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왜 인간은 축하를 하는가 [도서]

축하의 의례에 대하여
글 입력 2021.05.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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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 전에 N번째 다시 태어나는 날을 맞이했다. 한 해 두 해 시간을 보내면서 더욱더 시간이 빨라짐을 느끼고 있다. 언제 이렇게 또다시 생일이 돌아오는지 놀라울 뿐이다. 아마 달력이 없었다면 정말 평생동안 생일이 언제인지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고 삶의 경험치가 쌓이면서 알게 되었다. 생일날 별다른 큰 일만 일어나지 않아도, 혹은 마음 속에 큰 무게가 자리잡지 않은 것만으로도 최고의 날인 것을.

 

언젠가부터 나는 '특별하지 않은 날은 없다'는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게 되었다. 모든 날이 다시는 내게 주어지지 않을 새로운 날이고, 모든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찰나이기에. 우리들이 인생 자체도 '찰나'일 뿐이기에. 그래서 생일도, 생일이 아닌 날도 모두 동등하게 특별한 날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생일을 통해 경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내 생각이 전환되는 것을 실감하였다. 일단 하루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축하해"였다. 그리고 나의 대답은 "고마워" "정말 고마워" "진짜 고마워" "진심으로 고마워" 또는 "조만간 보자" "곧 보자"였다. 축하하고, 축하받는 모든 말에서 훈훈하고 긍정적인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카톡창을 하나둘씩 나오면서 나는 정확히 정의하지 못한 궁금함, 또는 호기심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왜 인간은 축하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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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날에도 우리는 '축하'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커가는 모든 과정에서 '축하'를 하고, 받는다. 누군가 태어나서 축하를 하고, 애기가 뒤집기를 해서 축하를 하고, 걸음마를 떼거나 첫 마디를 말하거나, 생일을 맞이하거나, 입학을 하거나, 취업을 하거나, 승진을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이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요인을 들어가며 우리는 '축하'를 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나 또한 이번 생일을 맞이하여 진심어린 축하를 받고,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런데 자정이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왜 인간은 축하를 하는가?'

 

내 스스로도 질문을 던지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특별한 날이니까 축하를 하는 것이다. 매일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날이니까 축하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축하의 의미를 더 갈구하는 것인가.

 

허나 선명하게 들리는 마음 속 외침은 '고민을 포기하지마.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작년에 열심히 읽은 책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사람, 장소, 환대(김현경)'이라는 책이었다. 이 도서는 제목이 일컬은 내용(사람과 장소와 환대)을 종합하여 매우 철학적으로, 인류학적으로 풀어낸 내용을 담았다. 그중에서도 나는 '사람의 수행성'을 강조한 3장 <사람의 연기/수행>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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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격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현상하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고프먼의 표현을 빌리면, "얼굴은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의 내부나 표면이 아니라, 만남을 구성하는 사건들의 흐름 속에 퍼져 있다."

 

- 「사람, 장소, 환대」 p.87

 

 

위의 책을 통해 '축하'의 의미를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위 표현에 따르면 우리 각자의 인격은 '실체'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주고 받는 무언가를 통해 '현상'하는 것이다. 현상은 생길 수도, 생기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며 즉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즉 '축하'가 우리의 인격으로 하여금 현상하게 하는 강력한 계기라는 것이다. 그저 이 세상을 둥둥 떠도는 한 개체가 아니라, 축하받고 존중받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게끔 하는 것이 바로 '축하'이다.


 

우리는 얼굴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사람이 된다. 하지만 이 얼굴은 우리 몸의 일부도 아니고, 영혼의 반영도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얼굴이 있는 듯이 행동하고, 우리의 얼굴에 대해 존중을 요구함으로써 얼굴이 실제로 거기 있게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상대방의 사람 연기에 호응하고, 그의 얼굴에 대해 경의를 표시하며, 그가 얼굴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 「사람, 장소, 환대」 p.87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타인과의 만남과 상호 존중 속에서 얼굴이 존재하게 된다. 둘째, 우리는 서로의 사람 연기에 호응해야 하고 타인의 얼굴을 유지하도록 적극 동참해야 한다. 이에 따르면 '생일'이라는 의미는 사람의 수행성을 옹호하고 긍정하는데 매우 강력한 계기가 되는 된다. 또 생일뿐만 아니라 기타 여러가지 '경사'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하여 축하를 건네는 것도 마찬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축하는 궁극적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행위다.

 

나는 축하가 곧 응원의 의미와 같다고 생각한다. 즉 의도적으로 타인에게 시간과 정성을 내고, 의식을 돌린다는 것은 그를 격려한다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person이라는 단어의 첫번째 의미가 가면mask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역사적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어떤 역할을 연기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우리가 서로를 아는 것은 이 역할들 속에서이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 또한 이 역할들 속에서이다. (중략) 우리는 개인으로서 이 세상에 와서, 성격을 구축하며 사람이 된다.

 

- 「사람, 장소, 환대」 p.88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은 '역할'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역할을 빼놓고 자아를 논할 수 없다. 당장 당신이 이 세상에서 지닌 역할만 논하라고 해도 하나의 리스트는 작성할 수 있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는 결국 각자가 지닌 역할 안에서만 서로를 알아가고 그 무엇이라고 확정짓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의 역할을 "알고 있다" 혹은 "존중한다"는 의미로 축하를 건네고, 또 축하를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상호가 지닌 역할을 선순환적으로 원활히 수행하기 위하여 '축하'를 통해 그 유대를 다지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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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생일을 통해 축하의 의미를 고민하며 축하받고, 축하하는 삶에 대하여 그 깊이있는 의미를 깨달았다. 축하와 감사가 메아리치듯 울려퍼지는 생일에 대하여 '당연함'을 느끼지 않은 결과였다. 언젠가부터 나를 둘러싼 호의와 축하에 대하여 나는 보다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되었다. 감사로 말미암아 그 의미들을 쉽게 떠나보내는 것에 대하여 더 큰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이렇게 축하의 의미를 궁금해하고, 그 의미를 찾는 글까지 쓰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축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사람이 공동체를 이뤄가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의례'가 되기도 한다. 즉 의례라는 것은 적절한 어느 때에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 글을 통해 순수한 표현으로서의 축하가 아닌, 더 나아가 의례로서의 축하에 대하여 한 권의 도서를 소개해 그 의미를 조명해 보고 싶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또다시 축하를 하고, 또 어느 날에는 기쁘게 축하를 받는 삶을 지속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재미이자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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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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