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애써 외면하는, 하지만 결국 마주해야 하는 그들의 무덤 - 새들의 무덤

죽음으로 쌓아올려진 새들의 영혼은 아직 무덤에 묻혀 있다.
글 입력 2021.06.1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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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내려놓게 한다. 자신이 가져왔던 슬픔과 고통, 묻어두었던 감정들을 파도 소리에 숨어 되짚어보고 하나씩 바닷물에 떠밀려가도록 흘려보내는 곳. 그곳에서 무언가를 차마 내뱉어내지 못하는 듯 그저 쓸쓸한 눈빛으로 바다만을 바라보던 한 남성은 자신의 옆을 맴도는 새를 마주했다. 갓 태어나 날지도 못하는 하얀 핏덩이의 어린 새. 남성 '오루'는 그 새를 보고 미소를 짓게되고, 홀린 듯 새끼 새를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외면하고 있던 시간을 다시금 마주하기 시작한다.


‘새야, 너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5살 어린 나이에서부터 시작한 오루의 역사는 '새섬'에서부터 시작한다. 1968년 늦봄이었다. 바다 마을의 사람들이 하나둘 바다에 빠져 죽기 시작했고 이는 오루의 어버이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는 바다 멀찍이서 보이는 '새섬'이 사람들을 저주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소문난 '새섬'을 향한 사람들의 증오는 이미 타오를 대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는 단순히 섬을 향한 증오가 아니었다. 이 모든 고통 속에서 어떠한 명확한 행동 없이 그저 새섬만을 핑계 대는, 사람들을 향한, 그리고 불편한 진실을 향한 증오였다.


이는 1960~1980년대, 혼란으로 가득 찼던 진도의 어촌 마을에서의 일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삶이 궁핍해지고 점차 앞길이 막막해지자 하나로 뭉쳐야 할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바빴고, 서로를 비난하기 이르렀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며 웃고 떠들어도 그 대화의 끝에서는 결국에는 고함과 비난이 매섭게 오고갔다. 오루가 마주했던 시간은 그런 고통 속의 처절함이었다. 처절함 속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욱더 커졌다.


오루의 고통은 진도에서 보냈던 유년시절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루가 성장할 때마다 오루가 마주할 고통도 새롭게 등장했다. 진도 어촌 마을의 사람들은 끝끝내 뿔뿔히 흩어지게 되고 오루는 서울 한강 근교로 몸을 옮겼다. 88올림픽으로 한창 떠들썩한 때였다.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한 고향의 사람과 함께 하며 오루는 기쁨 속 또 다른 이면의 시간을 보냈다. 정당한 대가도 없이 무노동으로 일하기도 했고, 친하게 지내며 믿었던 사람이 도박에 빠지거나 빚쟁이들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티브이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를 않았으나 그림자 속 오루는 여전히 아픔 속에서 머물러있었다.


간신히 행복을 찾아 가정을 꾸린 오루는 봉제 공장의 사장이 되었고, 임신한 아내 '배손'의 곁에서 아이가 태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공장의 식구들도 하나같이 인정 많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점점 힘들어지는 공장의 사정도 이해하려 노력하고, 암울해져 있는 오루 부부의 분위기도 풀어주려 노력한다. 오루 부부의 아이를 향해 진심으로 축복해주기도 했다. 봉제 실력도 하나같이 대단했다.

 

그러니 그들이 공장에서 쫓겨나게 된 것은 절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죽음으로 내몰리는 듯한 절벽의 갈림길에서 공장 사람들을 내쫓아내기로 한 오루 가족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오루 가족에게 터무니없는 제안을 건네는 은행 직원들의 잘못이었을까. IMF였다.


오루는 쌍둥이 아이를 얻었으나 결국 상황적 어려움 속에서 아내와 이혼하게 되었고, 그렇게 2014년이 되었다. 그 누구의 잘못으로 헤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루와 배손은 꾸준히 안부를 물으며 지내왔다. 함께 했던 봉제 공장의 식구가 작업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이야기하며 둘 다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사이 쌍둥이는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다. 공부는 잘하지만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오손'이와 해맑고 활기찬 웃음으로 공부보다는 현실을 마주하고자 하는 '도손'이었다. 둘 다 오루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아이들이었다. 아르바이트 사장님이 자신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 당당히 따져야겠다고 야무지게 말하는 도손이를 보며 오루는 자신이 지나온 길들을 떠올렸다. 혹시나 소중한 딸이 안좋은 사건에 휘말리게 될까봐 만류했지만 도손이는 마음을 굽힐 생각이 없어보였다.

 

걱정하지 말라고 웃으며 자리를 피하는 도손이를 지켜보던 오루는 그 사이 학원이 끝나고 돌아온 오손이를 보게 되고, 오루는 고민 끝에 오손이를 통해 도손이를 지지한다고 이야기한다. 오루가 할 수 있는 두 딸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었다.


그날이 오루가 도손이를 볼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오루는, 현실의 시간 속에서 씁쓸한 마음으로 파도를 바라보던 오루는, 세상을 떠난 도손이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생의 첫 시작이었던 진도의 마을에 서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간신히 마주한 오루는 계속 자신의 주변을 맴돌며 오루의 역사를 보여주고자 노력한 흰 새끼 새를 본다. 처음에는 날갯짓도 못 하던 새는 어느새 하나둘 날아오를 준비를 시도하더니 점차 허공에서 날갯짓하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런 과거들을 끄집어내냐는 오루의 고통 섞인 물음에 새는 가만히 오루를 바라본다. 그러다 오루는 눈치 채게 된다.


새는 도손이의 혼이었다.


도손이는 수도 없이 쌓아 올려진 오루의 삶과 그 속에 숨겨진 아픔을 오루가 확실히 마주하기를 바랐다. 외면하고 피한다고 오루가 겪어온 일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외면한다는 것은, 그 사실을 묵혀둔다는 것이다. 한 켠에 묵혀진 사실은 썩어 곪기 마련이었다.

 

도손이는 오루가 자신의 모든 순간을 확실히 마주하여 자신의 고통에서 한 발자국 내딛기를 바랐다. 5살 어릴적의 새섬도, 자기 죽음도. 확실히 마주하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일생을 확실히 마주하는 오루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오루의 곁을 떠나 훨훨 날아갔다. 심장 한 켠에 숨겨져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던 오루의 고통과 함께.


그러나 아직 무덤에 잠들어 있는 새들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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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그저 오루의 이야기일 뿐일까. '새들의 무덤'은 오루라는 한 인물을 내세워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람객들에게 비춰준다. 관람객들은 자신의 역사를 마주하는 오루를 통해 한국의 역사를 함께 마주하게 된다. 오루가 겪어온 그 시간들은 지금까지 이야기되지만, 그리고 분명 사라지지 않는 역사지만, 그럼에도 어느새인가 조금씩 외면당하던 사실들이다. 외면해서는 그 고통을 끝낼 수 없다.


한 세상의 피해자로서 삶을 끝내며 쌓아 올려진 새들은 아직 세상으로부터 날아가지 못하고, 무덤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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