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몰랐던, 편집자의 세계 [도서]

글 입력 2021.08.17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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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교사이자 악마 그리고 신이었다"


- 작가 존 스타인벡이 자신의 편집자 파스칼 보비치에게 바치는 조사 中

 

 

편집자와 작가의 관계는 참으로 복잡 미묘하다.

 

가끔 작가들의 SNS를 통해 원고 마감이 다가올 때 "작가님, 이번엔 진짜 마무리하셔야 돼요."라는 편집자의 호통이 들려 무섭다는 귀여운 투정 글을 본 적이 있다. 이처럼 편집자는 최고를 위해 작가의 작품을 비평하고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가끔은 호통도 쳐야 하는 무서운 존재이다.

 

하지만 작가들에게 있어 편집자가 마냥 무섭고 피하고 싶은 존재는 아닌 듯하다. 일전에 한 북토크 행사에서 편집자와 작가가 함께 나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선 작품에 대한 애정과 '이 책에 대해 나만큼 아는 사람은 이 사람밖에 없다'라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느껴졌다. 흔한 표현처럼 만약 책이 작가의 자식이라면 편집자와 작가의 관계는 아웅다웅하며 책이란 자식을 잘 키워낸 노부부쯤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그러나 사실 많은 이들에게 있어 편집자는 미지의 존재다. 어떤 작가의 이름을 보고 책이나 잡지를 구매하는 경우는 있어도 편집자를 보고 구매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어떤 책을 읽고 난 후, 지은이의 이름은 명확히 외워도 그 책의 편집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경우도 거의 없을 것이다.

 

도서 <편집자의 세계>는 이처럼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편집자라는 직업과 그들의 세계를 15명의 명편집자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이름이 익숙한 에스콰이어, 뉴요커, 플레이보이 등의 잡지부터 헤밍웨이의 작품이 탄생하는 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공을 세운 명편집자들의 일대기를 면밀히 담고 있다.

 

 

표지(평면)_편집자의 세계.jpg

 

 

 

편집자의 하루


 

'편집자란 어떤 직업일까, 그리고 편집자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갈까?' 이런 궁금증을 품고 있다면 15명의 편집자 중 윌리엄 타그 편을 먼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윌리엄 타그는 퍼트넘의 편집국장으로 훗날 영화화되기도 한 <대부>를 비롯해 여러 베스트셀러를 편집했다.

 

타그 편에서는 그가 자신의 편집자 생활에 대해 쓴 책 <발칙한 갖가지 기쁨들>을 바탕으로 편집자가 어떤 일들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일기 형식으로 전달한다. 원고를 읽고, 미팅을 하고, 수정을 위한 피드백을 전달하고, 그 와중에 갖은 항의 전화에 대처하고, 출간을 위해 관계자들과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는 등 글만 읽는 데도 바쁘게 원고를 훑고 타이핑을 치는 편집자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책을 읽기 전까진 편집자의 업무란 원고의 출판 여부를 결정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아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쯤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런데 실제 편집자의 업무는 이뿐만 아니라 더욱 광범위했다.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고 이에 대한 교정이 끝난 후에도 편집자의 일은 계속된다.

 

책이 출간될 경우의 예상 부수와 제작비를 계산해야 하고 저작권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가늠해야 한다. 재본이나 재킷 디자인 등 책에 옷을 입히는 과정도 단연 편집자의 몫이며 책에 들어가는 저자의 사진과 약력을 편집하는 일까지 모두 편집자의 일이라고 한다.

 

편집자가 하는 업무와 그 과정을 보니 어두운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공연을 지휘하고 이끌어나가는 감독의 모습이 떠올랐다. 북토크에서 보았던 작가와 편집자 간의 끈끈한 믿음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짐작이 되었다.

 

 

 

15인의 명편집자, 그들의 공통점


 

15인의 편집자들이 어떻게 출판계에 발을 들이고 편집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길이 남을 작품들을 찾아내고 세상에 내놓았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니 그들의 공통점이 보였다. 그들에겐 좋은 작품을 찾기 위한 집요함과 이들을 더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는 긍정적인 믿음, 그리고 끊임없이 틀을 깨나가는 도전 정신이 있었다.

 

수많은 원고 사이에서 보석 같은 원고를 알아보기 위해선 분명 재능도 필요하겠지만 하나를 찾아내기 위해 수백 개가 넘는 원고들을 읽어낼 수 있는 집요함과 성실함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찾아낸 원고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기까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작가를 푸시하고 피드백을 주는 것 또한 작가와 작품이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 믿음을 바탕으로 익숙하지 않고 주류에 속하지 않는 글에 대해서도 새롭게 도전하고 범위를 확장해나갔기에 독자들이 다양한 글을 접할 수 있었으리라.

  

좋은 글을 찾아내는 그들의 안목과 이를 세상에 선보이기 위한 투자한 노력 덕분에 수많은 명작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애독자로서 아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 노력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이름에 대해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책의 저자가 표현한 대로 편집자들은 화려한 무대 뒤에 숨은 이름 없는 별들이다. 앞으로는 너무 밝은 별에 가려져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이들의 이름을 꼭 살펴보고 싶어졌다.

 

책의 저자인 고정기 선생은 책의 머리글에서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이자 자신의 작은 바람을 이야기한다. 삭막한 출판계의 현실에 대해 들어본 바가 있기에 절로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이 부분은 의미와 저자의 바람이 그대로 전달되길 바라며 머리글 일부를 그대로 옮겨 본다.

 

 

편집 일선에서 물러선 나에게 조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활자를 통한 문화 창조자인 편집자가 사회로부터 응당한 대접을 받는 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되어, 선진 외국과 같이 우리나라 편집자들도 그 노력만큼의 대우와 보수를 받는 날이 오고, 편집자들도 그 직업에 긍지를 갖고 편집자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바람직스러운 문화 창조의 정신- 에디터십 - 에 더욱 투철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 편집자의 세계 머리글


 

적지 않은 15명의 인물의 생애를 조사하고 이토록 입체적으로 기록한 책을 펴낼 수 있었음은 저자가 편집자라는 직업에 가진 지독한 애정과 그렇기에 더 발전한 환경을 기대하는 바람 덕분이리라. 전문 편집자도, 출판계 종사자도 아니지만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저자에 대한 존경을 표한다.

 

 

 

이영진.jpg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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