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994년, 은희라는 세계에서 목격한 것 (2) [영화]

김보라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벌새>(2018), 두 번째 이야기
글 입력 2021.08.1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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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은희라는 세계에서 목격한 것> 1부와 이어집니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와

도서 <벌새,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에 등장하는

영화의 삭제된 분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워다 놓는 어른

- 새서울 의원 의사와의 관계


 

<벌새,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의 ‘작가의 말’에서 김보라 감독은 벌새의 제작기를 밝히고 있다. 감독은 모든 게 내 이야기 같았던 초고를 ‘모두의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가장 구체적일수록, 그것은 가장 보편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고.


구체적이고 섬세한 영화가 보편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구체성으로부터 각자의 시절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잊고 있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던 풍경이, 사람이 떠오르고 은희의 이야기는 곧 모두의 이야기가 될 여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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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어쩌다 고막이 찢어지게 됐니

은희: ...

의사: 진단서 필요해?

은희: 왜요?

의사: 증거가 되니까

 

 

<벌새>의 구체성은 은희뿐 아니라 은희를 둘러싸고 있었던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특히 은희가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방문하는 새서울 병원의 의사는 감독이 <벌새>에서 하나의 세계를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보여 주고자 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영화에서 은희 오빠인 대훈은 버릇처럼 은희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은희는 이 폭력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고 말한다. 은희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이를 제지해 줄 만한 사람이 있어야 했지만 부모님은 그런 역할을 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은희가 용기 내어 사실을 말하면 ‘너희 싸우지 좀 마, 진짜.’ 하고 말하며 대훈의 일방적인 폭력을 남매 간의 가벼운 다툼으로 축소해 버린다.


대훈이 은희에게 또 다시 폭력을 휘둘렀던 날 은희는 귀를 다쳤고 새서울 병원으로 향한다. 은희는 고막이 찢어진 이유에 대해 말하지 않지만 의사는 머뭇거리는 은희에게서 가정 폭력이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고막이 찢어져 병원을 찾은 것만으로 진단서를 떼어 줄지 물어보는 의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의사의 친절함 같은 것이 아니라 은희가 처해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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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 네 생일인데도 때렸어?

지숙: (애써 웃으며) 너네 오빤 주로 어떻게 때리냐?

은희: ... 존나 다양해. 요샌 죽도. 그 새끼 해동검도 하거든.

지숙: 그건 차라리 나아. 골프채 존나 아파.

  

-58p

  

 

가까운 가정 내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 기어코 고막이 찢어졌고 먼 타인의 눈에 문제의 심각성이 밟혔다. 가정 폭력이 ‘남매의 사소한 다툼’으로 보일 정도로 일상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심각해진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데도 가까운 사람은 모르고 먼 사람은 안다. 아니, 먼 사람만 안다. 이쯤 되면 ‘가까운 가정’이라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고요하고 일상적인 폭력 속에서 참는 방법을 먼저 배우는 것은 은희가 처해 있는 현실이다. 은희 친구인 지숙과의 대화는 이 현실에 처해 있는 것이 은희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 현실 속에 의사가 하는 역할은 열네 살 은희가 받은 상처의 파편들을 주워 제 손에 쥐어 주는 것이다. 문제인 것을 문제라고 말해 주는 것 말이다. 진단서 떼어 줘? 하는 물음에 왜요? 하고 되묻는 은희는 아무도 그것이 문제라고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을 모르고, 상처 입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진단서의 필요성은 더욱이 알 수 없다.


자신의 힘으로 문제인 것을 문제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섬세하고도 정확한 타인의 시선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의사는 자신의 경험(자신이 봐 온 가정 폭력 피해자들)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을 끌어내었을 뿐이지만 진단서를 떼어 준다는 말에서 온기를 느끼게 되는 이유는 은희에게 사실을 말해 주는 어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의사 같은 인물을 필요로 하는 은희는 지금도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은희와 의사의 관계가 결국 보편의 이야기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문제인 것을 문제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여전히 절실하다는 것에 있다.

 

 

 

주고받는 방법 알기

- 영지 선생님과의 관계


  

 

베토벤: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이다. 즉 오늘은 죽음까지의 첫 번째 날이다. 너네는 중학교 2학년이다. 내일 모레면 2학기, 곧 중 3이 된다. 너희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너희의 미래가 달려 있다.

 

지금 나눠 주는 흰 종이에 날라리를 각각 2명씩 적어 내. 담배 피는 것들, 공부 안 하고 연애하는 것들 노래방 가는 것들 다 날라리다. (중략) 동작도 같이! 나는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간다!

 

-36p

 


은희네 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는 대치동이다. 학벌주의가 만연한 이 나라 안에서도 ‘날고 긴다’는 학생들이 범람하는 대치동. 담임인 베토벤(별명)은 너희들은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이라는 설교를 늘어 놓고 ‘너희들을 위해서’ 날라리 색출 작업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베토벤에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학업을 방해한다고 여겨지는 행동들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이고 학생들은 이 통제 아래서 주입식 교육을 받는다.


한편 은희에게 설교하지 않고 ‘날라리 색출 작업’을 하지 않는 영지 선생님은 베토벤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자 은희가 적극적으로 가까워지려 하는 인물이다. 지완과의 관계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 위해 애쓰는 은희는 영지 선생님과 관계된 일 앞에서 가장 솔직하고 대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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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선생님이 처음 한자 학원에 온 날, 영지와 지숙, 은희는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를 하기로 한다. 셋 모두 자신을 소개하기에 앞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 가장 긴 침묵을 갖는 건 은희다. 은희의 진심은 너무도 크고 묵직한 것이어서 목에 걸려 잘 나오지 않는다.


만화를 좋아한다는 간단한 말을 하기까지의 떨림과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은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간 은희에게는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입 밖으로 낼 일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영지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고 만화 그리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은희에게 자신도 만화를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이 짧은 대화를 기점으로 영지 선생님은 은희가 가시적인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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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 선생님, 제가 불쌍해서 잘해 주시는 건 아니죠?

 

영지: 바보 같은 잘문에는 대답 안 해도 되지?

 

-135p

 


지완에게도, 유리에게도 자신을 왜 좋아하느냐고 그 이유를 묻던 은희는 자신에게 잘해 주는 영지에게도 그 이유를 묻는다. 이쯤 되면 알 수 있는 것은 은희는 일방적으로 동정받고 보호받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같은 위치에서 무언가 주고받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영지의 대답은 은희와 영지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그제서야 은희는 쓸쓸함 없이도 웃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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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선생님 삐삐 번호를 아예 없애신 것 같던데.. 그 선생님 원래 그렇잖아. 

은희: 뭐가요?

원장: 원래 그러셔. 잠적 잘하시고... 좀 이상하시잖아. 

은희: 그때 왜 두 시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이 시간만 잘 가르쳐 주셨어도 저 영지 선생님 볼 수 있었단 말이에요. 그리고 영지 선생님 이상한 사람 아니니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영화에서 은희는 영지에게 일방적으로 도움받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 아니다. 영지는 은희에게, 은희는 영지에게 제자리에서도 꿈틀거릴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해 주고 그렇기 때문에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


한문 학원 원장의 실수로 영지 선생님을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날, 은희는 영지가 이상하다는 원장에게 울분에 가까운 목소리로 소리 치며 영지를 변호한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말라’는 은희의 외침은 영지 선생님뿐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타인에게 자주 오해를 사는 은희와 영지는 서로를 변호해 줄 수 있는 존재들이며 은희는 이 순간 내 세계를 지키기 위해 분노하는 방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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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감독은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에서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 스스로가 영지라고 생각하고 썼지만 벌새를 완성하는 긴 시간 동안에는 내 안에 있는 은희를 자주 만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감독의 말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은희와 영지가 주고받는 대화들은 결국 현재의 나 그리고 제대로 돌봐 주지 못한 과거의 내가 하는 대화인 것처럼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은희와 영지가 맺고 있는 관계는 나를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상대방을 위한 것이다. 그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기울지 않는 이 둘의 균형에는 자꾸만 눈길이 간다.


훌쩍 커 버린 영지는 스스로가 싫어진 적이 있냐는 은희의 물음에 아주 많다고 대답하면서 나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말한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범람하는 이 삶 속에서도 나를 사랑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 영지는 영지를, 은희는 은희를 쉽게 사랑하지 못하고 애써 사랑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은 사랑을 배우기 이전에 마음들과 문장들을 주고받는 방법을 먼저 배우는 듯 보인다. 은희와 영지가 주고받는 물건들, 대화들,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그 자체만으로 위로가 되는 이유는 사랑으로 가닿기 위한 촘촘한 과정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화할 수 없는 시절을 미화하지 않는 영화, <벌새>




한국 사회는 상처를 미화하는 문화가 있다. 상처받은 사람이 상처를 ‘극복’하고 강해지는 서사를 환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상처는 언제나 사람에게 좋은가. (중략) 내가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 정말 그런가.

 

인간은 상처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만 성장한다. 사랑은 상처가 상처로만 머물게 하지 않고, 인간을 상처 속에 매몰되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무감한 사람으로 변하도록 두지 않는다. 은희는 영지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과하며 사랑받아 성장했다. 함부로 대우받아 성장한 것이 아니라.

 

-214p

 


영화에서 은희는 많은 이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은희는 스펀지 같아서 타인의 영향을 있는 그대로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가 하면 흡수함과 동시에 그것들을 모두 짜내고 스스로를 지키려 안간힘 쓰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는 아무 말 없이 시절을 대표하는 위인의 일대기를 담아 내듯* 은희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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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결코 미화할 수 없는 일들을 잔뜩 늘어 놓은 채로 어떤 시절을 관통한다. 그 시절 속에 살고 있는 은희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감독은 ‘그땐 그랬지’ 하고 털어내듯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하고 말을 걸어온다. 물음은 은희가 감당해야만 했던 삶의 무게들을 가늠하게 하고 나 자신이 돌봐 주지 못한 은희 같은 아이를 돌아보게끔 만든다.


상처는 언제나 사람에게 좋은가. 지난 시절을 미화하는 이야기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처들에는 의미가 있었다는 회상을 덧붙이곤 더 강해진 현재의 나를 사랑하자고 한다. 그러나 나를 함부로 대한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딛고’ 강해진 나에게서는 과연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게 될 나는 정말 괜찮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시절에 대한 심심한 미화는 그만둘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지? 그래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 함부로 동정할 수는 없어. 알 수 없잖아.

 

-영지 대사 중

 

 

<벌새>에서는 ‘함부로’ 위로를 건네지 않고, 또 쉽게 미화하지 않는다. 아름답기만 한 영화가 아닌 <벌새>는 1994년에 살고 있는 은희의 이야기지만 결국 2021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하나의 세계를 소개할 때 이미 지난 순간을 아름답게 회상하듯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위치에서 집요하게 다루는 것. 그 과정에서 웃고 울고, 뒤로 가다가도 앞으로 가며 고군분투 하는 것. <벌새>에는 그 모든 것이 담겨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오래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함부로 동정할 수 없어 더욱 가만히 바라 보게 되는 것은 결국 은희의 세계다. 이 세계에 대한 긴 이야기를 마친다.


 

* 참고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감독과 엘리슨 벡델'의 대화

“그렇지만 당신은 소녀의 삶을 ‘인간’의 삶으로 본다. 당신은 이 소녀의 모험과 주체성을 마치 그녀가 중세의 기사인 것처럼 진지하게 다뤘다. 그게 정말로 좋았다. 당신이 이 소녀의 이야기를 거대한 서사시로 재탄생 시킨 거다!", 254p

 

 

[박이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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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김수지
    • 어쩐지 글을 읽으며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드는 것은 영화의 촘촘함을 집요하고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가님의 시선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받은 충격은 어떤 미련도 없이 은희를 통과하며, 영지 선생님을 통과하며 감독이 걸어오는 말들에 결국 나의 구체적인 서사를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때의 그 감동과 충격을 '파편을 손에 쥐어주는 방식으로', '함부로 동정하지 않고 미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을 동등하게 주고 받는 방식으로', '가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 작가님 다음 글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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