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거지들의 딴소리가 선물해준 유쾌한 융합! - 딴소리 판

고리타분함과 전통의 가치 속 거지들의 재조립
글 입력 2021.04.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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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판소리는 항상 삶의 교훈을 전달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가끔은 그 교훈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전해져오며 풍화할 때가 있다. 밝게 빛났던 의미들이 더 이상 그 빛을 가지지 못한다. 이야기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이야기는 변하지 않지만, 시대는 변하고 성장할 뿐이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 효와 충 등 과거의 가치와 현재의 가치는 너무도 다르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오며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고리타분하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시대착오적인 것을 현대에서 이야기하는 것만큼 퀴퀴한 향을 풍기는 것이 더 있을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는 변화하는 내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전통에 더 이상 시선을 주지 말라는 이야기가 될 수는 없다. 한국의 오랜 역사 속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자신의 가치와 함께 빛나고 있는 우리의 것을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결국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 뼛속 깊은 곳에 장단과 흥이 각인되어 있다. 그렇기에 전통 연희에서 오는 친근함은 나도 모르게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흥 나는 우리의 것들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모두 알고 있으나 잊고 지낸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이국의 것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대이기 때문에 전통 연희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망각 속에서 다시 깨달으려면 결국 계속되는 노출과 향유가 필수적이다.


결국 과거와 현대의 융합이 필요한 지금이다.


2021년 3월 30일과 31일, 양일간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된 "딴소리 판"을 관람했다. 처음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판소리를 관람하자고 했을 때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연극, 뮤지컬이 아니라 판소리를 보러 가자고? 판소리면 뭐, 심청전이나 춘향전 이야기 하는 거야? 이미 아는 내용이잖아. 거기다 난 판소리 본 적도 없는데...' 친구에게서 앞서 이야기했던 고리타분함과 오랜 시간 향유되지 않아진 낯섦에 대한 염려가 명확히 드러났다.


그러나 그런 친구의 염려는 '딴소리 판'이 시작하자마자 바로 거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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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으로 시작한 이 공연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춘향이가 변 사또의 부름에 거절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익숙한 내용에 반가움과 편안함을 가지고 공연에 집중했다. 어둡고 고요한 무대 위, 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이의 절절한 마음과 굳건한 믿음이 공연장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런 익숙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암행어사 몽룡이 나타나야 할 때였다. 밝고 활기찬 분위기에서 "아맹거사요!"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혹스러웠다. 암행어사가 아닌 아맹거사라니. 잘못 들은 것인가 의문을 가지는 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진짜 몽룡은 온갖 거지 떼를 몰고 암행어사가 아닌 아맹거사로 뻔뻔히 나타났다. 비록 변 사또는 아맹거사를 암행어사로 잘못 들어 도망쳤으나 그렇다고 몽룡이 뒤늦게 멋진 모습으로 변하거나, 암행어사가 맞았다거나 하는 뒤늦은 수습이 이뤄지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춘향에게 절절한 사랑을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랑은 뒷전, 춘향에게 먹을 것만 구걸하며 완벽한 '거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유쾌한 언어유희, 시원한 몸짓과 함께.


결국 아수라장이 된 공연장 위에 남은 것은 거지 떼와 함께 아맹거사를 자칭하는 몽룡,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이 황당한 춘향뿐이었다. 들려오는 관객들의 유쾌한 웃음소리 속에서 춘향은 어떻게 거지가 되었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몽룡과 거지들은 그 물음에 거지가 된 이유와 함께 거지가 되어 세상을 여행하며 겪어온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이야기들이 거지들로부터 무너지고 새로 구축되기 시작한다. 광대 거지 지나왔던, 관객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판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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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며 중요하게 여기는 몇 가지가 있다. 돈, 명예, 가족 등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정해진 일정한 경로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문제점을 이야기하다가도 입을 다물게 된다. 속박된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그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몽룡네 거지들이 있다. 지갑도 없고, 내일도 없고, 염치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만을 유쾌하게 살아가지만 유쾌함만은 잊지 않는 광대 거지들이다. 있는 것이 없으니 지킬 것도 없다. 그러니 굳이 무언가를 좋게 보거나 나쁘게 보지도 않는다. 죽지 않기 위해 배를 채우는 것만이 급선무인 그들에게는 규칙은 밥에 얹어 먹을 반찬보다도 가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무소유는 결국 그들이 보이는 문제점을 여과 없이 꼬집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이 가는 곳마다 모든 규칙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눈이 먼 심봉사와 그런 심봉사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심청이는 이후 되살아나 심청황후가 되어서도 기꺼이 효도를 하기 위해 잔치를 벌인다. 이 잔치에서 몰래 봉사의 모습으로 밥 한 숟가락 얹던 광대 거지들은 효도의 부질없음을 논하기 시작한다. 심봉사가 잔치에 오기 어려웠던 과정들에 대해 설명하며 보여주기식 효도를 착실하게 비난하고, 결국 심청황후가 연 잔치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다. 아수라장이 된 틈을 타 거지들은 도망친다.


한참을 도망치다가 갈 곳 없이 떠돌던 거지들은 순식간에 심청가에서 적벽가로 넘어간다. 밥을 준다는 이야기만 듣고 조조의 군인으로 들어가나 결국에는 일개 졸병이 되었을 뿐이다. 인정 없이 수단으로 사용되는 자신의 목숨과 처지에 한탄하다가 적군 제갈공명을 마주하게 되고, 거지들은 살고자 하는 의지로 제갈공명의 혼을 정신없이 쏙 빼놓고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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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들의 유쾌한 목소리 속에서 깊이 있는 울림이 들렸다. 그들이 깨트린 판에서는 효도에 대한 과시와 모순,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목숨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당시 절절하게 느껴졌던 것들에 대해 확실한 비판을 내던진다.


그러나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고여있는 과거의 것들뿐만이 아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주제 속에서 그런데도 크게 다르지 않고 모순투성이인 현실을 함께 꼬집는다.


순간의 대박을 원하는 흥부에게 자신들은 '소원을 (실현시켜주는 의미에서) 들어주지는 않지만, 소원이 (무슨 내용인지에 대해서) 들어주기는 한다'며 한순간에 출세를 바라는 헛된 꿈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에 알려준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이야기일까. 큰 노력 없이 그저 성공만을 바라는 현대인들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이야기했던 심청가와 적벽가, 이 공연의 모든 내용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와닿았던 것은 수궁의 축성을 축하하는 잔치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불린 광대들이 형편없는 대우를 받을 때였다. 예술인들의 열정만을 가지고 놀며 그들에게 해주는 대우는 형편없는 현대 사회가 낱낱이 드러나서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식과 감탄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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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함에서 웃다 보니 '익숙한 이야기잖아' 염려하며 말했던 친구의 목소리가 울렸다. 전혀 익숙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존에 너무도 잘 알려져 있던 판소리에서 계속 딴소리를 하고 무너트린 광대 거지들의 이야기는 앞서 이야기했던 고리타분함과 전통의 가치, 그 경계를 통쾌하게 재조립했다. 소중한 것은 취하고 버려야 할 것은 확실히 목소리를 낸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우리의 것을 표현하는 그들의 목소리와 춤사위는 현대 사회가 필요로하는 융합이 담겨있었다.


평소 한국의 것들을 좋아하지만 점점 사라지고 있는 모습에 외로움이 컸다. 특히 판소리나 탈춤은 뮤지컬이나 연극만큼 많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그렇기에 더 광대의 '딴소리 판'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다. 멋진 전통 연희를 발견했다는 기쁨과 앞으로도 이런 공연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가슴에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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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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