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을 살아가는 이유
글 입력 2021.07.2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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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바이러스의 4차 대유행이 시작된 지 어느덧 2주가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문득 작년을 떠올려 보았다. 작년의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살며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생각을 줄곧 하곤 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나의 친한 친구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하였던 적이 있다. “민지야, 너는 사는 이유가 뭐야?”

 

얼핏 들으면 다소 놀랄 만한 질문이었다. 친구는 그 때 내가 친구에게 줬던 대답이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신에게 정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죽고 싶은 이유나, 죽을 정도로 힘든 일이 없으니까!” 이것이 내 대답이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았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사는 것이라고. 이것이 내가 삶을 사는 이유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시작되어 유례없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된 작년, 나는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면 정말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강렬한 생각을 하였다.

 

이전의 나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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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는 것, 즉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나는 사람과의 만남이 ‘바이러스의 확산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통제가 곧 나 자신을 통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를 집어 삼킬 수도 있을 우울함이 코로나-19 때문에 나를 찾아오고 난 이후, ‘죽을 정도로 힘든 일이나 그럴 만한 이유가 없으니까.’ 정도는 내가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하였다.


그 때부터, 나는 나의 ‘삶’이 아닌 나의 ‘하루’에서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매일 찾기 시작하였다.

 

과외에서 학생과 대화가 정말 잘 통했던 날, 동생이 내게 정성 들여 맛있는 파스타를 해 준 날, 넷플릭스에서 별 기대 없이 틀었던 드라마가 정말 재미있었던 날, 친구와 카톡에서 나눴던 재치 있는 말들이 나를 피식 웃음 짓게 했던 날.

 

그 날들은 차곡차곡 쌓여 ‘내가 살아가야 할, 살아가고 싶은 이유’가 되었다.

 

 

 

'종의 기원'과 '구토'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과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 이 책 두 권에는 도저히 그 어떤 공통점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두 권의 책은 나에게, 내가 전혀 접해 보지 않았던 시선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체험해 본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인지를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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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은 사이코패스 중 가장 최고 단계에 해당하는 프레데터인 ‘유진’이라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즉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내용이 전개된다. ‘구토’는 일상 속에서 모든 존재의 실존을 ‘구토’라는 방식으로 느끼는 자의 시점에서 내용이 전개된다. 이 또한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나는 살면서 사이코패스의 시점, 실존주의자의 시점에서 사는 삶은 어떨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하더라도 어디서부터 상상을 해보아야 할지 갈피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작가의 손에서 가장 섬세하고 적절하게 쓰여 진 문장들을 읽으며 책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책에 스며 들게 되고, 나와 전혀 다른 시선을 정말 실감나게 체험해 볼 수 있다.

 

나와 다른 눈을 빌려 삶을 바라보는 체험을 해본다는 것은 요즘 내가 책을 재미있게 읽는 이유가 되었고, 나의 삶의 소소한 행복이 되었다. 특히나 요즘은, 떼 놓고 보면 삶의 이유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소소한 행복, 즐거움들이 하나씩 모이고 쌓여서 내가 삶을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우연히 읽은 책 두 권에서 소소한 재미, 즐거움을 찾은 것처럼 앞으로의 남은 2021년의 날들은또 어떤 우연이 내게 선물을 가져다 줄지 기대하게 만드는 나날들이다.

 

남은 나날들이 기대되는 날들로 내게 느껴진다는 것만으로도, 이것은 충분히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갈 이유가 된다. 힘든 지금의 상황을 힘차게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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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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