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양면성과 모순에 대하여, 모스크바 서핑클럽 '저공비행' [음반]

총체적으로 구현되는 양면성과 모순
글 입력 2021.03.2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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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취(情趣)란,

 

깊은 정서를 자아내는 흥취를 의미한다. 특별한 감상을 자아내는 시간이나 장소를 두고 사용되어 ‘봄의 정취’, ‘타국의 정취’ 등으로 쓰인다. 정취는 구체적인 감상이기보다 모호한 연상에 가깝다. 봄의 햇살, 공기, 온도, 냄새까지 엮인 복합적인 감정은 정취라는 한 단어에 포함된다. 정취는 다른 시공간에 대한 연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취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소개할 밴드의 이름이 ‘모스크바 서핑클럽’이기 때문이다. 설국 모스크바와 여름의 서핑을 병기한 밴드의 이름처럼, 역설적이지만 또렷한 정취를 그리는 이들의 음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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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서핑클럽은 정기훈(보컬, 기타), 명진우(베이스), 김규리(건반), 정현진(드럼)으로 이루어진 4인조 밴드다. 60-70년대의 블루스 트리오처럼 투박하고 혼탁한 즉흥연주를 기반으로 사이키델릭과 재즈를 섞은 음악을 선보인다. 2019년 4월 결성되어 데모앨범과 다수의 무대를 통해 활동하다 첫 정규앨범 '저공비행'으로 밴드의 시작을 알렸다.


무엇보다도 밴드의 이름이 가장 눈길을 끈다. 모스크바 서핑클럽, 차가운 겨울의 모스크바와 뜨거운 여름 서핑의 결합은 독특한 감성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춥고 바다도 없는 모스크바에서 서핑하는 모임'이라는 이름에 무모한 시도를 긍정하는 의미를 담았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엔 모순적인 이름이다. 하지만 이들은 '언어로 표현되는 감정의 갈래로는 포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전달되길 바란다'고 했다. 다시 말해 언어적 차원의 모순이 음악적 표현으로 해소되는 것이다. 설국의 모스크바와 여름의 서핑이 만나, 모순적인 단어가 음악으로 이해되는 과정이 이들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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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정규앨범 '저공비행'의 사운드는 밴드의 이름과 비슷하다. 모스크바와 서핑이라는 모순적인 의미를 음악의 양면적인 사운드로 녹여냈다. 차가운 사이키델릭 록과 뜨거운 서프락을 병행하며 재즈와 그루브를 엮은 모습이다.


악기의 역할 또한 흥미롭다. 날카로운 기타가 곡을 이끌고 공명하는 신디사저가 전체적인 색감을 구성한다. 드럼과 베이스는 느슨하게 공간을 채우기도 하며, 그루브와 통통 튀는 리듬으로 장르를 전환한다. 구성원의 역할 속에서 달라지는 연주는 앨범의 다양성을 더한다.


모순과 양면성은 앨범의 시작부터 과감히 드러난다. 캔 따는 소리로 시작하는 ‘저공비행’은 첫 테마에서 이중적 화성을 제시한다. 메이저 코드를 연주하던 기타는 마디의 끝마다 마이너 음계를 연주하면서 어긋난 화성을 의도한다. 짧은 반복 속에서도 계속되는 화성의 전환은 곡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저공비행’의 가사 또한 모스크바 서핑클럽이라는 주제를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얼음이 뒤덮인 강물을 가르면서’, ‘발 아랜 서핑보드가’라고 말하는 가사는 차가운 모스크바의 정취와 서핑이라는 행위를 결합한다. 양면적인 온도는 ‘차가운 물살’과 ‘뜨거운 태양’으로 표현된다. 나란히 제시된 시상들은 ‘이상한 기분이야’, ‘가슴 설레레어 와’라는 감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앨범은 양면적인 곡들로 채워졌다. ‘Love of Honesty’는 서프락의 재기발랄함이 돋보이는 동시에 신스팝의 공간감이 섞여 있는 곡이다. ‘Through Her’ 또한 빠르고 이국적인 테마를 보여준 후 을씨년스럽고 느린 진행의 교차로 곡을 채운다. 곡은 7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지지만, 가파른 전환을 통해 길이를 느끼기 어렵게 한다.

 

 


 

‘저공비행’은 밴드의 연주가 중심이 된 앨범이다. 이러한 호흡과 합은 ‘Magarine’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멜랑콜리한 기타 테마로 시작하는 곡은 로파이한 신디사이저와 함께 드럼의 그루브가 더해진다. 곡은 우울하고 느슨한 테마를 반복하는데, 구성의 끝마다 등장하는 코러스를 통해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해소된다.

 

모스크바 서핑클럽은 ‘Magarine’을 두고 ‘소화하지 못한 투박함이지만 치열한 미감’, ‘섬뜩함과 달콤함이 공존하는 현대적인 공산품 마가린’이라고 표현했다. 반복되는 테마 속에서 밴드만의 이중적인 편곡 방법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모스크바에서의 서핑이란 불가능한 환상이었을까, 앨범의 후반부는 모호하고 몽환적인 트랙으로 채워진다. 강렬한 슈게이징 넘버인 ‘Period’는 그리움과 슬픔을 노래하며, 드림팝이 연상되는 ‘백야로’는 ‘골똘히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네’라고 말하며 끝없는 의문을 제시한다.

 

*


첫 작품이 정규 앨범이라는 것은 꽤 대단한 도전이다. 일반적으로 아티스트의 정체성은 지속적인 활동과 대중과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곤 한다. 많은 아티스트들은 싱글이나 적은 볼륨의 앨범으로 조금씩 방향성을 고쳐나가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음악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큰 노력과 비용을 투자해 정규 앨범을 발표한다. 그래서 첫걸음으로 정규 앨범이 되는 것은 위험한 도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앨범을 발표한 이유는 밴드의 메시지를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이 확고한 음악은 앨범의 세련됨이나 완성도를 넘머 작품의 단단한 완결성을 구현한다. 연주, 화성, 가사를 포함한 음악의 모든 요소가 같은 메시지를 말하게 된다.


모스크바 서핑클럽의 첫 앨범이 그렇다. ‘저공비행’은 확고한 메시지를 지녔다. 모순과 양면성, 차가움과 뜨거움이 공존하는 모습은 앨범의 모든 요소에서 드러난다. 화성, 가사, 구성, 연주 어디에 집중하던 밴드가 말하는 모호한 공존을 느낄 수 있다. 덕분에 ‘모스크바 서핑클럽’이라는 이름의 독특함으로 시작한 경험은 앨범의 마지막까지 지속된다.


모스크바에서 서핑을 탈 수 있을지 의심했다. 하지만 모스크바 서핑클럽의 음악은 모순적이고 모호하기에 더욱 환상적인 타국의 정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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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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