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캔버스를 넘어 확장되는 듯한 풍경 –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전시]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글 입력 2021.08.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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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작품을 접한 것은 SNS에서부터였다. 워낙 미술관에 관심이 많은지라 SNS를 이용하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의 작품을 보는 것은 매우 쉬웠다. 이때 접한 작품은 웨스트필드 저택을 담은 <풍경이 있는 웨스트 필드>이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그의 작품을 본다면 풍경 사진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내가 그랬으니 말이다. 그만큼 세밀한 빛을 화폭에 담아내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매끈한 대리석을 빛과 그림자로 조절하여 화폭에 담은 것이 퍽 인상 깊었다. 저택의 모습이 신전 같기도 하여 웅장한 우아함을 뽐내는 듯했다.
 
건축물이 먼저 눈에 들어올 수 있지만, 천천히 감상하다 보면 작품의 배경인 뉴욕 이타카에서 구름 사이로 느지막이 비치는 햇살을 감상할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의 배경 표현 방식을 보고 감탄을 연발할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붓질의 형태가 간결하나,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빛의 흐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앨리스 달튼 브라운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빛과 물, 바람이 어우러진 시각적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빠짐없이 담아낸 것. 그의 작품 <풍경이 있는 웨스트 필드>를 간단히 접한 후로, 앨리스 달튼 브라운 작품들을 오롯이 볼 수 있는 전시를 관람하게 된 것은 아마 우연이 아닌 운명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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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1939년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 댄빌에서 태어나, 뉴욕 주 이타카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구름이 많이 끼는 이타카의 느지막이 뜨는 햇빛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그림자는 작가의 큰 예술적 영감이 되었다고 한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가정을 꾸리고 세 아이를 양육하는 도중에도 아이들의 장난감에 비친 그림자를 소재로 작업을 이어나갔다는 것이다.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혼을 다지는 작가의 태도를 알 수 있는 일화이다. 작품을 향한 그의 열정은 누구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SECTION 1. 빛과 그림자

 

1960년대부터 1978년까지 제작된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초기작을 볼 수 있다. 이 시기, 작가는 가족과 함께 뉴욕의 근교로 이사하면서, 집 근처 농장의 헛간을 소재로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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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테이블의 그림자>

 

 
<나무와 테이블의 그림자>는 헛간의 옆면을 수평으로 바라보고 있는 같은 장소에서 그려졌다. 빨간 벽면과 벽을 가로지르는 흰 선, 벽 위로 드리운 처마와 배수로의 검은 선은 화면을 기하학적으로 나누고 있다. 특히 작가는 평면적인 풍경에서 멈추지 않고 벽면을 다 채울 만큼의 커다란 나무 그림자를 드리웠다. 작품을 보았을 때 나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그림자로 인해 확실히 작품의 공간이 확장되어 보였다.

이외에도 한 시리즈인 <나무 그림자>, <나무 그림자와 계단>, <입구>에서도 대상을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고 대상의 그림자를 묘사하는 것으로 밖의 풍경을 유추할 수 있었다. 차례대로 감상을 해보았을 때, 그림자만으로 시간대의 변화와 빛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의 변화도 무척 흥미롭다.

 

 

SECTION 2. 집으로의 초대

 

1979년부터 1990년대 후반 작가가 집중적으로 탐구했던 주택을 다룬 작품을 아우른다. 이 시기, 건축물의 바깥에서 서양식 현관, 대문, 창문 등 공간의 시선을 옮긴 것이 큰 특징이다.

앞서 먼저 보았던 <풍경이 있는 웨스트 필드>를 실제로 보다니, 감격스러웠다. 확실히 실제로 보니 붓 터치의 형태를 명확히 볼 수 있었다. 붓질의 세기도 빛을 표현하기 위한 강렬함을 갖고 있었으나, 이를 통해 부드러운 명암을 드러내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분명 사진과도 비슷했으나 가까이서 보면 완벽한 극사실주의 작품이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돌이켜보니 이타카는 도시 자체로서 의미가 있었다. 
이타카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항상 흐리다. 
그래서 이따금 비치는 따사로운 햇살에 더욱 소중하고 특별하다.
이타카의 태양은 구름 사이로 오후에야 가장 밝게 빛나는데,
그 금빛 햇살로 긴 그림자가 드리울 때가 가장 아름답다. 

이타카에는 빅토리아 양식의 집과 드넓은 현관이 즐비했다. 
나는 그런 집에서 산 적은 없지만,
내가 자라면서 매일 마주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현관과 건축물의 파사드는 
늦오후에 비치는 태양 아래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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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휴식처>

 


<여름날의 휴식처>는 코넬 대학교 캠퍼스 근처의 학생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는 주택을 담아내었다. 전체적으로 집으로 스며드는 따스한 빛과 주변 숲에서 느껴지는 시원함을 가득 머금은 듯했다. 바닥에서 반사된 빛은 천장을 밝히고 그림자가 진 벽면까지 부드럽게 휘감는다.

커다랗고 몽환적인 작품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천천히 감상을 하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했다.
 
 

 

SECTION 3. 여름 바람

 

2000년대부터 그려온 대표작 여름 바람 시리즈를 볼 수 있다. 이 시기, 작가는 건물의 경계를 이어주는 공간에서 이제 실내로 무대를 옮겼다. 커튼이 휘날리는 모습 속 반짝이는 풍경은 황홀함을 전달하기에 적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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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 물든 날>

 


작가는 항상 커튼을 들고 다니면서 영감을 받은 장소에 커튼을 더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황혼에 물든 날>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작가의 여동생 집으로, 드넓은 풍경은 부모님의 별장이 있던 카유가 호수를 상상으로 더해 제작했다고 한다.

푸른 페인트가 발린 벽에 걸린 <황혼에 물든 날>은 더운 여름에 시원하고 몽글한 바람을 이끌어 온 듯했다. 자연과 인공적인 소재의 대비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작업이 대단했다. 가만히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캔버스를 넘어 확장되는 듯한 푸른 풍경으로 인해 가슴이 탁 트이곤 했다.

 

 

SPECIAL SECTION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마이아트뮤지엄 커미션으로 2020년 말부터 <정적인 순간>, <설렘>, <차오르는 빛>을 차례대로 완성하였다. 이 섹션에서는 습작과 더불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생동감 넘치는 묘사를 해내는 작가의 테크닉이 잘 드러나고 있다.
 
 
내게 금빛과 은빛으로 짠
하늘의 천이 있다면,
그 천을 그대 발밑에 깔아드리련만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하늘의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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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인 순간>, <설렘>

 

 
특히 <정적인 순간>은 이타카의 카유가 호수를 배경으로 베란다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풍경을 담고 있다.
 
<황혼에 물든 날>과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어 비교하면서 감상한다면 재미가 배로 커질 것이다. <황혼에 물든 날>은 금빛으로 익어가는 햇살을 표현했던 것과 달리 <정적인 순간>에서는 맑은 빛이 지나간 자리를 하얀색 커튼이 반투명하게 비치는 장면으로 새롭게 창작했다.

<설렘>은 작가가 산책할 때마다 자주 보던 나무를 담아냈는데, 살포시 부는 바람에 살랑이는 커튼과 조화를 이룬다. 본디 제목이 <기대감>, <예상>이었는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설렘이라 생각한 것도 일화 중 하나이다.
 
 

 

SECTION 4. 이탈리아의 정취

 

2015년부터 작가가 작업했던 이탈리아 시리즈를 볼 수 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위치한 루카라는 마을에 거주하는 친구의 별장을 주로 소재로 이용했는데, 이탈리아의 이국적인 장소와 다양한 색감을 감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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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가 있는 안뜰>은 아크릴 물감과 파스텔 질감이 잘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서걱거리는 질감에 눈을 사로잡은 작품이었다.
 
작품 속 빌라는 400년 된 농가인데,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그곳에 있던 거대한 대리석 식탁을 제거하고 테라스의 구조와 안뜰을 채운 식물이 잘 보이도록 구도를 잡았다고 한다. 테라스 풍경에서 보이는 붉은빛의 테라 코타와 벽돌, 대리석은 전통적인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건축 양식을 대표한다.
 
 
내 창가의 나무, 창가 나무여
밤이 어둑해지면 나는 창틀을 내린다
그러나 너와 나 사이에 커튼은 치지 않으리라
 
- 로버트 프로스트, <창가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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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작품은 섹션마다 매력이 달랐다.

어두운 그림자를 중심으로 제작했던 작품들을 선보인 첫 번째 섹션, 웨스트 필드 저택을 소재로 서양식 건축물의 우아함을 가득 담았던 두 번째 섹션, 여름 바람이 솔솔 느껴져 시원함이 가득했던 세 번째 섹션, 이탈리아의 향토적인 건축물과 배경을 아우른 네 번째 섹션, 그리고 이번 전시만을 위해 제작한 3점의 작품을 담은 스페셜 섹션까지 자연이 어우러진 시각적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청량하고 평화로운 휴식을 충분히 머금었다.

친근하고도 익숙한, 누군가 나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느낌을 나는 좋아한다. 인공적인 소재라도 자연과의 대비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 작품을 통해 소중한 치유 시간을 갖길 바란다.
 
앞으로의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작품 세계를 기대할 것이다.


해당 게시물의 사진들은
사전에 마이아트뮤지엄과의 협의를 통해 촬영하였음을 알립니다.
전시장 내 사진촬영은 일부 외 금지되어 있습니다.
 
 
[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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