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100년 사이 서로에게

"치열하게 살아가기를, 그러나 사람에 대한 믿음은 잃지 않기를"
글 입력 2021.08.1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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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백년사>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불편했다. 여성서사도, ‘페미니즘’도 모두 부담스럽다. 그래서 공연을 보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내가 페미니즘 뮤지컬을 볼 날이 있을까 싶어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직설적인 대사들,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극의 주제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더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나 같은 사람도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면 안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래서는 안된다. 애초에 편할 수 없는 주제 아닌가. 내가 불편한 이유는 극이 매끄럽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실 자체가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극의 내용 자체가 불편한 진실에 가깝긴 하지만, <모던걸 백년사>의 다소 구시대적인 내용도 한몫 하지 않았나 싶다. <모던걸 백년사>가 2016년에 초연을 올린 극이라서인지, 극에서 다루는 이슈가 2010년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재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화영의 서사가 2021년의 상황을 더 반영했더라면 극의 매끄러운 진행이나 몰입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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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경성에 사는 경희는 어렸을 적 오빠의 지지로 이화학당에서 신식 교육을 받고, 유학까지 다녀온 신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잡지에 여성 해방을 주장하는 글을 기고하고 이혼을 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선 사회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모던걸'로 불린다.

 

2020년 서울에 살고 있는 화영은 성적에 맞춰 간 대학을 다니며, 주변의 성화로 적성에도 맞지 않는 교직이수를 하는 중인 '착한 딸'이다. 주변에서 말하는 "예쁘고 학벌 좋고 직업도 받쳐줄 테니까, 걱정 없네~"라는 말이 어쩐지 불편한 화영은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동아리에 연극 <인형의 집>에 참여한다.

 

세간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경희는 조선의 여성들을 깨닫게 만들기 위해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을 번역하기로 마음먹는다. <인형의 집>을 읽으며 화영은 점차 용기를 내기 시작하지만 또 다른 벽에 부딪히게 된다.

 

1920년의 모던걸과 2020년의 페미니스트가 각각 자신들의 꿈과 사회의 요구, 비난 사이에서 갈등하며 싸워가고 그들의 삶이 교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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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창작집단 하이카라의 창작뮤지컬로 2016년 초연, 2018년 재연에 거쳐 2021년 여름 삼연이 올랐다.

 

1920년대의 경희와 2020년대의 화영을 연결해주는 것은 다름아닌 희곡 <인형의 집>이다. <인형의 집>을 처음으로 번역한 경희와 <인형의 집>을 공연하게 되는 화영. 단순히 100년의 시간을 두고 억압받는 여성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두 주인공 사이 확실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어서 좋았다. <인형의 집>이라는 작품 자체도 흥미로웠고 말이다. 그런데 아쉬웠던 점은 정말 <인형의 집>이 연결고리 역할만 했다는 점이다. 극을 보는 내내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연결되기 보다는 각각의 서사가 따로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너무 매력적인 소재인데, 이 매력을 잘 살리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화영, 경희, <인형의 집>이 모두 붕 떠서 각각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뻔한 스토리 라인과, 무조건 여성vs남성으로 구분되는 이분법적 구조도 더해져 개인적으로 나는 조금 식상했다. 하지만 화영과 경희, 각자의 서사는 오히려 재미있었다.

 

 

모던걸.jpg

 

 

경희와 근석의 사랑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두 사람이 모두 당시 잘못된 성 고정관념의 피해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식 교육을 받고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지만 이혼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난 받는 ‘모던걸’ 경희, ‘남자다움’의 굴레 속 하고 싶은 일도 사랑도 포기해야만 했던 ‘모던보이’ 근석.

 

결국 경희와 근석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나는 이 장면이 둘의 사랑이 끝난 장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정된 성 역할을 강요 받던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선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결정에 모두 공감이 가서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었고, 극에서 유일하게 여성과 남성을 모두 아우르는 부분인 듯 해 특별히 마음에 와 닿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로만 새로 서사를 써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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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영의 서사는 너무 뻔했다. 화영의 캐릭터도, 주변 인물도. 그런데 화영이 ‘단톡방 사건’을 겪는 장면을 보며 너무 힘들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실제로 겪었던 일이 떠올랐고 그 일로 힘들어하던 친구들이 머리에 그려져서 감정적으로 버거웠다.

 

시간이 흘러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극에서 직접적으로 다루는 모습을 보니 어딘가 속이 좋지 않았다.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화영이 동기와 선배들을 고발하던 모습, 고발하고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처벌… 너무 현실적이고 화영이 안타까워서 분이 났다.

 

그리고 이런 일들에 내 자신이 둔감해진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그간 사실 단톡방 사건을 비롯해 여러 젠더이슈들, 대학 커뮤니티든 뉴스든 거의 읽지 않았다. 사실을 마주하는 것도 힘들고 지긋지긋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일들이 반복 될는지 한숨만 쉬었다.

 

그런데 이건 나 하나 마음 편하자고 하는 짓이다. 보지 않는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나는 그냥 계속 ‘불편하니까 없었던 일로 치자’식의 생각을 했던 건 아닐까. 화영을 보며 공감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나의 부족한 모습을 알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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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화영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사람에게 데이고 나면 사람을 믿기 어려워진다. 특히 화영처럼 가해자 뿐 아니라 엄마에게, 친한 언니에게도 실망하고 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더라도 ‘혼자’ 살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에는 분명 좋은 사람이 있다. 아무리 사람이 밉고 삶이 힘들어도, 사람에 대한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결국 나를 괴롭힌 사람들에게 지는 거다. 미워해도 좋다. 그런데 나는 나 대로 잘 살면 된다. 이런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될까 겁나지만 진심으로 하고싶은 말이라 몇 자 적는다.

 

 
치열하게 살아가기를, 그러나 사람에 대한 믿음은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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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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