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B시와 집에 대하여 [사람]

글 입력 2021.04.17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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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한 단상


  

본가에서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참을 자다가 깼는데 문득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을 때, ‘아, 이제 여기도 내 집이구나’하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본가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고 서야 비로소 ‘집으로 간다’는 기분이 들었고, 엄마와 아빠와 고양이를 두고 자취방으로 올라올 때는 조금은 후련하지만 한 편으로 늘 ‘떠나가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 때 내가 사는 곳은 서울의 자취방이었지만, 집은 본가였다. 집은 그 사전적 정의보다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말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집을 사는 것은 꿈같은 얘기로 들린다. 내 집 아닌 방들을 전전하며 지내는 유목민같은 사람들에게 “주거 공간=집”이라는 등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어차피 내 집도 아닌데 뭐'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매일을 잠들고 일어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붙이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어릴 때의 기억이 유독 선명하다. 앞으로 내가 어떤 집에서 누구와 살게 되든, 어릴 때 형성되었던 '집'에 대한 기억을 이길 수 있는 기억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종종 꿈 속에서는  B시의 집에 있다.

 

 

 

나의 B시에 대하여


 

누군가 고향을 물을 때마다 나는 난감해진다. 태어난 건 서울이지만, 내 인격과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내려가 살았던 B시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약 6년을 보내고 수도권으로 올라왔고, 그리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채로 서울로 돌아왔다. 그래서 고향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머릿속에 그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후루룩 지나간다.

 

나는 잠시 쉬었다가, 곧 “아, B시예요.”라고 대답한다. 그냥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정도면 그렇게 가까운 관계는 아니라는 뜻이니까. 고향이나 본가란 보통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쓰이는 소재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도로 한 질문에 “아, 저는 어디서 태어났는데 어디에 정이 많이 들었구요, 거기서 전학을 세 번을 다녔는데 그러다가 또 올라왔고, 이사를 또 어디로 가서...” 같은 대답이 돌아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도,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집 사진 조절.jpg

 


어린 나의 어느 정도는 B시의 골목과 바다와 냄새가 키웠다. B시는 바다가 있고 건물이 낮은 동네다. 아주 시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시골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어렵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에게 “여기 시골이야”하며 데려오면 뭐야 아니네~ 라는 반응이 돌아오지만, “여기 시골 아니야”라고 하면 뭐야 시골 맞네~ 라는 반응이 돌아올, 딱 그 정도의 동네이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동네에 H 대형 마트가 처음 들어왔다. 어렸기에 더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걸 수도 있지만, H마트가 불러온 반응은 정말 센세이션했다. 한참동안 아이들끼리 노는 코스에는 H 마트가 빠지지 않았다. 푸드코트에서 볶음우동이며 돈가스를 사먹고, 시내 쪽으로 슬슬 내려와 팬시점에 들리고 동네 서점에 가서 괜히 책을 몇 번 들여다보다가 해가 질 무렵 헤어지곤 했다. 아무튼 그 정도의 동네였다는 것이다.


B시는 바다가 유명하다. 하지만 잠실 산다고 매일 석촌호수에 가는 것은 아니듯(사실 잘 모르겠다. 잠실에 살아본 적은 없어서... 혹시 매일 석촌호수에서 산책을 하는 잠실러가 있다면 양해를 구한다), 바다 앞에 산다고 해서 매일 바다를 보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별한 이벤트가 있지 않은 이상에야 바다에 잘 가지 않았다. 대신 계곡으로 향했다.

 

바다는 끈적하고 짭짤하고 까슬거렸다. 이제 와서 어렸을 때의 바다를 떠올리면 온통 까맣다. 왜인지 밤바다에 대한 기억이 낮에 보았을 파란 바다보다 훨씬 더 기억에 남는다. 밤바다는 멀고, 검고, 멀었다. 그 바다를 떠올리면 코 끝에 희미하게 화약냄새가 맡아지는 것 같다.


나는 언제까지나 B시만을 고향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늘 나의 일부는 그 곳에 두고 온 기분으로 살아간다.

 

 

 

집을 집으로 만드는 시간


 

그 뒤로 이사를 여러 번 다녔다. B시에서 경기도, 경기도에서 서울, 서울에서 또 다른 서울.

 

어쩐지 나이를 먹을수록, 사는 공간을 ‘집’이라고 느끼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는데, 우선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요즘같이 특수한 상황일 때를 제외하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어릴 때 형성되었던 ‘집’과 ‘고향’에 대한 기억은 너무 강렬하다. 이길 수가 없다.


처음으로 본가에서 나와 살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사실 생각보다 평범했다. 아예 혼자 사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랬던 것일 수도 있겠다. 다만 정말 정신없이 바깥에서 학교 일이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왔을 때, 조금도 변해있지 않은 옷더미들과 설거지 거리들, 빨래 무덤을 볼 때마다 막막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어떤 때는 집안일이 너무 하고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힘이 들고 괴로운지, 빨래는 알아주지 않는다. 그냥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너무 간단하고 당연한 사실이 가득 쌓인 빨래처럼 축축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새로운 집에서 느끼는 모든 감각이 '집에서 떠나왔다'는 사실을 생경하고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언젠가부터 집 문을 열고 들어올 때면 늘 안심이 되었다.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공간을 집으로 만드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물론 시간이다. 머문 시간이 길다고 해서 반드시 집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기가 훨씬 쉽다. 반대로 짧은 기간 머물렀어도 각별하게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면 집이 될 수도 있겠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가지고 있는 마음은 전자에 가깝다. 이제 이 동네에 산지도 이년이 넘었다. 동네를 자주 돌아다니는 편도, 동네에 대한 애정이 큰 편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성인이 된 뒤에 처음으로 살게 된 동네라는 말이 주는 느낌은 크다.


본가에서 가족들과 보낸 시간을 뒤로 하고 올라온 뒤, 피곤한 몸을 끌고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숨을 스읍 들이 쉬는데 문득 공기의 냄새가 느껴졌다. B시와는 확연히 달랐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조금 더 사람 밀도가 높은 냄새라고 해야 할까? 그 냄새가 쑤욱 들어오 집으로 돌아왔다는 게 느껴졌다. 부모님에게는 죄송한 말일 수도, 안심이 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제 이 쪽의 집이 더 ‘내 집’으로 느껴진다.

 

 

집 사진 조절2.png

 


이 집과 가까워지면서 B시와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그 감각이 싫지 않다. 시간이 흐른다. 기억도 같이 흘러간다. 그냥 나는 이제 그 기억들에게 선뜻 팔을 흔들어 인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앞으로도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사람을 만나러 집을 나서겠지.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집이 기다리는 나의 집으로.


 

[송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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