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모두 죽지 못해 산다 - 죽음의 춤

글 입력 2021.05.0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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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 후 관중이 환호하며 던진 옷에 깔려 숨진 드라콘, 자동차 문에 낀 머플러에 목이 졸린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 죽음을 노래하던 중 심장마비가 와서 무대에서 세상을 떠난 바리톤 성악가, 무언가에 홀린 듯 잠도 안 자고 몇날며칠 춤만 추다가 죽은 사람들,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깨어났다가 놀라서 곧바로 다시 숨을 거둔 여인, 한날한시에 태어나 한날한시에 영면한 쌍둥이 수도사.


<죽음의 춤>에는 철학자, 장군, 왕, 예술가, 평범한 사람들의 때로는 서글프고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마지막 순간이 포착되어 있다.

 


책의 뒷면에 요약된 책의 내용이다.

 

두껍고 단단하게 책의 앞뒤를 둘러싼 커버를 열어 페이지를 넘기면 죽었으니 가슴 아프고, 그렇다고 마냥 슬프기엔 실소가 터져 나오는 그런 죽음들을 마주하게 된다. 책에는 기원전부터 10년 전인 2011년까지, 인류가 존재했던 어느 시절에 살던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이 간단한 그림과 명료한 텍스트로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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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몇 줄로 정리된 어떤 이들의 죽음은 어떤 대단한 서사나 주관적 감정의 개입 없이 오로지 죽음의 상황만을 목격한 듯 서술되어 있다. 옆에는 각각의 에피소드에 맞는 일러스트가 비슷한 색감과 낮은 채도로 먹먹하지만 우울하지 않게 그려져 있다. 종이의 질감은 살살 만지면 오돌토돌한 종이의 굴곡이 세심하게 느껴지지만 조금 힘을 주어 문지르면 보통의 종이들이 그렇듯 매끈하게 손가락을 미끄러트린다.


죽음의 광경들 사이사이에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듯 양쪽 페이지를 모두 사용한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뜨문뜨문 그려진 일러스트들은 오로지 그림으로만 상황을 전달하지만, 유일하게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졌다. 내용은 이렇다. 한 마리의 사슴이 사냥꾼이 쏜 화살을 피해 숲속 너머로 도망친다. 한숨 돌리고 긴장을 풀던 찰나, 소리 없이 다가온 사냥꾼은 다시 화살을 조준하고 끝내 사슴은 화살에 맞아 쓰러진 채 책의 끝을 알린다.


조금은 허무한 이 이야기가 왜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을까. 사슴의 죽음은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가. 아마 사슴의 삶과 죽음이 우리의 생과 사를 압축해 보여준 것이리라. 책이 보여주는 죽음들처럼 사람은 어떻게든 쉽게 죽을 수 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17:1로 싸워도 상처 하나 남기지 않는 전설의 싸움꾼이더라도 신이든 운명이든 누군가 점지한 듯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죽음 앞에서는 도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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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이 운 좋게 화살을 피해 도망쳤듯이 우리도 그저 운 좋게 죽음을 비껴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살고 있다. 매 순간 언제 닥쳐 올지 모르는 위기들을 넘기며 평화로이 외줄타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 자의든 타의든, 내가 실수를 했든 누군가 줄을 흔들었든 간에 한 번 삐끗하면 아래로 떨어진다. 책에서는 그 한 번의 삐끗이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하게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런 얼떨떨한 죽음을 목도한 살아남은 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대머리를 바위로 착각해 독수리가 떨어뜨린 거북이를 맞고 죽은 이의 가족, 친구, 지인들은 그의 사망원인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저 타인이기에, 그의 죽음에 실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일까, 혹은 그의 지인들 역시 나와 같은 허망한 웃음을 머금었을까.


죽은 이를 보내는 장례식장에는 늘 슬픔의 괴성이 난무한다. 다신 볼 수 없을 나의 소중한 연을 떠나보내는 자리에서 어떻게 제정신으로 웃으며 보내줄 수 있을까. 며칠 전, 아니 하루, 어쩌면 몇 시간, 몇 분 전까지 내 옆에 살아 있던 이가 단숨에 모든 기력을 잃고 영면에 이르렀는데 그 침통함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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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책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꼭 죽음이 엄숙하고 비통해야만 할까. 언젠간 너도 나도 겪어야 할 당연한 결말 앞에서 우린 반드시 새드엔딩으로 끝내야 할까. 영화 <써니>처럼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을 기리며 보내줄 수는 없을까.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감정임을 알지만, 불가피한 운명에 좀 더 밝게 대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으로 소개되는 이 책은 보통의 어른들이 읽는 빽빽한 글자투성이의 책들과 달리 아이들이 볼 법한 형식을 띤다. 넓은 가로형 판형과 책을 가득 메운 그림들, 짤막한 문장들은 마치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을 연상시킨다. 그럼 이 책은 왜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되었을까. 동화는 말 그대로 어린이를 위하여 동심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를 뜻한다.


어른들의 동심은 무엇일까, 동심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어른들의 동심이 죽음과 연결되는 지점은 무엇일까 홀로 짐작해 보았다. 동심, 즉 어린아이의 마음은 아직 겪은 것보다 상상해본 것들이 훨씬 많은 시절에 힘을 발휘한다. 죽음이라는 경험해본 적 없는 절대적 운명 앞에서 우리는 어린이나 다를 것이 없다. 되려 어린이들이 우리보다 훨씬 그 앞에서 용감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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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우리에게 이 동화책은 말한다. 네가 겪지 못한 세상에는 이런 죽음들이 있었다고, 어쩌면 너는 이보다 허무하게 죽음을 만날 수도 있다고, 당신의 죽음 역시 당신의 탄생처럼 어느 날 찾아올 것이니 오늘은 죽음 대신 찾아온 지금을 누리라고 말이다.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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