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잊을 수 없는 밤 -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
글 입력 2021.06.0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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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동안 미술관 안에서 지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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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 <게르니카> 1937

 

 

<게르니카>(1937), 오늘날에도 대작이라 평가받는 이 작품은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파블로 피카소의 대표작이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꼽은 명작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개인의 삶과 사회를 작품에 담아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색채의 변화만으로 인생의 역사를 그려내는 것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색으로서 마음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가이자 큐비즘의 거장이다. 그의 작품의 역량과 에너지는 세계 미술사에 한 장르를 차지할 정도로 대단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피카소만의 색채를 통하여 감정의 표출과 새김은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많은 비언어적인 메시지를 가슴으로 전달받게 한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심리적인 중압감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미술심리치료에도 피카소의 작품이 도움이 된다니 과히 그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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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 <아비뇽의 처녀들> 1907

 

 

<아비뇽의 처녀들>(1907)은 어떨까.

 

이 작품은 5명의 누드 여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그 형태나 색채에서 이집트와 아프리카 흑인 조각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피카소는 고갱을 통해서 원시미술에 관심을 갖고 비로소 <아비뇽의 처녀들> 작품으로 새로운 조형성 표현과 큐비즘의 시작을 알렸다. 특히 <아비뇽의 처녀들>은 인간의 ‘성’에 대한 관심을 이끌고 있다.

 

피카소는 그의 회화에 있어 여성과 깊은 관계를 가진다. 즉 그에게 여성은 특별한 의미로 보인다. 필연적으로 여성이 수반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가 여성을 달리할 때마다 예술 사조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여성편력도 자기 예술 발전에 이용했다는 것이다.

 

피카소는 여성 이미지를 통해 에로틱한 작품을 그려 자신의 사랑, 불만, 절망, 욕망을 다스리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자를 삼킨 화가,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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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예술은 여자와 함께 알라 반대편에 존재하는가? 서양은 그들의 예술 혹은 역사로 죄를 지었는가? 우리 문화는 왜 그토록 이미지에, 재현에 집착하는가? 아랍에서 예술은 불가능한 것인가
 

 

소개할 도서는 <여자를 삼킨 화가, 피카소 – 파리, 피카소 미술관>이다.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가 없는, ‘아랍’ 혹은 다른 아름으로 불리는 곳의 여성들에게
 

 

이야기는 에로티시즘이 드러나는 피카소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알제리 출신인데, 글 속에도 인물을 ‘아랍 남자’ 혹은 ‘알제리 사람’이라 지칭하며 아랍 즉 동양이 보는 서양의 미술을 그려내고 있다. 실제로 저자는 자신을 10월의 어느 날 밤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보내도록 초대받은 ‘아랍인’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피카소의 작품 중 <길게 누운 나체의 여인>을 감상한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크로키로 그려내어 사랑을 나누기 전 여성의 육체를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 여인의 지극히 가볍고 거의 투명한 모습, 피부의 온기를 보여주는 색채를 보며 예술가에게는 삶과 죽음, 육체를 위한 가치 있는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미술관은 서양의 고안물, 황제나 권력자의 개인 컬렉션이 대중화한 산물이다.
 

 

저자는 자신이 속한 지역 즉 아랍에서 미술관은 필요 없는 존재라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저자는 미술관이 서양에 의해 게걸스럽게 삼켜지고 파괴된 동시에 동일시된 기묘한 이타성을 드러내는 장소라 말하며 이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과거의 정복된 시간, 정복된 문명을 언급하며 결국 미술관은 인간의 힘이 발휘되는 장소라는 것이다.

 

 
미술관은 평정심에 대한 욕망의 산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격렬한 추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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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글 중간중간 저자가 피카소 미술관에서 목록을 만드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목록이란 피카소라는 예술가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만든 피카소의 목록은 여인, 흉상들, 뼈들, 삽입된 성기들, 볼품없는 식물들, 거울들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좋아하는 목록은 해변이라 한다. 피카소는 육체가 등장하는 세상의 축도로서 나체의 연장으로서 해변을 그렸다. 뒤이어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속 튀니지의 해변 도시에서 일어난 살인을 비교하며 아랍인의 눈으로 본 피카소의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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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피카소 미술관

 

 

아랍인의 눈으로 본 피카소는 의문의 연속이었다. 피카소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저자는 불면과 신앙 때문에 얼이 빠진 압델라를 미술관 전시실에 두고 온다.

 

압델라는 감히 추측하건대 자신의 정체성이 아닌가 싶다. 즉 자신의 국가, 가치관, 종교를 모두 내포한다는 것이다. 압델라를 미술관에 두고 옴으로써 과연 압델라는 자신의 신을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파괴할지, 자신의 육체로 돌아갈지 의문을 남기며 저자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내가 보는 피카소와 저자가 본 피카소는 전혀 달랐다. 비교해보자면 나는 예술 사조를 들어 피카소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과 달리 저자는 거시적 관점 즉 동양의 시선에서 피카소를 이해하려 하고 있었다. 저자의 미술관 하룻밤은 아랍인의 감상 그 자체였다. 거장 피카소의 작품들 한가운데에서 잠을 자며 자신이 내뱉은 의문에 각기 다른 버전의 대답을 할 귀한 경험을 언제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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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 <다다익선> 1988

 

  

내가 처음으로 관람했던 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다. 당시 초등학교 여름방학 숙제로 가족들과 함께 방문을 했었는데, 어렴풋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보며 텔레비전을 겹쳐놓은 탑이라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듯 나에게 미술관은 작품을 보고 작가를 이해하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어떻게 보면 항상 간접적으로 작품을 접근했던 것 같다.


소개할 도서인 <어둠이 내게 가르쳐준 것 – 톨레도, 엘 그레코 미술관>의 저자는 미술관을 배경으로 작품 속으로 들어가 작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도서를 읽는 동안 느꼈던 것은 이보다 더 직접적인 작품 감상은 없다는 것이다. 단락별로 저자가 엘 그레코 미술관을 접한 모습과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 그리고 작가의 일대기와 그에게 보내는 메시지까지, 저자가 생각하는 작가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는 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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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

 

  

색채의 화가이자 스페인파의 창시자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 일명 엘 그레코는 미술치료 관련 강의를 통해 알게 된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은 비잔틴 회화 기법, 이탈리아 화풍, 종교적인 내면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 <라오콘>(1610) 작품은 생명력이 넘치는 강렬한 느낌을 준다. 그리스 태생의 이방인인 엘 그레코가 그리스의 비잔틴 문화, 로마의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그리고 스페인의 반종교개혁의 다양한 문화적 조우를 경험한 사실도 매우 흥미롭다. 그의 삶은 작품 속에 녹아내리고 있다.

 

사실 중세 미술의 대부분은 종교적인 메시지를 담아왔으나 엘 그레코는 인문주의적 교양을 풍부하게 받아들여 르네상스 시대도 보여주는 예술의 주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풍부한 색채와 직관적인 구도, 그리고 심오한 명암은 그 많은 중세 미술 작품들과 다른 점을 드러내고 있다.

 

 

 

어둠이 내게 가르쳐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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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할 도서는 <어둠이 내게 가르쳐준 것 – 톨레도, 엘 그레코 미술관>이다.

이야기는 스페인의 톨레도에 위치한 엘 그레코 미술관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작가 및 바이올리니스트로 예술가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술 감성이 가득 담긴 세레나데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로 엘 그레코를 위한 세레나데다. 저자는 예술가에게 구애를 하는 듯한 부분과 작품을 감상하는 부분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그의 삶을 현재형으로 서술한 것도 마치 그가 현재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저자는 전시실 한 쪽에 누어 엘 그레코를 계속 기다린다. 사랑한다고, 올 것이라 믿고 있다고 계속 되뇌는 모습은, 마치 저자가 그를 단순히 예술가가 아니라 자신의 뮤즈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저자가 과연 엘 그레코를 만나게 될지 궁금증을 품게 된다.

 

미 아모르 도메니코스, 저자가 그를 부를 때 항상 하는 말이다. 저자가 펼친 엘 그레코의 삶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 태생의 그는 그냥 화가로 불리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은 그를 이탈리아 화풍과 인문학을 받아들인 배신자로 인식했다. 그의 연인이었던 아리아나와의 슬픈 사랑, 로마에서 지냈으나 유배되었던 것 같은 시간들 속의 엘 그레코는 당대 특이하게 여겨졌던 화가일 뿐이었다.

 

엘 그레코는 끊임없이 토론했고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열광했으며 고대를 현대의 척도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에 반박했다. 그는 늘 논쟁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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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 -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작품은 붉은 옷을 걸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로마 군사들과 3명의 마리아가 있다.

 

저자는 작품을 보면서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그리스도의 모습에 안타까워하고, 작품을 전달하러 자신에게 올 엘 그레코를 기다린다. 저자가 작품을 볼 때마다 쓰는 감상은 마치 시와 같다. 그리스도가 입은 튜닉은 곧 보호물, 수치심의 대상인 동시에 기억의 흘린 피 조각이라 표현한 구절은 무척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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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엘 그레코 미술관

 

 

결국 엘 그레코의 삶을 담은 이야기가 마무리되면서 저자는 드디어 그를 만난다. 새벽이 다가오는 시간, 긴 기다림 끝에서 저자는 텅 빈 미술관에서 바이올린을 꺼내 바흐를 연주한다. 자신에게 어둠으로부터의 교훈이 솟아오르도록, 준비하고 여행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선물해 준 도메니코스를 위해 말이다.

 

엘 그레코에게 있어서 세상이란 깨지지 않는 장벽이었을 것이다. 중세 미술을 그리는 예술가가 인문학을 중시하다니, 의아했다. 다만 그리스 태생의 그가 어렸을 때부터 겪어왔을 배경과 이를 통해 접한 것이 르네상스라면 앞뒤 상황이 이해가 된다. 그는 당대 배척당했던 예술가였으나, 4세기를 넘은 현재 16세기의 가장 독창적인 예술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내가 감상하는 미술관과 저자가 감상하는 미술관은 전혀 달랐다. 나에게 미술관은 작품을 보고 작가를 이해하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어떻게 보면 항상 간접적으로 작품을 접근했던 것 같다. 반면 저자에게 미술관은 그냥 공간일 뿐이며 작품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작가와 대화를 시도했다. 이보다 직접적인 감상은 없을 것이다.

 

 

[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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