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994년, 은희라는 세계에서 목격한 것 (1) [영화]

김보라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벌새>(2018)
글 입력 2021.08.0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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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마음먹으면 늘상 떠오르는 말이 있다. 영화가 개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아무리 바빠도 이 영화는 꼭 봐야 한다는 말을 연신 뱉으며 꽤 강력한 주장으로 친구를 데리고 영화관에 갔다. 이 영화는 진짜 괜찮을 거라고 떵떵거리던 말 속에 영화가 친구 마음에 꼭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숨겨 두었고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보고 나왔다.


그리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횡단 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친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결국 이렇게 미워할 수 없게 되는 게 싫다고. 결국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은희 아빠를 두고 한 말이었다.

 

밥상에서는 늘 '꼰대' 같은 말을 반복하고 가부장적 말씨와 태도가 체화된 채로 가족들을 대하는 아빠. 은희의 깊은 내면은 들여다 봐 주지 않으면서 수술 소식을 듣곤 은희보다 더 겁먹은 얼굴로 우는 아빠. 영화 속 은희 아빠는 절대적으로 미워할 수만은 없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사랑과 미움의 공존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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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친구가 <벌새>에서 목격한 것은 인간을 이분법적 사고에 근거해 ‘완전한 무언가’로 규정 지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잘 들여다 보면 사랑 속에 미움이, 미움 속에 사랑이 피어난다는 사실 말이다. 이렇게 상대방을 복합적인 사람으로 받아들 수밖에 없게 되는 일은 영화 <벌새>를 관통하는 철학이나 다름없다.


이 영화에선 간단한 방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 특히 영화의 주인공인 ‘은희’가 그렇다. 은희의 이야기를 본 이들은 입술을 달싹이다 ‘내 안에도 은희 같은 아이가 있다’고 말해 버리고 만다. 내 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내가 살고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2013년 겨울, 시나리오 초고를 수정하며 쓴 일기에서 감독은 '많은 것을 보았다. 너무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되는 한 해였다'고 적었다. 이 일기에 의미를 둘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느낀 감독의 첫 장편, <벌새>가 보는 이들에게도 너무 많은 것을 느끼게끔 해 준다는 데 있다.

 

은희는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사람이자 커다란 세계다. 은희라는 세계, 영화 <벌새>에 대해 1부, 2부로 나누어 이야기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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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스포일러와

도서 <벌새,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에 등장하는

영화의 삭제된 분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희, 사랑받는 주체

- 남자친구 지완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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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목격할 수 있는 ‘밝고 깨끗한 기운’을 전하는 이들에게 쉽게 따라 붙는 말이 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은 사랑받아온 티가 난다는 말. 골똘히 생각해 보아도 사랑받고 자란 티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언젠가부터 행동과 분위기만으로 배경을 판단해 버리는 저 문장을 날카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밝고 깨끗한 기운을 사랑받아온 흔적으로 연이어 사고하는 것. 이 사고에는 사랑받는 일은 곧 ‘좋은 것’이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사랑받는 사람이 긍정적인 영향 속에 살아갈 것이라는 이 막연한 믿음은 너무도 부실하지 않은가.

  


은희: 김지완.

지완: 응? 

은희: 너는 내가 왜 좋아?

지완: 네가 대청중에서 제일 예쁘잖아.

 

순간, 은희 얼굴에 지나가는 그 쓸쓸함. 그러고는 다시 해맑게 웃는다.

 

- 66p

 


영화 속에서 은희는 여러 사람들과 사랑으로 맞닿는다. 엄마와 아빠, 남자 친구 지완, 후배 유리 등. 은희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중하고도 결연한 눈으로 마음 확인을 위한 질문을 던지는 은희를 보면 그들에게 사랑받기를 갈망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이 경험하는 사랑을 인지하고 행동으로 옮기기보다는 사랑받기를 우선적으로 원하는 태도는 수동성을 동반한다.


은희는 너는 내가 왜 좋아? 하고 묻고 지완은 네가 대청중에서 제일 예쁜 애라 그렇다고 답한다. 지완은 은희에게 사랑을 전하고 은희는 사랑에 대한 이유까지 늘어 놓을 수 있는 대상이었지만 은희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용모 따위가 아니었던 듯 싶다. 어쩌면 지완의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은희는 얼굴에 쓸쓸함을 드리우다 얼마 안 가 해맑게 웃어 보인다. ‘대청중에서 제일 예쁜’ 은희의 해맑음을 과연 사랑받고 있는 사람의 흔적이라 할 수 있을까.

 

<벌새,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에서 여성학자 정희진은 연애에서의 권력 관계를 체득한 남성성이 지완에게 드러나고, 은희는 이성애의 상처를 반복한다고 말한다. 또 은희가 사랑을 받아오는 과정을 두고 사랑‘받는’ 사람이 피해자임을 보여 준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완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섬을 대하는 것처럼 마음이 내키면 은희에게 들러 사랑을 주고, 곁을 떠났다가 또 다시 내키는 때에 은희를 찾는다. 그러는 사이 지완에게 사랑‘받는’ 은희는 사랑 근처를 겉돌다 이내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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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확실하게 해 두어야 할 것은 상처받기를 반복하고 적극적이지 못한 사랑을 하고 있더라도 은희는 사랑받는 ‘주체’라는 점이다. 김보라 감독은 사랑받는 은희를 주체적이지 못한 인물로 등장시키지 않는다. 은희는 꽉 닫힌 것만 같은 눈앞의 상황에서도 이리저리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을 발산하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말미에서 지완은 귀 수술을 한 은희를 걱정하며 자신이 해온 행동들에 대해 사과하지만 은희는 ‘괜찮아, 나 사실 너 좋아한 적 없거든.’ 하고 말한다. 이때 이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상처 입히는 말을 기어코 건네는 것이 옳은 방식이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은희가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했다는 것이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던 그 눈과 불안으로부터 기인한 질문을 하던 입으로 지완을 응시하며 마침표를 찍는 모습은 차라리 후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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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집. 은희, 거실 중앙에 서서 춤을 춘다. 라디오 음악의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은희. 음악은 점점 빨라지고 격해진다. 은희는 춤에 완전히 빠져서 오징어처럼 춤을 춘다. 잘 춘다기보다는 안쓰러운 느낌이다.

 

- 190p

 

  

지완에게 좋아한 적 없다는 말을 한 뒤 집에서 춤을 추는 은희는 무언가 답답한 듯 발을 굴렀다가 발을 구르는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무릎을 때리며 제자리에서 뛴다. 자신을 함부로 대한 지완에게 모난 말을 건넨 후에도 응어리는 남아 있다.

 

은희는 스스로가 봐온 것들, 하고 싶은 말들, 가진 생각들, 손쓸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몸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자신을 감당하고 있는 듯 보인다.

 

감당할 수 없는 스스로를 감당해야만 하는 것은 열네 살 은희에게도 무겁고 중요한 숙제다. 춤을 추는 동안 은희는 아무 말 하지 않는다. 그러나 꼭 맞는 교복을 입고 있는 힘껏 뛰는 은희에게선 자신을 감당하기 위한 길고 큰 외침이 들리는 것만 같다.


이렇게 은희를 보고 나면 사랑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랑받는 사람에게서는 밝고 깨끗한 기운만이 전해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을 받은 뒤에는 그것을 꼭꼭 씹어 삼켜야 하고 때로는 그러지 못해 체해 버리는 것을 알고 있는 은희다.

 

'사랑받는 주체’라는 말은 쓰면서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이지만 받는다는 말과 주체라는 말을 굳이 한데 묶어 놓으려 한다. 받는 사랑과 그로부터 오는 이물감들을 어쩌지 못해 같은 자리에서 방방 뛰는 은희의 역동은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유하는 마음들

- 후배 유리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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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저는 언니가 너무 좋아요. 언니가 제 친구들보다, 저희 부모님보다 더 좋아요.' 영화의 초중반에 등장하는 유리는 <벌새>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은희에게 마음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유리는 은희에게 장미꽃을 건네며 언니 제 음성 들으셨어요? 하고 묻고 지완과의 관계를 의식한다. 조심스러운 모습을 하고도 할 말은 다 꺼내는 유리는 이제 은희를 진실된 마음으로 대하는 존재가 등장한 것인가 하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영화에서 인물들의 마음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는 계속해서 부유한다. 마음들은 망망대해 위 부표 같고 또 그래서 보는 이들을 애달프게 한다. 지완은 병문안에 오지 않았지만 유리는 왔다. 둘을 놓고 굳이 마음의 무게를 따져 보면 이 망망대해 속에서 유리에게 더 큰 기대를 걸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은희 역시도 그런 유리를 보며 또 다시 피어오르는 희망을 경험했던 것 같다. 은희는 언니가 ‘그냥 좋다’는 유리에게 그 마음에 대한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입맞춤을 하고 상기된 얼굴로 웃는다. 유리가 간 후 밥을 먹는 은희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 밝아 보였고, 계속 웃을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영화에서는 무표정으로 대상을 응시하는 은희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대부분이 불안한 눈빛이지만 은희는 내내 집요하고, 그렇게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바삐 관찰한다. 아마 이 집요함은 상대방의 눈에 내가 있는지, 나라는 존재가 대상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은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던 듯 싶다. 은희는 항상 자신을 ‘왜’ 좋아하냐며 그 이유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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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그렇지만 대답하는 이들에게는 그렇다 할 이유가 없었고 유리는 이 바다를 부유하다 은희를 만나게 되었을 뿐이다. 자신에게 주저 없이 마음을 주다 돌아선 유리에게 은희는 또 다시 돌아선 ‘이유’를 묻고, 유리와 잘해 보려고 했다 말하지만 유리는 그건 지난 학기였다고 대답한다.


유리의 이런 말과 행동은 은희에 대한 배신일까? 피어오르는 희망과 기대를 짓누른 유리의 얼굴에게서는 미안함이 읽히지만 야속하게도 그 미안함이 전부다. 은희는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또 다시 유리를 깊게 바라 보다 시선을 거둔다. 유리를 탓하지 않고 자리를 뜨는 은희는 이번 학기엔 유리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쏟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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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서의 마음들은 어제는 같다가도 오늘은 다를 수 있다는 것. 유리와의 관계에서 머리를 얻어 맞은 것 같은 느낌을 걷어내고 난 뒤 은희는 오늘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은희의 얼굴을 오래도록 담으며 그 이해의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 주는 것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순간 <벌새>가 무엇보다 날카로운, 현실과 맞닿아 있는 영화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은희에게서 자신을 본 사람들은 유리를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상처를 준 유리에게 목청껏 화를 내거나 따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참는 것은 능사가 되어 주지 못하고 언젠가 커다랗고 뜨거운 시한 폭탄이 되어 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희는 그러지 않았다. 크게 발소리를 내면서 자리를 뜨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은희가 감당해야 하는 상실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어서 더욱 무겁게만 느껴진다.

 

 

- 2부에서 이어집니다.

 

 

[박이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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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김수지
    • 안녕하세요 또 왔습니다! '사랑받는 주체'라는 모순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이 말을 처음 보곤, 은희의 눈빛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은희가 맺는 관계들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글을 따라가다보니 사랑을 주기보단 수동적이지만, 온몸으로 자신을 표현해 보이는 은희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그래서 더욱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주었던 것일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춤 속의 외침이라는 형태가, 그 장면이 그리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까요?
      사랑을 받을 때, 사랑을 주는 법과 받은 후의 일까지 고려하는 작가님의 다정한 마음이 좋아 영화를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천천히 곱씹으며 글을 읽었습니다. 오늘도 한 편의 글을 통해 여러모로 다시금 영화를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2편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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