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유연지

글 입력 2021.04.1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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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은 행복이죠. 내 입에 들어가는 건 최고의 행복이지. 먹는데 진심이라고 하는 거 좋아요. 진심이란 좋은 거에요. 행복하면 됐죠. 지은씨가 그림 그리고 글쓰는 거 좋아하듯이, 저도 먹는 게 행복하고 즐거워서 하는 거에요.”


언니와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에 같이 버스 타고 2시간 나가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 있다가 저녁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왕복 4시간. 하루를 이동에 거의 썼다. 먹기 위해서 투자한 이동시간과 공간을 즐긴 시간이 동등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위해서라면 비행기를 타고 갈 의향이 있다고 하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심 100%인 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왠지 하루를 먹는 것을 중심으로, 사전 준비 단계와 끝난 후 정리 단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나는 먹는 것에 진심이 아니다. 나는 음식보다는 공간, 분위기를 더 좋아한다. 나라면 언니처럼 번거롭고 귀찮아서 그런 수고를 들이지 않을 것이다. 먹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고를 감내하고 다니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본인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는지 명확히 알고, 행동으로 한다. 언제나 현재를 산다. 먹고 싶은 음식이 중심이다. 그렇기에 먹으러 가는 일이나, 재료 사서 직접 해먹는 수고스러움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행복한 일을 하는 거니까. 그래서 행복을 느끼면 전부인 거니까. 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그렇네. 너무나 맞는 말이네.



연지1.jpg

 

 

언니 얘기를 홀린듯이 들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엄청 웃었다. 마치 라디오처럼. 언니의 얘기는 항상 흡입된다. 핵심이 명확하다. 그리고 꼬아서 해석하거나 꼬여있는 표현을 안한다. 어떤 말이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고, 또 그대로 표현한다.


에메랄드 색으로 배경을 칠했다. 노란색도 했다. 머리카락은 자주색이었다. 보라색도 섞여있었다. 그래서 이어서 화려하게 칠했다. 초롱한 눈망울로 얘기를 하는데 너무 즐거웠다. 당연한 사실을 맑게 표현하는 어휘가 좋았다. 얘기를 들으면서도 자꾸 웃어서, 그림을 더 재밌게 그렸다. 이 즐거움이 그림에도 잘 녹아들어야할텐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역시 내가 선택하는 많은 색들이 틀리지 않았어’라는 확신이 들었다.


*


“했을 때 행복할 것 같으면 무조건 해봐요.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질 수록 두려움이 많아지지. 일단 해보는 게 낫더라구요. 전 어릴 때, 그- 학원 건물 있잖아요. 집 근처에. 학원에 음악학원, 미술학원, 태권도학원, 글쓰기 학원 등등. 그 건물을 지나가는데 발레가 너무 재밌어 보이는 거에요. 해보고 싶어서, 들어갔어요. ‘혹시 토슈즈 신어보면 안될까요?’라고. 그게 안되면 저녁에 가게 가서 직접 신어보는 거에요. 그래서 그렇게 해본 적 있어요. 경험 해봐야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니까.”


“오, 그래서 학원 다녔어요? 얼마나 했어요?”


“3-4달 한 것 같아요.(웃음)”


“(웃음) 어떻게 그렇게 도전에, 자연스러울 수 있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엄청 부럽기도 해요. 보통은 도전하기 쉽지 않은데.”


“아무래도 부모님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부모님 두 분 다 주저하는 것을 지양하고, 도전을 장려하거든요. 근데 조금 두 분이 달라요. 아버지는 다 경험하고 느끼라는 주의고, 어머니는 먼저 경험한 사람이 많으니 보면서 하라고 해요. 대신 선택에 주저하지는 말라고. 그래서 도전을 먼저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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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게 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번에도 에매랄드 색, 초록색이 쓰였다. 앞모습의 옆면만 그렸다. 저 맑은 눈이 표현될 수 있을까. 초록색으로 표현했다. 평온함이 담긴걸까. 파란색 상의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대비되는 자주색 라인도 그대로 있었다. 대신 좀 더 언니만의 모습, 색채를 담고 싶었다.


“언니는, 매일 먹을 거 얘기만 하는게 재밌어요. 저녁 먹고 나서, 또 내일 아침은 뭘 먹지 고민하는 게 좋아요. 착실하게 챙기는 게 너무 인상 깊어서.”


“아, 제가 계획적이긴 해요. 오늘은 뭘 먹고 내일은 뭘 먹을지 미리 정하는 게 당연하거든요. 제가 이렇게 계획을 짜는 것도 좋지만, 사실 깨고 다니는 것도 재밌어요. 계획은 계획 대로여서 좋고, 변수는 변수 대로 좋고.


아는 사람에게 들었던 이야기인데요, 일본에 놀러 갔다가, 버스를 놓쳐서 걸어 갔대요. 그런데 걸어가는 길이 너무나 예뻤다고 하면서, 그럼 그걸로 된 거라고 하더라구요. 저도 그런 마음이에요. 제가 먹고 싶은 음식만 먹을 수 있다면. 어떤 길로 가던지 다 상관없어요. 그래서 저는 먹는 것을 중심으로 잡고 나서, 여행이나 동선 등 나머지를 정해요.”


제주도 호스텔에서 스탭으로 지내면서, 같이 있었던 장기 숙박하는 게스트분이다. 자주 보여서 참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인 걸 알게 되고 나니- 계속 그려보고 싶었었다. 한 달을 벼르다가 이제서야 그리게 되었다. 제주도를 뜨기 전 일주일 전에.


역시나 대화는 늘 그렇듯이 재미있었고, 그림도, 개성있게 나왔다. 자신이 특이하게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도 물음표에서 끝난다. 더 깊게 파지 않고. 그냥 본인의 모습이라는 것 뿐. 그 이상으로 나가지는 않는다. 이렇게 담백하게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은 많지 않은데 말이지. 덕분에 두 달 반, 재밌게 보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같이 카페도 다녀오고. 생각지도 못했던 우연, 그리고 행복, 즐거움까지. 알게 되어서 참 기쁘고 고맙다.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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