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쓰고 달아, 달고 써 - 위저드 베이커리 [도서]

선택이라는 가장 보통의 마법이 쥔 저울, 의무와 권리
글 입력 2021.04.0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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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2월 스포츠계에서 시작되어 연예계로까지 번진 이른바 ‘학투(학교폭력 미투)’로 한동안 세간이 시끄러웠다. 특히 학투 논란은 과거의 시제로 고발되는 성격을 띠기 때문에, 연예 기획사나 소속 협회의 대처 방식 또는 첨예한 진실 공방 등 다양한 쟁점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과거의 일을 개인과 사회가 ‘책임’지는 마음가짐과 그 방식에 대한 고민이 주요하다는 생각이다. 학폭 논란에 연루된 개인들 그리고 사건 당시 그들이 올바른 책임을 지도록 가르치지 않고 폭력을 묵인한 어른들 모두가. 이처럼 잘못된 선택과 그에 따르는 책임에 관한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 떠오르는 소설 한 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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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의 장편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는 2008년 「완득이」를 이어 2009년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2020년에도 「아몬드」, 「시간을 파는 상점」, 「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 등의 작품과 함께 청소년 문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스테디셀러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1인칭 화자 ‘나’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나’는 어머니를 잃고 새어머니와 의붓여동생을 얻는다. 새어머니 ‘배선생’은 실패로 돌아갔던 최초의 결혼생활을 재혼으로 보상받기를 바랐고, 이는 가정 내 공간 확보에 대한 욕망이 되어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의붓여동생 ‘무희’를 성추행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집으로부터 쫓기듯 도망쳐 단골 빵집 ‘위저드 베이커리’에 숨어든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평범해 보이는 풍경 뒤로 기묘한 마법이 숨겨진 판타지 공간이다. 오븐 뒤로 감춰진 마법사 점장의 공간, 낮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밤에는 새의 모습으로 사는 직원 파랑새, 그리고 인터넷 쇼핑몰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마법의 빵들. ‘나’는 위저드 베이커리에서의 생활을 통해 마법에 깃든 인간의 욕망과 삶을 알아간다. 하지만 그 생활은 영원할 수 없었으니,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자신 앞에 놓인 ‘선택’의 무게를 점차 실감한다.

 

 

 

우리는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누군가의 전적인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서기에는 자신감이 2프로 부족한 나이. 지구에서 가장 한심스러운 숫자 열여섯.’

 

「위저드 베이커리」가 청소년 문학으로서 꾸준한 공감과 사랑을 받아 온 이유가 이 문장에 있다고 여긴다. 청소년을 청년과 소년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보고 – 대개 중·고등학교의 시기로 지칭되지만 - 만 23세인 나를 청소년에 포함한다면 더더욱 긍정할 수 있다.

 

요즘의 청소년은 푸릇하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보다도 성인과 아동 사이에 끼인 위태로운 모습의 시기에 가까워 보인다. 복잡다양해진 현대의 불안만큼이나 청소년 시기에 겪는 정체성의 혼란 또한 과거보다도 여러 방면에 걸쳐있게 됐고, 특히 바이러스로 인한 불규칙한 일상은 학생으로서의 소속감과 정체감을 희미하게 만든다.

 

 

도대체 그 상황에서 가지고 나올 수 있는 물건이라곤 없었다. 우연히 수중에 있던 건 언제라도 뀌쳐나갈 수 있기 위해 늘 바지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집 열쇠뿐. (뛰쳐나가는데 열쇠가 왜 필요하지? 언제든 돌아올 곳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 뭐하러 탈출을 꿈꾸지? 이 참을 수 없는 한계와 모순이라니.)

 

 

주인공 ‘나’는 청소년 시기에 경험할 수 있는 고립감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 무렵부터 말더듬을 앓으면서 타인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주어와 서술어가 온전히 갖춰진 한 문장을 내뱉기 어려운 그에게는 ‘예/아니오’ 정도의 간단한 대답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아버지, 배선생, 학교 선생님, 친구들 그 누구도 더듬는 문장 그 너머의 마음에 귀 기울여주지 않으니 어떤 해명도 고백도 통하지 않는 그의 세계는 그렇게 자신의 고립을 체념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틀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의무’



‘나’가 위저드 베이커리에 숨어든 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떠밀리듯 생활하게 된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나’는, 선택 행위의 가치를 깨닫는다. 그 핵심은 다음의 전제에 있다. ‘단 모든 마법은 자기에게 그 대가가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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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품명 : 악마의 시나몬 쿠키 2개 1입 9,000원

 

상세 정보 : 반드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먹이세요. 평균 2시간 동안 뇌신경세포를 교란시켜 그가 무슨 일을 해도 실수를 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중요한 발표나 발언을 할 때도 주어 서술어가 하나도 맞지 않고 주제에도 벗어나 누가 보아도 맛이 간 사람처럼 보일 것이며, 포만 상태라면 괄약근을 조절하지 못하고 옷에 실례할 수도 있답니다. 공복 상태에서 이것만 섭취했다면 지속적인 구역질을 일으킬 것입니다. 실명은 밝힐 수 없지만, 휴정 시간에 이것을 먹은 뒤 법정에서 퇴장당한 악덕 변호사가 그 후 다시는 사건 수임을 하지 못했다는 전설도 전해져 온답니다!

 


악마의 시나몬 쿠키를 친구에게 먹인 한 소녀는, 쿠키로 시험을 망친 친구가 극단적 선택을 함으로써 매일 밤 악몽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대가를 치른다. 마법사 점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과거 그는 마법사로서의 유혹과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인간의 목숨에 손을 댔다. 하지만 그가 살린 목숨은 다시 죽기 전날 밤 그의 사업을 말아먹은 동업자와 그의 전 아내, 아내의 새 남편 그리고 두 딸까지 총 다섯 명을 살해했다.

 

점장은 마법을 사용해 또 한 번 사람들을 살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틀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행위였기에, 점장은 잔인한 기억을 안고 평생 반성할 책임을 짊어지기를 택했다.

 

인간은 언제나 옳은 선택만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선택에 따르는 책임이 무거워야만 하는 게 아닐까. 선택은 곧 책임이다.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



하지만 ‘선택은 곧 책임’이라는 문장은, ‘선택에 뒤따르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당위명제면서 ‘선택한 자에게 책임질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명제이기도 하다. 권리로서의 선택은 행위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선택 행위의 가치란 책임으로서의 의미와 권리로서의 의미가 함께함으로써 비로소 완전해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나’에게 빵은 ‘진절머리나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초강력 아이템’이다. 10분 안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먹었던 청량리역의 대보름빵은 그 날의 기억과 며칠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가 있는 ‘과거’를 불러오고, 위저드 베이커리 매장에 진열된 빵들은 배선생과 집 안에서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이곳의 단골이 되어야 했던 지긋지긋한 ‘현재’를 불러온다.


 

이제는 누군가가 대신 말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나의 의지로 나의 선택에 대해 말할 차례였다.

 

 

하지만 위저드 베이커리 생활을 통해 맛본 마법의 ‘빵에는, ··· 과거와 현재 대신 미래가 들어 있’었다. 따라서 ‘나’는 선택의 여지 없이 떠밀려 안았던 불행한 과거와 현재가 삶의 전부이지 않다는 사실을 배워간다.

 

실제로 ‘나’는 위저드 베이커리에 머무는 동안 여러 선택 앞에 놓인다. 점장 대신 몽마를 대신 당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고, 그곳에 있는 동안엔 언제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지에 대한 선택이 풀지 못한 숙제처럼 언제나 불편하게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마다 ‘나’는 기꺼이 선택했고, 또 그에 따르는 권리와 책임을 누리고 또 무겁게 짊어졌다. 그리하여 분노 또는 냉소였던 ‘나’의 과거는 책임과 권리로서의 선택을 통한 순수한 기쁨과 감격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선택’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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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장은 ‘나’가 집으로 돌아갈 즈음 쿠키 모양의 ‘타임 리와인더’를 선물한다. 고로 ‘나’는 배선생을 만나기 전으로 또는 무희가 성추행을 당하기 전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으로, 언제가 됐든 원하는 시점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위저드 베이커리」는 총 두 가지의 서사로 열린 결말을 맺는다. ‘나’가 타임 리와인더를 성공적으로 사용한 ‘Y의 경우’의 결말, 타임리프에는 실패했지만 위저드 베이커리에서의 기억을 포함한 그동안의 시간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N의 경우’의 결말. 이중 어떤 결말을 믿고 또 ‘선택’할지는 독자 개개인에게 달려있다.


 

그저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틀릴 확률이 어쩌면 더 많은, 때로는 어이없는 주사위 놀음에 지배받기도 하는, 그래도 그 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상처가 나면 난 대로, 돌아갈 곳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사이가 틀어지면 틀어진 대로. 그렇게 흘러가는 삶을, 단지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이 실은 더 많을 터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두 가지 결말 중 내 마음이 기우는 결말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나는 N의 경우의 결말을 더 자주 펼쳐보곤 한다. 이유는, 이 결말이 조금 더 우리답기 때문이다. 매일 그날 몫의 후회와 반성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과거를 다르게 가정하며 미련을 꼬리로 달아놓는 하루. 또 오늘의 다짐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현재를 살기 위해 주먹을 꼭 쥐어보는 마음. 이러한 것들이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번거롭고 괴로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쌓아 올린 과거와 현재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고 또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소중하기 때문에.

 

글을 읽는 당신은 오늘 어떤 선택을 했는지 또 어떤 의무와 권리를 무겁게 짊어지고 걸어왔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매 순간 가장 나다우면서도 최선인 현재를 살아가려 애쓰는 그 마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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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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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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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지날
    • 최근에 읽은 책이었는데 에디터 님 리뷰를 보고 훨씬 잘 이해가 되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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