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

글 입력 2021.07.05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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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상이다.

 

어느 하나에 진득하게 몰입할 수 없는 세상.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의 관심사에 맞는 영상을 추천해주고, SNS가 지인의 소식을 1분 1초 단위로 전달한다. 또 ‘인싸’라는 단어를 획득하기 위해 유행하는 밈이나 신조어, 맛집 등을 ‘알아야만’ 하게 만들며, 수십 개의 트렌드가 물밀 듯이 밀려온다.

 

볼거리는 넘쳐나고 ‘대중’이 되기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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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함을 잃었다.

 

항상 정제된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있던 탓이었다. 대본과 스타들의 이미지 메이킹으로 정제된 예능 프로그램, 누군가의 입맛에 따라 편향적으로 작성된 기사나 글, ‘보여주기’ 위해 연출된 사진들로 채워지는 SNS들, 홍보를 위해 ‘트렌드인 척’하는 광고들.

 

익숙해지다 보니, 상황이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없었다.

 

뺨을 스치는 바람, 타오르듯 하늘을 물들이는 코랄 빛 노을, 경쟁하듯 모래사장으로 치고 나오는 바다의 파도들.

 

그때야말로 ‘시’가 필요할 때다.

 

시는 대상의 순수함에 집중하며 독자의 잠들어 있던 호기심을 깨운다.

   

 

풀잎

 

풀잎은

펄도 아픔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에는

우리들의 입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 박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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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은 세상에 한 대상에 온전히 신경을 쏟을 여유가 어디 있을까. 적어도 필자는 그 여유를 잊고 살았다.

 

풀잎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읊어본 때가 언제인가. 풀잎을 부를 때 우리의 입에서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난다는 것을 시를 읽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며칠 전, 지나가던 비둘기에게 호기심을 느낀 적이 있다. 한 달 전에는 바다 밑 물고기의 생활에 궁금함을 가졌다. ‘물고기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그들도 시간의 흐름을 느낄까?’, ‘취미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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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을 동생에게 뱉어봤지만 돌아오는 말은 “ㅋㅋㅋ”였다.

 

하지만 ‘시’는 오히려 허무맹랑해 보이는 것들에 집중한다.

 

‘‘풀잎’이라는 단어가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 어떤 느낌일까‘.

 

’풀잎은 어쩜 이름도 ‘풀잎’일까‘.

 

 

 

초연하다 



 

초연하다 : 어떤 현실 속에서 벗어나 그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하다.

 

- 네이버 국어사전

 

 

모든 일에 초연한 삶은 어떨까.

 

필자는 걱정이 많다. 모든 일에 원인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파고들면 대부분 원인은 ‘나’에게 있다. 그렇다고 결정을 내려버린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결국은 ‘자기 긍정’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이다. 가끔 ‘타인’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끊임없이 상대가 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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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건과 상황에 초연한 삶은 어떨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병에게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중략)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

 

- 조지훈

 

 

필자에게 병病이란 불청객일 뿐이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의 등장에도 원인을 본인에게서 찾는다. ‘춥게 입어서 그래’, ‘나는 왜 항상 잔병치레가 많을까?’

 

조지훈 시인의 초연함을 배우고 싶다. 흘러가는 대로,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의 등장에 놀라지 않고.

 

그냥 그렇게.

 

 

 

헤드헌터 



시의 간결함에 매력을 느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굳이 시의 덩치가 웅장할 필요는 없다. 목소리가 높을 까닭도 없다. 조곤조곤 말하되 마음을 울리면 된다.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여유가 있고 멋스러움까지 있다.’

 

- 나태주 <시가 인생을 가르쳐준다> p.63

 

 

나태주 시인의 책 <시가 사랑을 가르쳐 준다>를 읽고 난 후 시를 찾게 되었다. 시인은 책 <시가 사랑을 가르쳐 준다>에 이어 또 한 번 독자들에게 잠자고 있는 시인을 소개한다. 세월의 그림자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 시를 소개하며 그는 독자들만의 헤드헌터가 되었다.

 

 

병상록

 

병명도 모르는 채 시름시름 앓으며

몸져 누운 지 이제 10년.

 

(중략)

 

어두운 밤 터널을 지나는

디이젤의 엔진 소리

나는 또 숨이 가쁘다 열이 오른다.

기침이 난다.

머리맡을 뒤져도 물 한 모금 없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등잔에 불을 붙인다.

방안하나 가득 찬 철모르는 어린 것들,

제멋대로 그저 아무렇게나 가로세로 드러누워

고단한 숨결은 한창 얼크러졌는데

문득 둘째의 등록금과 발가락 나온 운동화가 어른거린다.

내가 막상 가는 날은 너희는 누구에게 손을 벌리랴.

가여운 내 아들딸들아.

 

가난함에 행여 주눅 들지 말라.

사람은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 것,

백금 도가니에 넣어 단련할수록 훌륭한 보검이 된다.

아하, 새벽은 아직 멀었나 보다.

 

- 김관식

 

 

나태주 시인에 따르면 시인 김관식은 ‘괴짜시인’으로 불렸다. 남들과는 다른 ‘별난’ 성격 탓에 선배 시인들조차 그를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36년을 살았다. 김관식 시인의 병이 깊어질 때쯤 쓰인 이 시에는 끊어질 듯한 고통과 두고 가야만 하는 자식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녹아있다.

 

하지만 그는 삶의 끝에서도 물러지지 않고 굳은 심지로 살아나갔다.

 

‘병상록’이라는 시를 읽었을 때는 가난한 자의 시라고만 생각했다. 예술가 중 배를 곯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태주 시인의 도움말은 김관식 시인을 이해하는 데 충분했다. 나태주 시인의 말과 함께 다시 시를 다시 읽으면 다른 시가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

 

두 번째 읽을 땐 김관식 시인의 얼굴이 그려졌다. 새까맣게 탄 얼굴. 그 위로 흐르는 진득한 땀방울. 타는 듯한 고통에도 연필을 들어 글을 써 내려가는 모습. 그리고 그의 뒤에 잠들어있는 아이들. 물론 필자의 상상 속 모습이다.

 

일반적인 시인이라 생각했던 그가, 나태주 시인의 도움말로 ‘시인 김관식’이 되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에 대한 감상과 시인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더라면 시를 온전히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시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말이다.

 

 

 

 


 

‘좋은 시를 남기며 시인은 영원히 사는 목숨이 된다.’

 

모든 예술가에게 부러운 점이다. 육체는 끝을 다하지만 정신과 얼이 담긴 작품은 영원하다. 그중에서도 간결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시는 더욱 매력적이다.

 

그리고 나태주 시인과 함께 우리나라 시인의 작품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책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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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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