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워질 그림이니까, 최선을 다해서 그려요 - 더스트맨

보이지 않지만, 마주해야 할 것들에 대하여
글 입력 2021.04.01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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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경보가 해제되었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창문 틈새로 빛이 들어온다. 책상 위 먼지가 보인다. 그게 다였다.

 

<더스트맨>을 보고 집에 돌아왔다. 불 꺼진 방, 핸드폰 불빛이 길을 비춘다. 떠다니는 먼지가 보인다. 나는 잠시 형광등을 켜지 않았다.

 

*

 

<더스트맨>은 보통 사람들에게 신선한 '더스트아트'를 소재로 하고 있다. 서울역 외부 길가, 혹은 지하. 수많은 사람이 목적지를 향해 가는 그곳에서 또 다른 수많은 사람은 목적지 없이 잠을 청한다.

 

사실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어두운 분위기의 독립영화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더스트맨>은 그 과정에 '작은 먼지 하나'를 더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가요나 단순한 배경음악의 느낌이 아니라, 기승전결의 구조가 긴장감을 더하는 음악은 영화의 맛을 2배 이상 살려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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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모아'와 마음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떠돌이 생활을 선택한 '태산'. 모아는 터널 벽에 그림을 그리다 태산을 만나고, 둘은 그림을 통해 교감한다.

 

주인공의 이름은 속담에서 따 왔다고 한다. 티끌 모아 태산. 작은 먼지가 쌓이듯, 작은 붓질 하나가 큰 캔버스를 채우듯, 작은 위로가 모여 마음의 치유를 이끌듯. 반대로, 작은 상처가 쌓여 마음속에 움직이지 않는 큰 벽을 세우듯.

 

곧 모아의 그림은 흔적도 없이 하얀색 페인트로 묻힌다. 태산이 묻는다. "지워질 그림을 왜 이렇게 예쁘게 그려요?" 모아가 대답한다. "지워질 그림이니까요?" 모아는 사실 이 터널 벽이 다시 하얗게 칠해지기를 바라고 그림을 그린 거라며, 깨끗해진 벽을 보고 기뻐하기까지 한다.

 

가끔 유한하기에 소중한 것들이 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유한하기에 때로는 흘러가는 이 시간을 붙잡고도 싶고,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차피 지워질 그림이니까, 그 그림이 존재하는 한정된 시간이 그만큼 소중하니까 예쁘게 그린다면, 어차피 유한한 내 삶도 좀 더 예쁘게 그려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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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 '틴들현상'에 대해 말하는 대사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던 먼지도 빛을 받으면 반짝인다. 가끔 귀찮고 보이지도 않지만 우리가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 존재를 잊지 말아야 할 것. 그게 바로 먼지다. 이 먼지가 상징하는 것으로 세 가지 정도를 이야기하고 싶다.

 

끝없이 공기 중을 떠도는 먼지와 같은 태산의 삶, 그리고 홈리스들의 삶. 우리의 삶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늘 주변에 존재하는 이들.

 

끝없이 마음속을 헤집어 놓는 우리의 상처. 가끔 잊은 것 같아도 완벽하게 지우지 않았다면 어느날 갑자기 등장해 버리는 녀석.

 

마지막으로, 끝없는 물음표만을 만드는 나 자신.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그래서 가끔 주변을 보는 일에 너무 바쁠 때면 나를 보는 일을 잊는다. 내가 빛을 찾아 헤맬 때 사실 가장 빛나는 곳은 내 시야의 반대편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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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인 '더스트맨'은 그렇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더스트, 즉 먼지와 같은 삶을 사는 태산과 먼지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는 태산. 앞으로의 태산은 좀 더 후자에 가까운 삶을 살 것 같다.

 

'더스트 아트'는 결국 지워지기 마련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먼지를 씻어내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마치 하얀색 페인트로 덮여 버린 모아의 터널 그림처럼.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사라져버리기에 더 소중한 것을, 그리고 빛이 있는 한 또 다른 그림이 보이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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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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