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뻔한 판소리의 판을, 딴소리로 깨부수다 - 광대 탈놀이 '딴소리 판'

글 입력 2021.04.0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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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놀이’, ‘판소리’ 하면 떠오르는 단상이나 느낌이 있는가?

 

탈놀이는 우스꽝스러운 탈을 쓴 사람들과 떼를 지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판소리는 이야기를 하는 듯 노래를 하는 듯 리듬감 있는 특이한 흐름의 말소리가 떠오른다. 둘 다 용인 한국민속촌 또는 지방 축제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흙이 깔린 마당 주위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동그랗게 둘러앉아 때로는 탈놀이를, 때로는 판소리를 관람하였다. 일상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경험이기에 첫인상은 낯설었지만 동시에 신기하면서도 강렬했다.

 

사실 탈놀이와 판소리는 영화, 도서, 전시, 뮤지컬, 공연과 같은 다른 문화예술 분야보다 훨씬 더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자주 접하거나, 특정한 관심이 생기지 않는 이상 직접 관련 공연을 찾아보기엔 쉽지 않다. 무엇보다 다른 문화예술과는 달리 전통적인 이미지가 강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제약인 듯하다. 특히, 판소리의 경우 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이 특징적인데, 어렸을 때부터 해당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한 어른들에게는 너무 ‘뻔하게’ 또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누구나 다 아는 판소리의 뻔한 이야기의 벽을 완전히 허물어버린 창작극이 존재한다. 익살스러운 탈놀이와 평범치 않은 판소리가 만나 벌이는, 광대 탈놀이 <딴소리 판>을 소개한다.

 

 

 

마냥 뻔하지만은 않은 유쾌한 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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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소리 판>은 이야기를 음악적으로 풀어낸 판소리와 광대들이 재해석한 탈놀이를 접목시킨 광대 탈놀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차례로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흥보가의 뻔한 판소리 마당판을 깨부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몽룡과 광대 거지들이 제 갈 길로 향하는 장면을 끝으로 춘향가의 판은 다시 이어지면서 극이 마무리된다.

 

해당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남기기에 앞서, 광대 탈놀이 <딴소리 판>을 기획한 ‘연희 집단 The 광대’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06년 창단한 ‘연희집단 The 광대’는 “우리 전통연희*를 계승하고, 시대와 함께하는 작품을 창작하여, 한국 창작연희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라는 미션을 가지고, 매해 예술성과 유희성을 모두 갖춘 작품으로 거리와 극장을 넘나들며 관객을 만나고 있다.

 

*전통 연희란,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공연 예술로, 우리나라에는 탈놀이, 꼭두각시놀음, 판소리, 남사당놀이 따위가 있다. (NAVER 국어사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지금 시대에 맞는 풍자와 해학에 대해 함께 고민하였고 사라지지 않고 오랜 시간 함께 해온 고전의 힘을 활용하되 지금 관객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효, 충에 대한 가치관 등을 과감히 깨고 비틀어 광대스럽게 작품에 담았다.

 

- <딴소리 판> 기획의도

 

 

‘THE 광대’의 미션과 기획의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번 작품, 광대 탈놀이 <딴소리 판>에서 주목할 포인트는 연희의 동시대성, 현대성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올 수 있었던 고전의 힘을 빌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들, 즉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모두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뻔하다가도 마냥 뻔하지만은 않은 현실을 이야기한다는 점에 차별성을 두는 것이다.

 

 

 

딴소리로 전하는 시원한 위로- 거지, 거지, 그런 거지 인생사 다 그런 거지


 

<딴소리 판>은 뻔하지만은 않은 내용 전개를 위해 기존의 판소리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설정 하나가 있다. 바로 ‘거지’다. 이름하여, 깽판 전문 광대 거지들. 이들은 춘향가의 한 대목을 부르는 소리꾼의 판에 난입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극의 시작을 알린다.

 

거지들은 지갑도 없고, 내일도 없고, 염치도 없다. 그저 밥만 준다면 산이고 바다고 어디든 달려간다. 이러한 거지의 캐릭터 설정 덕분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판소리의 판들은 처음부터 기가 막히게 뒤틀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광대 거지들이 다음 판에서는 또 어떤 방법으로 깽판을 치며 등장할지가 궁금해서라도 계속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요컨대, 극 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장은 수궁가의 판을 깨는 4장이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수궁가에는 병든 용왕, 자라, 토끼가 등장한다. 그러나 극은 흥미롭게도 토끼가 등장하기도 전에 이야기가 끝난다. 수궁가에서 광대 거지들이 깨부순 판의 내용을 엿보면 이렇다. '수궁의 축성을 축하하는 잔치에 흥을 돋기 위해 광대 거지들이 모였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자 불만을 가진 광대 거지들은 병든 용왕에게 가짜 약을 팔기 시작한다.' 토끼 대신 거지 광대들이 꾀를 내어 완전히 예상치 못한 다른 전개로 극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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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딴소리 판>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데에는 광대 거지들이 판소리 판마다 깽판을 치는 이유가 꽤나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광대들은 환영은 커녕, 공연료도 못 받고 쫓겨나서 거지로 살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사랑 구걸보다 밥 구걸이 더 중요하며, 살다 보니 효도도 대의도 명분도 쓸데없으며, 대박만 꿈꾸며 박을 타는 건 다 부질없음을 말한다. 그렇게 멋대로 판을 뒤흔들어 놓고는 유쾌하게 외친다.

 

거지, 거지, 그런 거지.

 인생사 다 그런 거지.

 

처음에는 거지라서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이 들었다가도 차례차례 판을 깨부수고 극에 스며들수록 꼭 거지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전체 극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메시지이자, 결국은 사랑, 효, 대의와 명분과 같은 욕망과 가치를 품고 사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더 이상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각자에게 맞는 방식대로 소중한 가치를 지켜가며 살라고. 너무 힘주고 살지 말라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런대로 ‘인생사 다 그런 거지’ 넘겨짚을 수 있는 유연함도 있어야 다시 살지 않겠느냐고.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이 다 세상 살이고, 그게 인생 아니겠냐며 시원한 위로를 건넨다.

 

 


창작 연희극 <딴소리 판>의 매력



이번 광대 탈놀이 <딴소리 판>에서 아주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다.

 

첫째, 광대 거지들의 자유로운 몸짓에서 알지 못할 울림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이유가 있었다. 참고로, 나는 자신 신체 특기를 활용하여 자유롭게 표현해 내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온몸의 근육을 곤두세워 손과 발을 자유자재로 뻗어내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희열감과 감동이 피어난다.

  

광대 거지들의 몸짓을 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작게는 익살스러운 표정과 눈빛으로 관객을 향한 거침없는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크게는 이곳저곳 자유자재로 무대를 누비는 그들의 몸짓을 보며 마음이 흔들렸다. 긍정적인 의미로 눈과 귀가 정신없이 즐겁게 뒹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관객들도 그들의 열정에 호응하듯 쉼 없는 움직임에 틈틈이 박수를 보냈고, 제멋대로 토해내는 개성 강한 말솜씨에는 뜻하지 않은 실소 비슷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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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극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참으로 신선했다. 실제로 양 옆자리에는 연세가 조금 있으신 분이 계셨고 바로 뒷자리에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모두가 다 다른 포인트에서 반응을 하다 가도 드문드문 비슷한 포인트에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여기서, 창작 연희극의 힘이 드러난다.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흥보가와 같은 고전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올 수 있었던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존재한다. 하나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것. 다른 하나는, 여전히 과거의 이야기에서 묻어 나오는 특유의 '그땐 그랬지' 감성을 여전히 공감하는 '옛' 세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해하지 못하는 '지금' 세대가 존재한다.

 

창작 연희극은 누구나 접근 가능한 이야기가 되려면 과거의 이야기는 물론, 지금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현재의 가치와 이야기가 함께 공존해야 함을 시사한다. 옛 것을 지킨다는 말은 다시 말해, 시대에 따라 변하는 의미를 덧대 가면서 이야기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것, 그러면서 다시 이어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덧댄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감성과 지금의 감성을 함께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힘 있고 섬세한 자유로운 몸짓을 열렬히 응원하고 싶다. 지금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더 오래 머물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더 오래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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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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