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유로써 존재하기 - 도서 '존재와 사유'

글 입력 2021.04.1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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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은 것이 괴로울 때가 있다.

 

생각의 증식은 단선적이지 않다. 혼자 있는 순간에도 쉬지 않고 울리는 음성들이 괴로울 때가 많았다. 졸지에 '아무 생각 하지 말자.' 하고 눈을 감아 버려도 분열하는 생각의 꼬리를 자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무 생각 하지 않는 건 도대체 어떤 상태지? '아무 생각 안 한다'는 생각만을 하는 상태인 건가? 어쨌든 그것도 생각이잖아. 어떻게 생각에 공백이 생길 수 있겠어? 어떻게 하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지? 뇌도 컴퓨터 본체마냥 과부화가 와서 터질 수 있나? 명상 같은 걸 취미 삼아야 하나?

 

결국 아무것도 결론 짓지 못한 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기 마련이다. 모든 이들은 각자의 생각으로 괴롭고,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단상의 굴에 몸을 웅크리고 있겠지만 나는 그 경우가 심한 듯 느껴졌다. 쉽게 머리가 아팠고, 잠에 들 수 없었으며, 누렇게 뜬 얼굴을 꾹꾹 누를 때면 환풍구가 없는 샤워부스마냥 정신이 뿌옇게 달았다.

 

 

그림1.jpg

 

 

그것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바로 '글'이었다. 정확히는 글을 쓰는 것. 연필을 잡거나 키보드 위에 손을 굴리다 보면 솟구치던 생각이 차분히 침전했다. 그럼 나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고요해진 속을 관전하면 되었다. 생각의 먼지 조각을 쓸고 닦고 가끔은 잘 주워내 보관했다. 그러다 보면 내가 보였다. 그 어떤 타인보다도 나와 보내는 시간이 의미 있어졌고, 활자로 이뤄진 모든 것을 소중히 하기 시작했다. 글은 참 위대한 그릇이다.

 

에세이스트 이보균의 수필집, <존재와 사유> 역시 이를 실감하게 하는 책 중 하나이다. 내가 글을 사랑해 마지않던 이유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작가는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유를 이어가고, 그것을 특유의 편안한 문체로 묘사한다. 총 5부 (배려, 시선, 연결, 인식, 시간)로 이뤄진 책은 작가가 보고 듣고 느낀 사소한 순간의 편린을 빠짐 없이 기록하고 있다. 마치 인생이라는 여행의 기행문과도 같은 형태이다. 공감각적 감각을 불러 일으키는 생생한 묘사는 작가가 본 풍경을 나 역시 체험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사유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과 다양한 공간의 경계를 넘으며 깊어지고 커진다. 사유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유의 유무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크기와 깊이의 문제이기도 하다. 관심과 연결에 따라 사유는 폭을 넓히며 확장하고 깊어진다.


- p.9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사유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며, 사유는 전혀 다른 대상간의 연결을 가져 온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연결'은 현대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가치로 부상했다. 예술 분야에서 말하는 창의적인 작업의 의미는 완전히 새로운 것의 창조가 아닌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연결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실제로 <존재와 사유>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연결의 미학은 실로 대단하다. 아주 작은 풀 한포기에서 머무른 시야가 점차 군락으로, 나무 몇 그루로, 종국에는 숲으로 확장된다. 작은 풍경이나 경험은 개인적인 영역에 머무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보다 거시적인 영역으로 확장된다. 책의 구성을 이루는 5부의 키워드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작은 관계 사이에서 작용하는 '배려'(1부)에 대한 사유가 세상을 보는 하나의 '시선'(2부)이 되고, 확장된 시선을 바탕으로 수많은 오브제를 '연결'(3부)하며, 기어코 인드라망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세상을 '인식'(4부)한 후, 이 모든 것을 한 '시간'으로 구성해 인생의 한 단계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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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산다는 것, 일견 이기적인 표현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남의 삶도 돌아볼 수 있다. 챙길 수 있다. 나만의 이기적인 삶은 오히려 자기 삶을 충실히 살지 못하는 내적 공허함이 왜곡되어 드러나는 모습이 아닐까?

 

- p.322

 

 

5부 시간의 '다시 그런 인생 살 수 있다'의 일부분이다. 할머니의 말씀을 시작으로 자신의 생을 반추하다가도, 시선은 밖에서 뛰노는 아이들로 옮겨간다. 아이들의 이미지가 내뿜는 에너지에서 할머니의 삶의 동력에 대해 생각하고, 이는 삶 자체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이러한 사유의 흐름은 다소 따라잡기 힘들 수는 있어도, 딱딱한 논리 구조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밀한 의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있다.

 

 

그냥 옆에 있는 것이 아닌 깊은 연결을 생각한다. 길과 강, 강과 물, 물과 갈대, 갈대와 바람은 연결되고 사아나고 같이 흐른다. 나루에서 사람은 사람과 연결되고 사람은 또 자연과 어우러진다.

 

- p.154

 

 

책을 읽으며 작가의 의식과 길 잃은 나의 의식이 '연결'된다고 느낀 것은 분명 이 지점이었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생각의 무덤에서 괴로워 하다가도, 누군가 나와 같은 이유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는 생각에 괜히 위로를 받는 날이 있다. 에세이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가공 없이 늘어진 사람들의 사유를 엿보는 것이 즐겁다. <존재와 사유>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매우 의미있는 텍스트였다.

 

에세이스트를 꿈꾸는 이들, 혹은 평범한 하루를 독특하게 할 사유의 힘을 실감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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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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