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잃어버리고 있는 것에 대하여,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 [공연]

글 입력 2021.08.1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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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어느 해안가 마을.


취재를 위해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사쿠라이 쇼조는 길에서 묘한 인상의 남자를 마주친다.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피투성이가 된 맨발로 남자는 위태롭게 걸어간다. 터벅거리는 발걸음에 맞추어 금붕어가 든 봉지가 흔들린다. 사쿠라이는 어딘가 찝찝한 마음에 그를 멈춰 세운다.


산책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혀 산책하는 모양새로 보이지 않는다. 남자와의 대화 역시 자꾸 겉돈다.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이 사람, 아세요?"

".....그건 금붕어예요, 사람이 아니라."

 

사쿠라이는 남자를 경찰서든 정신병원이든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차를 가져오기 위해 떠나기 전 갸우뚱한 얼굴에 사쿠라이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근데 그 금붕어,


—죽었어요."




실은 나, 외계인이야.



남자의 이름은 카세 신지. 3일간 실종되었다가 길에서 발견되어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남편인 신지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나루미는 신지가 이전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억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같다. 신지는 나루미라는 존재는 알지만 나루미가 그의 아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내가 무슨 의미인지도 어리둥절한 낌새다. 하다못해 옷을 입는 것도 대화를 나누는 것도 서툴렀다. 그리고, 그들이 이미 끝난 사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신짱이라고 부르면 싫어했잖아."


`신짱`이라는 부름에 선선히 대답하는 신지의 모습이 그녀는 혼란스럽다. 나루미는 앞으로 이 이상한 신지를 `신짱`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신짱은 그런 나루미에게 가이드를 부탁한다. 모든 것이 낯선 이 지구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듯이. 너는 내 가이드야. 잘 부탁해. 지금부터 우린 쭉 함께 있을 거야, 하고.


나루미와 신지는 그렇게 나루미와 신짱이 되어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아니, 정확하게는 신지의 몸과 기억을 차지한 외계인 신짱과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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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집단 LAS의 <산책하는 침략자>는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찾아온 외계인에 대한 연극이다. 잔인하고도 끔찍한, 그러나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닮아 있는 이 이야기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경계선의 가장 안쪽, 한 해안가 마을에서 시작한다.


신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외계인은 며칠 전 지구에 도착했다. 동료는 둘, 목적은 지구를 침략하기 위한 사전 조사를 수행하는 것이다. 조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1. 숙주가 될 몸을 찾아 침투한다. 

(세 외계인은 인간의 몸을 몰랐기 때문에 금붕어에 잘못 들어갔었다. 지금의 몸은 2번째 이상의 몸이다.) 

 이때 인간의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기억을 회로처럼 사용하여 말하고 행동(작동)한다. 따라서 신짱과 신지를 완벽히 구분하기란 어려운데, 신짱은 신지가 그렇게 할 수도 있었던 가능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신지의 영혼은 사라졌다.

 

2. 지구에서의 삶을 도와줄 수 있는 가이드를 찾는다. 상호 합의로 계약하며 가이드에게는 최대한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3. 산책한다.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나 대화한다. 대화 중 모르는 `개념`이 있으면 상대방의 머릿속에 떠올리도록 유도한다.

 

4. 침략한다. `개념`을 빼앗는다.

 


효율적인 지구 침략을 위하여 외계인이 선택한 것은 인간이 사용하는 `개념`을 수집하는 것이다. 외계인은 단어는 알고 있지만 정확한 뜻을 모르기에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말하는 개념이란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각자가 그 단어를 이해하고 있는 방식이다. 개념은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삶의 태도와 가치관, 감정, 행동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개념을 빼앗긴 인간들은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며 정도에 따라 일상적인 삶의 영위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루미의 언니인 아스미는 신짱과 대화하던 중 `동생`이라는 단어를 빼앗기게 되는데, 그녀가 동생을 사랑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루미를 포함한 혈육에 대한 애정을 모두 잃게 된다. 아스미는 그대로 아스미지만, 나루미를 이해하고 아끼던 아스미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개념은 한 번의 손짓을 통해 외계인에게 이식되며 빼앗긴 인간에게는 더는 남아있지 않는다. 그 부분만 송두리째 도려내지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많은 신짱은 호기심에 가득 차 매일 같이 밖으로 산책을 나간다. 발에 피가 나는 줄 모르고 돌아다닌다. 신짱의 발걸음이 닿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개념을 잃는 인간들이 많아진다. 마을 곳곳이 어딘가 구멍 난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린애 같던 신짱은 무서운 속도로 자라기 시작한다. 처음 모두가 신짱을 이상한 듯이 구경하던 장면은 역전되어 신짱이 망가져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극이 끝날 때쯤 신짱의 모습은 완벽할 정도로 천연덕스러운 인간이다. 깔끔한 옷차림에, 우스갯소리도 할 줄 아는, 그리고 나루미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으로. 이제 외계인이라는 말을 들어도 나루미가 잃고 싶지 않을 만큼.

 

 

 

정신 좀 차려도 돼. 너네 너무 태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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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옥상훈

 

 

이쯤에서 잠시 마루오 세이치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신짱에게 `개념`을 뺏긴 후로 거의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루오는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지쳐, 이제는 구직을 포기한 니트족이다. 사회에 분노할 기력조차 없다. 실업급여로 근근이 살아간다. 같은 직장에 다녔던 후배 하세베 와타루는 어쩌면 그의 과거 같다. 하세베는 점점 악독해지는 회사를 욕하지만, 정규직에 대한 희망을 잃지 못하고 끙끙 앓는다. 마루오는 종종 자신을 찾아오는 하세베에게 회사를 관두면 된다고 시답잖은 말을 건넬 뿐이다.


UFO를 발견하던 날, 그들은 곧 전쟁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는다. 마루오와 하세베의 가벼운 말들이 총알처럼 쏘아진다. 전쟁이 시작되면 차라리 좋은거야, 모든 것이 리셋되니까. 군대 징집? 그것도 일종의 취직이지.


그들의 대화에서는 전쟁이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 후 이 소식이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마을은 순식간에 전쟁의 분위기에 휩싸인다. 그러나 적군의 잠수함이 발견되고, 미사일이 수시로 날아다니는 소리에도 사람들은 아무런 위기감이 없다.


달라지는 것은 마루오다.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전쟁을 반대한다며 시위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집 마당을 침입한 신짱에게 `-의`라는 말을 설명하다 소유의 개념을 빼앗긴 이후부터다. 소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전과 달리 너무도 자유로운 자신을 느낀다. 전쟁도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심 때문에 있는 자들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던가? 모든 사람에게서 소유의 개념을 빼앗아 달라고 부탁하며 마루오는 신짱을 신봉한다.


국가, 재산, 인종, 종교라는 개념도 뺏는다면 어떨까?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선배는 지금 소유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걸 반대하고 있는 거라고요."


"괜찮아, 그걸 모르는 난 자유로운 걸.

그건 그 개념이 어차피 사회에 필요 없었기 때문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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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옥상훈

 

 

"정신 좀 차려도 돼. 너네 너무 태평해."


신짱의 동료 외계인 아마노는 인간들이 한심하다. 언제 침략해도 경계도 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바스러질 것 같은 지구인들의 모습에 괜한 시간을 들이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마노는 꽤 능숙하게 사고하고 행동한다. 많은 사람이 그만큼 무언가를 잃었을 것이다. 아마노는 `일가족 동반자살사건`의 생존자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료 아키라를 만나기 위해 기자인 사쿠라이를 이용할 줄도 안다. 실제로는 아키라가 인간의 몸을 탐구하겠다고 벌인 끔찍한 살인사건이었지만 말이다.


사쿠라이 역시 기자의 호기심으로 이 마을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사건의 생존자를 만나고 싶었기에 가이드로서 함께한다. 고등학생에,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아마노를 믿을 순 없었지만.


사쿠라이의 불신은 그에게 호의를 갖고 있던 아마노의 흥미로 이어진다. 못 믿겠다면 `개념`을 뺏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진 것이다. 호탕하게 웃으며 아이의 장난이라고 여겼던 사쿠라이는 의사 쿠루마다 칸지가 처절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심각성을 깨닫는다. 쿠루마다는 나와 남을 구분하는 방법을 영영 잃어버렸다.


한 번 손을 까딱하는 행위에 속절없이 망가진 인간. 외계인. 침략. 전쟁.

갑자기 모든 것들이 너무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자기가 알아챌 수 있게 사랑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인간 생존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이 연극은 특유의 분위기와 함께 반쯤 가벼운 목소리로 진행된다. 극 중에서 마루오는 전쟁이 자기와 너무 먼 얘기 같아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웃기 어려운 상황에서 종종 웃는 관객이 있던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왜 외계인으로 말하고 있는 먼 이야기가 이토록 가깝게 느껴지는 걸까.


<산책하는 침략자>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산책`과 `침략`이라는 단어의 농도가 달라 위화감이 들었다. 그러나 제목은 비유하거나 과장하지 않았다. 침략자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책하며 침투하고, 사람들은 침략당하는지도 모르고 침략 되고 있었다. 개념을 빼앗긴 사람들은 직후에 눈물이 나온다고 한다. 외계인들은 생리적인 현상일 뿐 아프지 않다고 설명한다. 아프지 않을 수 있지만,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한 애도의 눈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본인은 무엇을 잃었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영영 잃어버린 인간으로서의 어떤 것에 대한 애도일 것이다.


극 중 인물들이 잃어간 것들은 그들에게 소중한 개념이었다. 혈육에 대한 애정, 관계의 애착, 소유에 대한 갈망, 시간의 중요성, 자유, 그리고 자신과 남을 구분하는 자아. 외계인에게 뺏기기 전에 이미 인류가 잃어버린 것들도 있었다. 전쟁과 살인에 대해 둔감해진 모습과 오히려 호기심으로 소비하는 태도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무심코 지나가는 대사들에 끔찍함이 묻어난다. 현실의 우리 역시 잃어버린 줄 모르고 잃어버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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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옥상훈


 

아이러니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잃었기 때문에 괴로워했지만, 오히려 새로운 삶의 태도를 갖게 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마루오는 소유에서 해방되어 조금 다른 방향이지만 모두를 생각할 줄 알게 되었고 삶에 의욕을 가지게 되었다. 쿠루마다는 자신과 남을 구분하는 기준이 사라진 이후로 모든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자아의 붕괴라는 면에서 좋게 볼 수는 없지만 남과 같이 아파하고, 같이 행복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쿠루마다의 사례는 극 중에서 끼워 맞추기식으로 보이는 부분이 없잖아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로서 환자를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을 부수기 위해 아마노가 자아를 뺏었기 때문이다. 딱히 이기적인 행동이거나 남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상징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둘이 빼앗긴 개념은 자본주의가 불러온 폐해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로 점철된 현 사회를 비판하는 모습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연극 속의 `개념`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조금은 잃어야 하는 것들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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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옥상훈

 

 

일이 커지자 외계인들은 자기 행성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이들이 다시 돌아오는 날에 지구가 침략 될 것이다. 언제, 얼마나,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얼굴 없는 침략자들에 대한 공포가 커진다.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연극은 나루미와 신짱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침략할 마음은 있어?"

"어, 그냥... 조금?"


신짱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루미는 신짱을 놓지 못한다. 더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신지가 아니라 자신과 함께 있으며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신짱이기 때문이다. 신지의 기억을 되새겨도 지금이 훨씬 잘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에 그녀는 이기적이지만 계속 그대로-신짱으로- 있어 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원히 함께인 줄 알았던 두 사람은 돌아가겠다는 신짱의 말부터 서서히 무너진다. 지구에 남을 수도, 나루미를 데려갈 수도 없다는 사실에 신짱도 난처하다.


문득, 나루미는 `사랑`에 관해 묻는다. 우리는 소중한 것에 대해서 잘 말 못 해. 신짱은 이미 그걸 가지고 있어. 개념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을 뿐이야. 자기가 알아챌 수 있게 사랑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건 나뿐이야. 가져갔으면 좋겠어. 제발. 해줘.


빼앗기기 전부터 무섭다고 울면서도 나루미는 신짱에게 `사랑`을 알려주고 싶어 한다. 신짱이 떠나기 전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지만 솔직해지자면 같이 할 수 없다면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없애고 싶은 나루미의 욕심이다.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가장 끔찍한 형태의 복수다. 신짱이 사랑을 알게 되었을 때 나루미는 더는 사랑이 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루미의 말처럼 신짱은 신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고 있다.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나루미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서히 그녀를 사랑인지 모른 채 사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신짱은 그래서 머뭇거렸다.


사랑을 빼앗은 신짱은 하염없이 운다. 나루미의 `사랑`이 오롯이 신짱이었기 때문일 테다. 신짱은 온몸에서 사랑이라는 전율을 느낀다. 이제 다시 찾지 못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스스로 망가트렸다. 휘청거리고 부서진다.


외계인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도와달라며 사람들은 신짱을 찾아온다. 나루미는 태연히 말한다.


"잠깐만요. `신지`는 외계인이에요. 침략하는 쪽이라구요."

 

 

 

이름이 다르면 다른거야.

방어와 마래미, 신지와 신짱이 다른 것처럼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사랑으로 끝나는 이야기라니. 신짱은 침략에 대한 모든 의지를 잃은 것처럼 텅 빈 얼굴로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연극은 그렇게 끝난다. 침략마저 끝났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사랑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신지와 신짱은 다르다. 방어와 마래미가 다른 것처럼. 이름이 다르면 당연히 다른 존재인 거라는 아스미의 말이 이상하리만치 무겁게 들렸다. 나루미가 그 둘을 확실히 구별했다는 것을 신짱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 나루미에게 `신짱`이 없다는 것을 처절히 안다.


정말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이 사랑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모든 것을 뒤흔들 수 있는 위대한 것이라는 것도. 한 인간의, 외계인의,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전복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적어도 나루미의 사랑은 신짱에게 그랬을 것이다. 애초에 인간이 아니기에 어떤 일도 저지를 수 있던 외계인에게 사랑은 사랑만큼 두려움과 절망을 알려주었다. 비인간적으로 변해가는 세상에 연극이 조심스럽게 건네는 것도 사랑의 가능성이 아닐까. 외계인이 사랑을 통해 한 인간으로 완성되는 것처럼 인간의 본질은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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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짱은 종종 하늘을 올려다봤다. 처음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모습 같았는데 차츰 그 모습이 금붕어의 몸으로 인간을 바라봤을 모습과 어렴풋이 겹쳤다. 이게 이 행성의 주인이구나, 하고 거대한 몸뚱아리를 마주쳤을 때 신짱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지구라는 좁은 수조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은 외계인이 들어와서야 무언가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심각한 일들이 일어났으며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 장면의 분위기가 오래 남는 극이다. 신짱이 금붕어를 들고 바다를 서성이던 그 장면이 자꾸 생각이 나서 한 번 더 보러 갔었다. 금붕어는 바다에서 살지 못한다. 심지어 죽은 몸으로 서성여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연극이 사랑으로 세상을 감싸겠다는 말도 비슷하게 들린다. 불가능한 일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랑으로 지금의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 좀 외계인 같다(특이하다)라고 웃고 넘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면 계속 서성여보고 싶었다.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인류에게 남아있어야 하는 유일한 개념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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