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보랏빛 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문학]

징조를 발견하고 만드는 작가, 우다영의 세계 속으로
글 입력 2021.05.0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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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믿으십니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예감과 징조를 느끼며 살아간다. 기분 탓으로 넘기며 여상히 흘려버리거나, 자신의 직감을 믿어보기로 하며 이 예감과 징조들을 마음속에 담아두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삶에 찾아오는 예감과 징조를 대하는 태도는 아마도 천차만별, 모두가 다를 것이다.

   

 

“운명이겠죠.”

운명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동훈의 눈이 짓궂게 휘었다. 나는 그 시시한 표현에 깜짝 놀라면서도, 운명을 대체할 말은 어디에도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밤의 징조와 연인들』 「셋」, 342쪽

 

 

“운명을 믿으십니까?”라는 질문은 발화자의 어조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왠지 진부한 질문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삶은 운명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기엔 너무나 바쁘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저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보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운명의 굴레 안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우연들이 만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글이 있다. 운명이라는 단어에 회의적이거나 혹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독자들로 하여금 사람의 삶을 움직이는 거대하고 알 수 없는 세계로 이끄는 작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다영 작가님의 글을 읽다 보면 기묘하면서도 신기한 운명의 세계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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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리끌레르

 

 

우다영 작가님(이하 우다영)은 2014년 단편소설 「셋」으로 등단했다. 이후 등단작이 수록된 『밤의 징조와 연인들』와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이라는 두 권의 단편집이 세상에 나왔다. 이외에도 다양한 앤솔로지에 참여하였고, 앞으로가 기대되는 90년생 작가로 꼽히기도 했다*. 첫 단편집이 18년도에, 두 번째 단편집이 작년 겨울에 따끈따끈하게 나왔다. 두 권의 단편집을 통해서 충분히 우다영 세계의 어떤 면이 앞으로 한국 문학계에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그만의 저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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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표지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표지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동화적인 느낌의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덜컥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을 구매했다. 알고 보니 ‘신비로움’이라는 책에 대한 첫인상은 우다영의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로 꼽을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이 글을 통해 신비로운 보랏빛 하늘 아래 펼쳐진 이야기들을 간직한 우다영 소설 속 세계가 가진 풍경을 공유하고자 한다. 한 명의 독자가 본 단편적인 풍경이고, 이 풍경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이지만 아마도 우다영의 글을 읽는 독자들이 공유하는 풍경에는 분명 비슷한 지점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우다영의 글은 평행 세계, 혹은 패럴렐 월드(Parallel World)로 불리는 세계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밤의 징조와 연인들』에 이어서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까지 총 열여섯 편의 단편들은 조금이라도 서로 유기적인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권의 표지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달의 이미지만 보더라도 우리가 읽게 될 이야기의 분위기가 짐작되기도 한다.

   

가령 「밤의 징조와 연인들」의 주인공 ‘나’와 ‘석이’가 떠났던 여행 에피소드가 「밤의 잠영」에 다시 등장해서 그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다룬다. 「해변 미로」에서 두 명의 인물이 서로 다가가도록 만들어준 계기가 되어준 음악, ‘사람이 사람을 도와야죠’가 단편집 속 다른 단편의 제목이 된다. 이러한 사소한 연결이 모인 이야기들은 작가만의 세계를 공고하게 해주며, 우다영만의 세계를 독자가 또렷하게 감각하도록 한다.

 

 

 

각자가 가진 풍경이 겹쳐지는 순간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고,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는데, 심지어 체온마저 이렇게 다른데 한 물결 속에 섞여 있다는 게 놀라워. 또 우리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거대한 물속으로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로워.

 

『밤의 징조와 연인들』 「밤의 징조와 연인들」, 72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을 각자 떠올려보기를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나와 전혀 다른 타인이 그 누구보다도 가까워지고, 나의 세계를 기꺼이 타인의 세계와 겹치거나 공유하기를 두렵지 않게 되는 관계로 나아가게 되는 그 순간의 시작과 과정은 돌이켜보면 항상 경이롭다.

 

첫 단편집의 표제작 「밤의 징조와 연인들」 속 ‘나’와 석이도 그러하다. 소설 속 묘사되는 ‘나’와 석이는 알고 보면 다른 점이 많다. 여름이 힘겨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세상의 좋은 풍경을 먼저 보는 사람과 그 풍경 속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요인을 먼저 발견하는 사람 둘이 만난다는 것은 분명 어떤 이끌림이 없이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라서 가까워질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이 그 모든, 서로 다른 요소를 극복하도록 만들어준다.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닌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일까? 이와 같은 질문에 우다영식 글의 답은 단순하게 똑 떨어지는 답을 내릴 수 없다는 것에 가깝다. 우리는 분명 타인과 세상을 대함에 있어서 자신의 결정과 판단이 앞으로 일어나는 일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우다영의 글은 남겨두는 듯하다.

 

 

 

우리가 보는 것은 반쪽짜리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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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미로」라는 작품은 아라, 아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매가 한 명이 죽고 남은 한 명이 살아서 들려주는, 둘의 시점이 번갈아 등장하는 두 개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성이 살아남거나 아라가 살아남는 세계의 교차는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아라와 아성이 각자의 죽음에서 비껴가게 되었다면 그들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게 될지 상상한 신선한 형식의 글이다.

   

이야기는 서로가 죽고 난 이후의 세계를 조명하는데, 이 두 개의 세계는 기묘한 방식으로 유대감을 형성한다. 두 개로 나누어진 세계처럼 아성과 아라는 우리가 보고 있는(혹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온전한 세계가 아닐 수도 있음을 독자에게 말해준다. 양분된 세계가 주는 괴괴함 속 아성의 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나는 세상을 반만 보게 되었지만 다 볼 수 있어. 다시 말하면, 다 보고 있다고 믿었던 세상이 실은 반쪽짜리였을 수도 있지. 처음 한쪽 시력을 완전히 잃었을 때 세상의 반이 칼로 자른 것처럼 나뉘거나 암전으로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전과 비슷했어. 이렇게 미묘한 방식으로 반은 사라지는거야.”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해변 미로」, 124쪽

 

 

또 다른 글 「기분에 이르는 유령들」에서도 우리가 보는 세계가 어쩌면 온전한 세계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두는 듯한 메시지가 나타난다.

   

 

“때때로 우리 눈은 실수를 해서 아주 희박하게 다른 영역의 빛을 볼 때가 있는데, 그것은 이유없이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명명할 수 없는 어떤 일의 결과하고 할 수 있지. 어쩌면 영혼이나 유령을 보는 사람들은 좀 더 넓은 영역의 빛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단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간다고 믿지만 실은 과거와 미래가 현재와 분리되지 않은 채 순서도 정렬도 없이 동시에 생성되는 거라면? (...중략)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은 그것의 전부가 아니야. 절대로 그것을 온전히 볼 수 없단다.”

 

『밤의 징조와 연인들』 「기분에 이르는 유령들」, 303쪽

 

 

내가 속한 세계가 그저 내가 인식하는 범위, 딱 그만큼만 보인다는 날카로운 인식은 나 자신을 서늘하게 만드는 감각이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반쪽의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를 깨닫는 순간 우다영의 글이 독자들에게 세계의 범위를 넓혀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선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이유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을 꼽자면 「당신이 있던 신의 풍경과 잠들지 않는 거인」의 ‘은령’과 「창모」의 ‘창모’다. 두 인물은 이타와 이기라는 양극단의 성격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은령’은 화자 ‘나’가 보기에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을 배려하는 성격이지만 ‘창모’는 자신을 화나게 만드는 것에는 가차 없이 분노를 표출하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렇다고 ‘은령’이 완벽한 인물이냐 하면 그렇게 보기엔 어렵다. ‘나’가 은령을 향해 가진 반감 어린 감정은 어린 시절 ‘은령’이 친구의 죽음을 목도하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사건으로부터 기인한다. ‘나’는 이러한 은령의 모습을 악하다고 평가한다.

   

은령은 자신의 과거를 인정하며 “하지만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이 없어도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어. 슬픔을 이해하고 분노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어. 물론 나는 어떤 순간에도 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길 테지만, 고지능의 이기심은 선량함을 만들 거라고 믿고 있어. 나는 내가 더 똑똑해져야 한다고 생각해. 실수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선과 악은 불변으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수정되는 것이라고, 윤리는 정해진 강령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선과 악을 구별해내는 거울 같은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어.”라고 답한다.

 

‘은령’이 추구하는 선의 세계는 확고하지만, 그의 사고방식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은령’과 ‘창모’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방식에서는 겹쳐지는 인물이지만, 두 인물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다루는 두 인물의 끝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은령’은 자신이 입양하고 기른 아이들 사이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고, ‘창모’는 어느 순간 자신을 알던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취를 감춘다. 이 두 편의 소설이 한 권의 책 안에 담겨 있는 것은 꽤나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모두 은령 같은 면도, 창모 같은 면도 가지고 있다. 두 인물의 삶을 통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속한 세계에서 자신만의 ‘선’을 추구하는 것의 필요를 돌이켜보게 된다. 우리는 왜 선함을 추구할까?라는 삶을 살아가면서 계속 스스로에게 제기해야 할 질문에 답을 내리는 독자마다 은령의 대답에 대한 생각, 창모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생각은 모두 각자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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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이미 지나친 풍경에 대한 기억을 재배열하여 그것을 독자에게 펼쳐 보여주고, 독자들은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를 둘러싼 알 수 없는 세계의 움직임을 포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거대한 세계 속 작은 존재인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다영의 글을 읽는 일은 내가 바라보는 세계의 풍경이 더 다양해지는 일임은 분명해 보인다. 일상 속 잠시 평소 보는 비슷한 하늘색이 아닌 신비로운 보랏빛 하늘을, 그리고 그 빛을 품은 세계의 뒷면을 바라보고 싶을 때 우다영의 소설을 펼쳐보기를 권하고 싶다.



*참고자료

마리끌레르 인터뷰 기사 ‘끝나지 않는 미로’

문학에도 90년생이 온다! 2020년이 기대되는 90년대생 작가 6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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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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