기계공학과도, 회화과도, 불문과도 아닌 영문과 교수가 되었어야만 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그의 수업에서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그는 영문학에 대한 순수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전염시키는 방식으로 가르쳤습니다. 그것에 전염되기 위해 학생이 충족해야 했던 최소한의 조건은 진지함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영문학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아니어도 괜찮았습니다. 사는 일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면 충분했습니다. 진지한 것이 촌스러운 것으로 취급되기 시작하던 시대에 우리는 대학을 다녔고, 우리는 교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받아 적었고, 기꺼이 진지함이라는, 또는 문학이라는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글자들은 더 이상 종이에 붙어있지 않았고, 강의실을 나와 우리의 일상 속으로 침투해갔습니다. 배우고 써먹어라. 습득한 것을 내면화하고 실천해라. 마침내 점령하라. 이것이 학문의 잃어버린 본질 아니던가요? 그것은 일종의 교리였고, 교수님은 단순한 교수자가 아니라 우리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사장으로서의 면모는 우리의 강한 저항 의지를 자극했습니다.

 

무엇에 대한 저항이었냐 하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었습니다. 느리더라도 정확한 대신 정확하지 못하더라도 빠른 단어 선택을 선호하는 것, 온전하지 못하다면 조금도 가져가지 않겠다는 도덕적 엄격함을 결벽증으로 치부해버리는 것, 이야기를 위해 잔을 채우는 대신 잔을 채우기 위해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 중요한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일이 아쉽다기보다 편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 등등…. 우리는 무엇보다 마음이 늙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고, ‘인문학이 밥 먹여주냐?’는 질문이 전제하고 있는, 인간은 밥을 먹는 존재일 뿐이라는 폭력적인 규정을 거부하려 4년간 발버둥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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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의 수업이라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그 교수라는 매체 자체에도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여유로운 농담꾼이었고, 연기자 적 유연함과 학자적 엄정함을 정확히 배분해 유머를 구사했습니다. 그 두 가지 모습의 자유로운 변환에서 은근한 성적 매력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우스워지지 않으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일은 그 유머의 종류가 아주 다양한 전략의 복합체일 때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매번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그건 듣는 이를 자신의 포로로 만들어버리는 종류의 유머였습니다. 광대의 유머가 한쪽 끝에 있다면, 다른 한쪽 끝에 그의 유머가 있었습니다.

 

선생은 선생으로서만 완벽해서는 완벽한 선생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모든 선생의 역설입니다. 선생은 가르치는 자라는 지위 안에서만 머물며 담장 너머로 학생들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는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교수님은 그 역설에 대해 너무도 잘 알아, 담장이 없는 척-그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담장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는 또 다른 문제들이 따라오니까요-우리에게 슬쩍슬쩍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학문 외에도 많은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몇몇 학우들은 그가 가끔 쓰던 어울리지 않는 갈색 뿔테 안경을 기억할 겁니다. 그 어울리지 않는 뿔테 안경은 그가 학생들에게 보여준 의외의 면모, 즉 엄격한 연구자의 모습에서 일상적인 만족감을 중시하는 친근한 인생 선배의 모습으로 미끄러져 내려올 때의 인간적인 순간을 물화한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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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지금이 되었습니다. 입을 가려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때의 그 첫 문장으로부터 15년이 지났고,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스무 살의 강의실에서 멀어졌습니다. 교수님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것은 교수님과 몸의 자유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코로나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마음이라는 숙주를 빼앗겼고, 우리가 사랑에 빠졌던 영문학과 진지함이라는 전염병은 21세기의 새로운 전염병에게 완전히 패배당했습니다.

 

코로나 훨씬 이전부터 안정성의 가치는 가능성의 가치를 밀어내었고, 세상은 좁아진 만큼 더 시끄러워졌습니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고요히 책장을 넘기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독서란 어느 정도의 단절과 고독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우린 고독마저도 점령당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고독마저도 빼앗겼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이 거리를 휩쓸어 모두를 각자의 집안으로 몰아넣은 이 시대에, 사람들은 아무리 고독해도, 아무리 공허해도, 더 이상 그것을 해결할 방편으로 문학을 찾지 않습니다. 대신 불닭볶음면을 찾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컬트적인 종교집단에 속한 바와 다름없이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저는 그런 소수의 신도들 덕분에 밥 먹고 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지만요.

 

최근에 어떤 뇌과학자는 이런 말을 했답니다. 20세기라는 현대가 시작된 시점이 1900년이 아니라 1차대전이듯, 21세기가 시작되는 지점 또한 코로나 이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죽은 교수님과 20세기라는 연극에 작별을 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다음 달에 서른보다는 마흔에 더 가까운 나이가 됩니다. 마흔은 언제나 완성태를 의미했죠. 그 시절 한 줄로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던 동기들이 모두 나름의 모양을 잘 빚어냈기를 바랍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인생의 상당 기간을 그에게 빚졌습니다. 즐거운 추억이었음에는 분명합니다. 하나 안타깝게도 이제는 우리가 막다른 골목이네요. 잘 가요, 우리의 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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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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