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 박성빈] 팔뚝에키스하고코판손으로눈비비는사람

글 입력 2021.05.06 20:20
댓글 4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KakaoTalk_20210506_202636243.jpg

 

 

찌질한 인간 박성빈.

 

팔뚝에 입을 비볐다. 이렇게 하면 키스하는 느낌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다. 키스를 해본 적 없는데 ‘키스의 감각’을 알 리 없었다. 입을 뗐다.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키스하는 나날을 상상했다. 나는 그런 망상을 하는 일이 많았다.

 

일진 무리를 소탕하는 ‘나’를 상상할 때도 있었다. 그 망상에서 나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선생에게 따져도 해결되지 않는 A의 괴롭힘... 점점 심해지고 참지 못한 나는 오랫동안 안 쓰겠다고 다짐한 주먹을 불끈 쥔다...퍽 쿵 쿠르르르르릉 하다가 이겨서 몇 마디 쏘아붙이는 나. 기어이 A에게 학우들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말을 받아낸다. 반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점심시간이 되면 화장실에 들어가 빵을 먹으며 이런 망상을 했다. 친구가 없었다. 그런 망상을 하는데 친구가 없는 게 당연했다. 친구가 없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망상하지 않을 때는 MP3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었다. 청승에 찌드는 순간도 많았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생각했다. 나를 알아봐주는 누군가가 등장할거라고 망상하며 하루를 버텼다. 망상이 실천되기를 빌었다. 망상은 망상일 뿐이다. 일어날 리 없었다.

 

그래도 친구, 라고 부를 만한 관계가 있었다. 돈이 없던 내게 영화를 보여주고 밥을 사줬다. 즐거웠다. 토요일 특별활동시간에는 같이 도서부 활동을 했다. 그에게 의지해서 학교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3학년 개학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그와 같이 공원에 있었다. 대화는 그의 생색으로 이어졌다. 나니까 너를 불러‘주고’, 놀아‘주는’ 거야. 시혜를 베푸는 사람처럼 말했다. 동사마다 ‘주다’를 붙였다. 내가 너랑 놀아줄 급은 아닌데. 나니까. 공원에서 돌아와 그의 번호를 지웠다.

 

대학에 가고 싶었다. 대학에 가면 나에게 급수를 매기는 사람도 없고, 친구도 생기고, 연애도 하고, 키스도 하고...가장 큰 이유는 대학에 안가면 큰 일 날줄 알아서였다. 모든 사람들이 거기 매달려 그래도 대학, 대학, 대학 외쳤다. 당연히 가야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대학생들이 멋져보이기도 했다. 찌질한 군상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 일원이 되는 상상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면 나는 덜 찌질한 인간이 될 것 같았다.

 

문예창작학이나 국문학을 배우고 싶었다. 글을 좋아하고 사랑해서, 라면 거짓말이다. 그나마 시간 들여 하는 일이 책 읽는 거여서 그랬다. 스마트폰과 친구가 없는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할 만한 건 책 읽는 일 정도다. 남는 시간에 소설만 읽었다. 망상의 원인이 거기 있는지도 모르겠다. 함량미달이라 느껴지는 글도 많았는데, 이런 게 작가라면 나도?,라는 건방진 마음이 들었다.

 

처음 쓴 소설은 작가지망생 A가 공원 같은데 돌아다니면서 냉소하는 내용이다. 팔짱 낀 연인에게 금방 헤어질거라며 냉소, 나무 생긴 모양에 냉소, 정치 이야기하는 할아버지들에게 니들이 정치를 아냐며 냉소... 배알이 뒤틀리다 못해 배배 꼬인 인간이 오만가지 트집 잡는 내용을 ‘냉소적’인 소설이랍시고 쓴 거였다. 공모전에 냈다. 붙을 리 없었다. 대학 때 다시 읽고 찢었다.

 

두 번째 쓴 소설은 우등생 A를 질투하는 열등생 B가 A를 미행하는 내용이다. B 역시 배알이 뒤틀리다 못해 배배 꼬인 인간이다. 그는 성격도 좋고 외모도 좋고 성적도 좋고 인간관계도 좋은 A를 의심한다. 세상에 저런 인간은 없다며 씨익씨익 뒤에서 날숨만 내는 음침한 인간인데, 음침함은 도를 넘어 기어이 A를 미행한다.

 

몇 차례 놓치다가 결국 A가 다 무너져가는 건물에 들어가는 걸 본다. B는 확신한다. A가 이런 뒤숭숭한 구석에서 분명 음험한 짓을 벌일거라고. B가 발견한건 A가 기타학원에서 열심히 기타를 치는 모습이다. B는 어안이 벙벙했다가 부끄러움을 느끼고 건물에서 뛰처나온다. 끝. 공모전에 냈다. 역시 붙을 리 없었다. 대학 때 다시 읽고 찢었다.

 

두 소설에서 주인공은 찐따스러움의 화신이다. 냉소와 열등감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자격지심으로 성미가 꼬여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그건 내 모습이기도 했다.(지금이라고 별로 달라진 건 없지만) 내가 어떻게 꼬여있는지 알아서 그 꼬인 모습을 묘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통찰력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시 읽어보면 소설이 아니라 청승에 찌든 사람의 넋두리 같은 글일 테다.

 

그나마 두 번째는 좀 낫다. 주인공이 자기 뒤틀림을 발견했으니까. 나도 내가 이상하다는 걸 그 때는 좀 알았던 것 같다. 나아졌다고 해서 ‘함량 미달’인건 변하지 않는다.

 

두 소설엔 갈등이 없다. 긴장이 없다. 이야기도 없다. 주인공의 헛소리가 이야기의 태반이다. 왜 그럴까, 살피면 저자가 ‘찐따’여서 그렇다. ‘찐따’라는 핑계로 방에만 처박혀 있어서 그렇다. 뭘 경험한 적 없고, 사람과 대화 섞어본 적도 없어서 쓸 말이 없는 거다. 그러니 ‘생각’만 쓸 수 밖에.

 

 

KakaoTalk_20210506_202637337.jpg

 

 

팔뚝에 자기 입을 비비던 찐따는 27살이 됐다. 여전히 비벼볼까?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증명 같다. ‘증명’의 순간이 쌓이고 찌질한 스스로를 목격하면 도무지 바뀐 게 없는 ‘나’가 계속 고여있는 것처럼 보여서 부끄러워졌다. 초등학교 미술시간, 10년 뒤의 나를 그려보라는 말에 무엇이든 성취해서 빛나는 인간을 상상했는데 지금 나는 엉덩이를 긁으며 뭘 해먹고 살아야 할까를 고민한다.

 

바뀐 건 없다. 여전히 나는 구차하고 찐따 같고... 찌질함을 표현하는 수사 모두에 어울린다. 얼마 전에는 돼지 불백 포장을 기다리며 코판 손으로 눈을 비비다가 맞은 편의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내가 코 파고 눈 비비는 행동 전부를 관람한 듯 보였다. 마스크 너머의 표정이 그려졌다. 눈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경이로움과 경멸이 상존했다. 엉덩이 긁은 손으로 바나나를 먹는 원숭이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을 거라고... 예상한다. 시발 시발 시발 되뇌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녀히 계ㅅ 에ㅇㅛ...”웅얼웅얼 대충 인사하고 5분은 뛰었다.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도 나는 코판 손으로 눈을 비비면서 살 것 같다. 그래서 이젠 좀 찌질하면 어떠냐는 마음이 든다. 방에서 나와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나 같은 사람들, 나보다 더한 사람들을 봤다. 찌질한 모습이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페미니스트 남성이라고 자신을 설명하는 동료 A는 여자를 꼬시기 위해 혈안이었다. 자기 불행을 팔거나 별 생각이 없음에도 ‘옳은 나’를 보여주기 위한 그럴듯한 글을 써댔다. 남성만 있는 공간에서는 자기가 몇 명과 잤다느니 같은 것들을 과시했다. 만날 때마다 전 연인 욕을 해대던 B는 술에 취하면 남의 핸드폰으로 전 애인에게 연락해 날 놓친 걸 후회할 거라느니 어쩌니 같은 말을 해댔다. 다음 날 기억 나냐고 물어보면 그런 적 없는 것처럼 시치미를 뗐다. 군대 동기인 C는 폭력적인 것과 카리스마를 구별하지 못했다. 쥐 잡듯이 후임병을 혼낸 일화를 재미있는 일인 양 늘어놓다가 갑자기 자신이 과거보다 철이 들었네 어쩌네 우수에 찬 듯이 말했다.

 

그들에게서 ‘나’를 본다. 나 역시 나를 포장하고 싶어서 정의로운 척, 옳은 인간인 양 굴었다. 전 애인에게 가지 말라며 편의점 앞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 앞에서 질질 짜며 드러누웠다. 의미 없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남을 헐뜯다가 내가 걔보다 낫다고 자위했다.

 

다 똑같구나. 다 찌질하구나. 내가 지구에서 제일 찐따 같을 줄 알았는데. 나만큼 당신도 구차하구나. 이내 위악적으로 생각하는 순간이 점점 많아진다. 그래 나 찌질해. 그럼 뭐 니들은 달라? 위악은 내게 위안을 준다.

 

사람이 지치고 피곤하고 무력해지는데 오만가지 이유가 있을 거다. 그 중 하나는 자기를 포장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 ‘그렇지 않은 나’를 가장하는데 더없이 많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 아닐까. 자기 진짜 모습을 보이면, 흠결 많고 찌질한 나를 인정하고 살면 좀 편해지지 않을까. 근데 나 또한 찌질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이 너무 많다. 남이 일러주고 몇 번이고 되새겨야 그 때 찌질했구나 느낀다. 기억에도 없는 찐따 같은 모습은 훨씬 더 많을 거다. 여기에 써서 기록으로 남기면 내 흠결을 더 잘 발견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쓴다.

 

 

 

박성빈.jpg

 

 

[박성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4
  •  
  • 리원
    • 신선한 글 감사합니다.
    • 0 0
  •  
  • 조 바이든
    • 와 진짜 찐따네요. 찐따 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더 많은 찌질한 글 기대합니다. 혹시 모쏠이신가요?
    • 0 0
    • 댓글 닫기댓글 (1)
  •  
  • qkzmsis
    • 2021.05.12 23:54:46
    • |
    • 신고
    • 조 바이든놀랍게도 맞습니다.
    • 0 0
  •  
  • 플래시
    • 멋있으십니다.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