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뭘 더 보여주려고? 뭘 또 잊고 있는 거야? - 연극 '새들의 무덤'

글 입력 2021.06.1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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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뭘 더 보여주려고? 뭘 또 잊고 있는 거야?

새들의 무덤


"제대로 기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새들의 무덤 포스터.jpg

 

"새야, 너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폐허가 된 옛 집터에서 바다를 바라보던 오루는 새 한 마리를 만나게 된다. 아장아장 걷는 새끼 새를 오루는 홀린 듯 따라가고, 자신의 과거와 기억을 여행하게 되는데...

 



*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극의 내용에 대한 부분은 배제하였습니다.

 


 

내가 잊고 있던 것들에 대한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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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극은 현재와 과거 회상이 번갈아가며 변화하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작품이다. 이러한 형식의 연극을 처음 보는 경험은 아니었다. 현재와 과거를 오고 가는 구성이나, 한국의 근현대사를 한 개인의 삶으로 비유하여 표현하는 방식은 꽤 익숙한 방식이다.

 

본 연극이 기존의 연극과 차별화가 되는 지점을 꼽자면, '텍스트의 연결성'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이렇게 한 개인의 삶과 그의 배경이 되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연관 지어 표현할 때, 주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그러한 과거를 지나 현재의 나는 어떻게 귀결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 개인의 어릴 적 기억부터 따라가며 그 개인의 성장 배경, 그 개인의 성장 배경 속 다뤄지는 근현대사의 사건들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따라가게 되는데, 이와 같이 과거가 쌓여 현재의 내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과거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과거의 서사와 현대의 서사를 이어주는 텍스트의 연결성이 빈약하면 작품 자체가 아쉽기도 하다.

 

본 작품은 작위적으로 개인의 역사를 나열하지 않고, 이러한 과거가 있어 다음 단계의 개인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본 연극의 마지막 장을 본 이후에야 앞선 과거의 장면들이, 그 과거 속 대사들이 왜 필요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대사와 몸짓을 표현해내는 텅 빈 무대 위 배우들의 역량도 돋보였다.

 

검고 텅 빈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열심히 과거의 순간들을 표현해내고 있었다. 나 역시 잊고 있던 역사 속 그 시대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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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섬, 바다, 멧돼지, 씻김굿, 공장, 조선소, 그리고 다시 새섬, 계속 이어지는 다양한 키워드들을 잡아보면 결이 다른 듯하면서 동시에 오루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들이다. 그만큼 60년대~2021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잊어온 과거들을 상기시키게 된다.

 

일제와 미제, 운동권, 굿판, 올림픽, IMF, 노조, 일용직 노동자,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우리는 현재의 삶을 사느라 스치듯 지나가버린다. 88올림픽이 서울의 영광을 보여준 동시에 수많은 도시빈민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그리고 그 사실이 점점 잊혔다는 것은 살아가며 아차 싶은 순간들을 만든다.

 

88올림픽과 도시 빈민에 관한 이야기는 대학교 재학 시절, 그것도 4학년 때, 수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 88올림픽은 긍정적인 면만 떠올리게 되는 국가 이벤트였다. 그리고 그 이면에 있던 도시빈민 문제를 깨닫는 순간, 아차 싶었다. 가까운 과거의 일들을 잊어가고 있다는 것, 또 그것들이 찾지 않으면 수면 위로 올라오지도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노동권을 외치던 시대도 그리 먼 과거가 아니며,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리는 한국전쟁 역시 70여 년이 흘렀을 뿐이다.

 

오루는 자신에게 과거를 보여주는 아기 새에게 말한다. '뭘 더 보여주려고?', 그 말이 나에게 전해졌을 때 '뭘 또 잊고 있는 거야?'로 들렸다. 본 연극을 보며 생각했다. 기억해야지. 내가 겪지 않았던 과거라도 반복되지 않게 기억해야지라고 말이다.

 

 

 

그 기억들이 현재에도 존재해야 하는 이유


 

최근 '알쓸범잡'이라는 프로그램으로 통해 처음 접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이리역 폭발사고', 현재는 익산역으로 지명이 바뀐 그 장소에서 엄청난 폭발이 있었다. 그 폭발로 인근 전기가 끊겼고,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그 직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저런 폭발사고가 있었을 것이란 생각조차 못 했다. 교과서에서도 만나보지 못했다. 뿌리박혔던 기존 관행으로부터 시작되었던 사고, 사실 처음부터 원칙을 지켰다면 생기지 않았을 사고였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역시 원칙으로 지켜졌어야 하는 것들이 '돈'때문에 지켜지지 못해 생겨난 사고였다. 이러한 참사들의 이후엔 이러한 사건들이 다시 반복되게 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기도 하지만, 외양간을 고치기라도 해야 다시 소를 지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람으로 시작된 사고들이 일어난다. 현장에서 작업 수칙이 지켜지지 않아 목숨을 잃는 사고가 최근 뉴스에 많이 보도되었다. 더불어, 광주에서도 원칙이 지켜졌다면 지켜졌을 평범한 일상이 뺏긴 사고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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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현재에 과거의 한국 모습을 보아야 할까? 제대로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과거 사건들을 소재로 한 문학, 영화, 드라마들이 등장할까. 최근 종영한 '오월의 청춘'을 보며 다시금 1980년 5월의 광주를 기억했다. 우리는 종종 현재를 살아가며 과거의 사건들을 잊는다. 그게 어쩌면 당연한 순리겠지 만서도, 그래도 다시 과거의 잘못들이, 과거에서 고쳐야 할 것들이 있다면,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빠르게 살아오며 놓쳐가던 것들을 본 연극과 같이 무대에서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또 아차 싶겠지만, 또 다짐할 것이다. 제대로 기억해야지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러한 역사의 사건들이 지겨운 것들이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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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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