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도 전역이란 걸 하는구나 上 [사람]

글 입력 2021.07.14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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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겨울은 꽤나 추웠습니다.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눈이 잘 내리지 않아서 이상기후다 뭐다 왈가왈부하는 기사가 많이 보도되었던 걸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입대를 앞두고 있었으니까요.

 

한국에서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곳이니까, 어차피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꼭 지나가야 할 곳이니까 가기 싫어서 발버둥 치거나 큰 의미를 두지도 않았습니다. 일종의 체념이었습니다. 분명 그랬습니다.

 

하지만 입대일이 가까워질수록 숨이 턱턱 막혀왔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제가 군대 가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군대 밀착 다큐멘터리를 띄워주었고 관련 영상을 하나 둘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면 볼수록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저 정도면 진짜 착한 선임이다”, “재입대하는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나면 삶에 감사하게 된다” 등 유튜브 댓글들은 하나같이 저에게 겁을 줬습니다. 그렇게 입대 날 당일, 알 수 없는 두근거림과, 걱정으로 가득 채운 마음을 싣고 경기도 연천의 모 부대로 향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 주변에 민가가 많지 않은 부대 앞에 도착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부대에서 차로 5분 정도 근처에 백반을 파는 자그마한 가게가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저는 그 가게로 들어가 비지찌개와 찐만두를 시켜 맛있게 먹었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말이죠. 맛있어서 나눠주는 비지를 싸 가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지만 입대를 1시간도 채 남기지 않은 저는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밥을 먹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도 채한 느낌에서 밥까지 먹으니 토할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부대 앞 노점상들에서 군화 깔창과 편지지를 호갱 당하고 신병교육대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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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한 첫날과 그 다음날은 절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전우조라는 명목하에 물도, 화장실도 자유롭게 갈 수 없었습니다. 무조건 3명이 짝지어서 가야 했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같이 가자고 말을 하는 일은 마냥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딱딱한 침상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가만히 있는 일은 일종의 수련 같았습니다. 당연히 눕지도, 관물대에 등을 기대지도 못했습니다.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통제’, 그게 군대에 가장 기본이니까요. 시간이 멈춰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창가에서 두 번째 자리였습니다. 창문으로 부모님과 헤어졌던 곳이 보였습니다. 괴로울 때면 그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제 자리 옆인 창가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처음 3일간 격리가 되어 잘 때만큼은 대자로 누워서 편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난방이 너무 더우면 창가로 굴러가고 다시 너무 추우면 제자리로 굴러오면서 말이죠.

 

훈련소에서는 총 6주간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훈련을 받습니다. 처음 계획표를 봤을 땐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넘어야 하는 산들이 말 그대로 산더미였습니다. 훈련은 훈련대로 생활은 생활대로 힘들었습니다. 입대 3일차부터는 주변 동기들과 말도 놓고 친하게 지내서 시간이 마냥 느리게 가지는 않았습니다만 밥맛도 없고 배변 활동도 어려웠으며 언제 혼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저를 늘 힘들게 했습니다.

 

이번 겨울 내내 그렇게 안 오던 눈은 왜 입대를 하니까 쏟아져 내리는 것인지 일어나자마자 방한도구를 착용하고 대빗(대빗자루)을 들고 부대에 쌓여가는 눈들을 청소한 날도 있었습니다. 명령이니까 따르면서도 이해가 안 되는 건 눈이 내리고 있는데 눈을 쓸라는 것이었습니다. 쓸고 또 쓸어도 눈은 자꾸 쌓여만 갔습니다. 제 군 생활 같았습니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자대에 가서 제설을 할 때 능숙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거꾸로 매달아놔도 국방부의 시계는 간다”라는 말처럼 절대로 지나지 않을 거 같던 신병교육대 생활도 끝이 나 동기들과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저는 자대로 전입을 갔습니다.

 

연천에서 신병교육대를 수료했지만 저는 서울에 위치한 모 부대로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시골 산골짜기에 사는 저로서 서울에서 군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더없는 행복이었습니다. 하지만 군대는 서울에 대한 제 환상을 채워줄 만큼 그렇게 녹록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아트인사이트 박도훈 에디터 명함.jpg

 

 

[박도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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