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른 존재를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 - 나의 문어 선생님 [영화]

글 입력 2021.07.25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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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를 스승으로 둔 남자


 

문어를 스승으로 둔 남자가 있다. 이는 <나의 문어 선생님>의 주인공 크레이그 포스터의 이야기다.


어느 날 슬럼프가 그의 인생에 찾아왔다. 해오던 일에 대한 부담감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지고, 삶의 목적이 사라져 2년여간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헤매던 그가 찾아간 곳은 어린 시절을 보내온 바다였다.


파도가 문 앞까지 들이치는 곳에서 자라온 그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 이번엔 맨몸으로 그 품에 안긴다. 수초 숲 사이를 헤엄치던 그의 눈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문어였다. 왜인지 첫눈에 관심을 빼앗긴 그는 매일매일 그 문어를 만나기 위해 바다 아래로 내려간다.

 

문어는 처음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당연하다. 야생 문어에게 인간은 낯설고 위협적이니까. 그러던 문어가 매일 조심스럽게 찾아오는 남자의 노력에, 날이 지날수록 점점 몸을 드러내고, 남자의 손을 향해 다리 하나를 조심스레 뻗어보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그의 품에 안기기에 이른다. 문어에게 남자는 더 이상 위험한 존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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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존재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


 

매일 문어의 사냥, 놀이, 휴식 시간을 지켜보는 것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수초 숲 생태계 전체를 배우게 해주었다. 자연스럽게 문어가 먹는 것, 문어에게 먹히는 것, 문어를 먹고자 하는 것, 문어의 먹이를 빼앗으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 배경인 수초 숲의 구조까지 살피게 되었으니까. 문어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일상과 일생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자 그가 살고 있는 생태계, 자연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문어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신의 삶을 보는 눈에 애정을 더하는 것과 같았다. 상어에게 공격 당하는 문어를 보며 그는 인간인 자신의 연약함을 떠올린다. 지금 자신을 덮치고 있는 고난과 잃을까 두려운 것들에 대해서. 후에 문어가 상어의 공격으로 얻은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는 그렇게 자신도 고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대상이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한 대상을 사랑하면 그를 통해 자신과 세상에 대해 알 수 있다고들 한다. 그가 문어 덕분에 경험한 것도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그에게 자기 자신, 그리고 세상에 관한 가르침을 준 문어는 실로 그에게 스승과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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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착각일지라도


 

남자는 문어와 친구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사람과 문어 사이에 교감이 이루어졌다는 말은 한 번에 믿기 어려울 수 있다. 나 역시 영화를 보며 감동을 받으면서도, 문어의 지능이 개나 고양이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설명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문어와 친구가 되었다는 건 인간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뒤이어 이런 생각이 따라왔다.

 

'설령 착각이면 어떤가?'

 

착각이든 무엇이든,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을 친구이자 스승으로 대할 줄 아는 그의 태도는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그로부터 온갖 감정과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 설령 그 모든 것이 착각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겪은 것을 나 역시 겪을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착각하는 쪽을 기꺼이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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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다


 

이 영화를 볼 때 나는 온갖 시끄러운 기계음과, 환자의 이름을 외쳐 부르는 소리, 다급하고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가득한 대학 병원의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최고로 불안한 장소 중 하나였다고 장담할 수 있는데, 그런 곳에서조차 이 영화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한층 편안해졌다. (물론 상어가 문어를 쫓는 장면은 제외다. 그때 내 심박 수를 쟀으면 의사 선생님이 날 보내주지 않으셨을 것이다.)

 

문어의 다리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 해초가 흐느적거리는 소리, 여러 생명체가 동시에 헤엄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이어폰을 끼지 않은 다른 쪽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이 일으키는 불안함을 안정시켜주었다.

 

그리고 수 많은 낯선 생명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존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다양한 생명을 이해하고자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의 표정과 눈빛도. 이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다 괜찮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작 2~3일 전의 일이지만 지금 돌아보면 심하게 아픈 것도 아니라 딱히 큰일도 아니었는데 그곳에 앉아서는 괜히 감당할 수 없는 큰일로 느껴졌었다. 그때,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생명과, 어떤 아픔의 회복을 보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프지 않은 인간은 없다. 아니, 고비를 맞지 않는 생명은 없다. 몸이나 마음이 다치고 병들어도, 환경이 내게 가혹하게 변해도, 어떻게든 생명은 죽기 전까진 계속 살아간다. 살아갈 수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문어와 문어를 스승으로 둔 남자가 다시 한 번 내게 일깨워 주었다. 한 번도 직접 마주하지 않아 나에겐 다른 반 담임 선생님 같은 느낌이지만, 어쨌든 나에게도 위로와 가르침을 준 문어 선생님께, 나 역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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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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