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당신의 노란 장판 [문화 전반]

노란 장판은 케케묵은 것이 아니다
글 입력 2021.06.05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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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K-드라마, K-아이돌, 심지어는 K-떡볶이까지.

 

다양한 한국의 문화들이 ‘K-’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만의 감성이 물씬 드러나는 소재들이 있는데, 한옥이나 한복 같은 전통 문화가 아니라 80년대에서 2000년대를 오가는 특유의 감성을 나타내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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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듯 낯선 주택가 풍경, 쇠로된 대문이 즐비한 좁은 골목길과 초록색 페인트로 덮인 옥상, 누렇게 바랜 노란 장판과 두꺼운 이불이 쌓인 장롱 같은 것들 말이다.

 

 


제 1장. 노란 장판 감성



그 중에서도 ‘노란 장판’ 감성은 영화나 소설에서도 사용된다.

 

노란 장판은 한국가정에서 흔히 사용되는 장판인데, 가난한 한국가정을 담아내는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명확한 장르로 설명되는 것도 아니고, 공식적 자리에서 사용되는 표현 또한 아니지만 대부분 들었을 때 거기에서 오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대개는 우울하고, 낙후되고, 가난한 느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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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한 감성의 대부분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다.

 

옛날 영화에서 다뤄지는 노란 장판이란 대개 남자 주인공이 떠나고 싶어 하는 족쇄이면서, 자기 성장을 위해 가족을 방치하거나 학대하는 일이 정당화 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때로는 스스로를 연민하고, 불우한 가정을 원망하는 소재로 쓰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노란 장판은 과거가 아닌 현재다. 노란 장판은 많은 가정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고, 그들 모두가 가난한 것은 아니다. 우울하지도 않고. 때문에 ‘노란 장판’이라는 표현이 꺼려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이상한 형태로 굳어진 ‘노란 장판’을 새로 정의하고 싶다.


나에게도 수많은 노란 장판이 있다.


빛바랜 커튼을 통해 들어온 누런 햇빛이 드는 불 꺼진 교실의 작은 의자에 홀로 앉아 있을 때 몰아오던 은근한 복통, 낙후된 원룸촌의 한 구석에 버려진 유아차를 봤을 때의 묘한 찝찝함, 엄마의 얼굴 한켠에 생긴 반점을 봤을 때의 뭉근한 감정.

 

고려인 마을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던 외국인 청년과 눈이 마주쳤을 때의 기시감, 당구장 낡은 벽면에 낙후되어 조각난 헐벗은 여자사진을 봤을 때의 답답함. 세상엔 말로 형언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수많은 노란 장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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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노란 장판이란 단순히 오래되고 가난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미지와의 조우에서 오는 낯섦이면서도 익숙한 이질감이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면서도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다.

 

 


제 2장. 당신의 노란 장판



몇몇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노란 장판’ 감성에 공감하며 이를 일종의 장르로 받아들여 선호한다. 그런가 하면 그 특유의 우울함을 꺼리는 사람들도 많다. 노란 장판 감성이 각자의 오랜 추억이나 케케묵은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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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도 노란 장판 감성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노란 장판이 깔린 집의 눅눅한 우울함이 싫다. 비에 젖어 누렇게 바래고 곰팡이가 낀 벽지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영화 속 노란 장판이 아닌 내가 말하는 노란 장판은 어떨까.


역시 긍정적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모호한 감정들은 속을 울렁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감정을 마주보기를 회피하기 일쑤다. 그래서 내게 노란 장판은 애매한 감정들을 굳이 말로 꺼내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편리한 표현이다.


하지만 사실 노란 장판이 부정적인 것들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안타까움,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얼마든지 더 나은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고, 단순히 낯선 것 또한 익숙해지면 득이 되는 일일 수 있다.


때문에 억지로 불편함을 직면할 필요는 없지만 마음 속 뭉근한 감정들의 실체를 마주하고 말로 표현할 필요는 있겠다.

 

당신의 노란 장판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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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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