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완벽한 여행은 없다. [여행]

글 입력 2021.03.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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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반복되는 러닝타임 속 특별한 존재이다. 그러니 여행은 모든 게 완벽히 맞아떨어져야 한다.’


불과 1년 전 내가 강력히 주장하는 바였다. 여행은 자고로 완벽해야 한다는 것. 당시에는 계획표를 짜기만 하면 모든 건 생각한 대로 흘러가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계획에 없던 일이 발생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치밀한 계획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번번이 생기는 변수들. 그 속에서 나는 고통을 느끼기도 했고, 절망을 느끼기도 했으며 때로는 화내기도 했다. 좋은 기억만 안고 싶은 생각으로 떠난 여행이 그렇게 되지 않음에 마냥 속상하기만 했다.


얼마 전 휴대폰에 쌓인 여행의 흔적들로 추억을 되새기던 중 문득 ‘완벽한 여행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일이 내가 생각한 대로 순조롭게 흘러가는 일은 없다는 말도 존재하지 않는가. 어쩌면 모든 건 불완전할지도 모른다. 여행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기에 나의 모든 여행은 불완전했다. 불완전했기 때문에 여전히 ‘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그중 세 가지를 말해보려 한다.

 

 


#여행 새내기, 만신창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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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1월, 친구들과 떠난 제주도에서 우리는 여행 새내기다운 실수를 범했다. 처음 계획할 때에는 야심 차게 해외로 방향을 잡았지만, 돈이라는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재빨리 노선을 틀어 국내 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주도를 목적지로 잡고, 카페에 모여 앉아 하나씩 계획을 짰다.

 

그 당시 우리들은 모든 게 처음이었다. 5명이라는 다 인원으로 여행을 가는 것도, 오로지 친구들과 비행기를 타고 타지로 가는 것도. 처음인 사람들이 모여 제대로 된 사전 조사 없이 계획을 짜면 어떤 여행이 완성되는지 적절한 표본이 우리의 첫 여행이었다. 우리는 치명적인 실수 두 가지를 했다.


첫 번째 실수는 ‘운전면허 미소지’이다. 제주도는 차를 렌트하지 않으면 여행하기 굉장히 힘든 지역이다. 우리는 미처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다음 목적지에 따라 길 찾기 앱을 이용해 지도가 안내해주는 대로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다. 나는 이때 처음 알았다. 제주도의 버스는 방학이 되면 배차 시간이 더욱 길어진다는 것을. 30분대기는 기본이었고 나중에는 한 시간씩 기다리기도 했다.

 

첫날에는 버스 정류장 전광판에 표시된 시간을 보고 경악했지만, 하루하루 날이 지나자 어느덧 30분 뒤 도착이라는 문구를 보고도 ‘오, 얼마 안 걸리네.’하며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제주도에서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면 하루에 5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내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친구와의 대화가 있다.


“우리 정류장 몇 개 지났어?”

“44개”

“몇 개 남았는데?”

“128개”

 

‘128개’를 말하던 친구의 초점 잃은 눈동자와 충격을 받아 벌어졌던 나의 입. 그런 우리의 마음도 모른 채 무심히 덜컹거리며 바퀴를 굴리는 버스. 이 순간 느껴졌던 감각들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두 번째 실수는 ‘날씨를 고려하지 않은 옷차림’이다. 나름대로 여행 경력이 쌓인 지금이야 디자인과 실용성의 비율을 고려한 옷차림을 준비하지만, 당시 우리들의 생각은 ‘여행이라면 응당 한껏 꾸며야지.’였다. 제주도로 넘어오기 전날 서울에서 하루를 보냈다. 김포공항으로 가던 서울 새벽의 차디찬 공기를 잊지 못한다. 부산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추위였다. 그런 서울의 추위를 제주도는 바람이라는 무기를 통해 쉽게 지르밟았다. 서울이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주도의 칼바람은 얇은 코트와 치마 속으로 스며들었고, 우리는 덜덜 떨면서 넓은 거리를 배회했다.

   

교통과 날씨를 파악하지 않아 제주도에 있던 4박 5일 동안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다. 살을 아리는 추위, 기약 없는 기다림, 길을 찾아 끝없이 걸었던 두 다리. 나의 첫 여행은 호된 신고식을 선사했다.

 

 

 

#울고 싶었다. 아니, 울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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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와 같은 해 여름, 코타키나발루로 떠났다. 당시 코타키나발루가 한창 인기 있었던 때라 최신 정보도 많았고 첫 해외이기 때문에 사전 조사를 매우 철저히 했다. 그래서 모든 게 완벽했고, 완벽하게 마무리될 줄 알았다. 생각만큼 뜨겁지 않았던 날씨, 편리했던 교통, 저렴한 물가, 친절했던 사람들. 4박 6일이라는 시간 동안 나를 감쌌던 모든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행복한 기억들만 가득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은 밤 비행기를 타고 새벽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예상외로 공동 경비가 꽤 많이 남아 마지막 날 N 분의 1로 나누어 대형 쇼핑몰에서 마지막 쇼핑을 즐겼다. 쇼핑몰 마감 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와 호텔에 가서 짐을 싸고 바로 공항으로 넘어가려던 계획은 쇼핑몰을 나오면서부터 완전히 망가졌다. 쇼핑몰 마감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모두 같은 곳을 향해 나갔고, 10분이면 가는 호텔을 장장 한 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캐리어에 짐을 욱여넣고 곧바로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를 탔다.


헐떡이는 숨을 참고 뛰어서 창구에 도착했지만,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심장이 내려앉거나 눈물이 나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냥 애걸복걸 빌었다. 할 수 있는 모든 영어를 동원하여 겨우겨우 티켓을 발권한 후 곧장 달렸다. 그러나 공항 안은 이미 엄청난 대기 줄이 있었고, 빠르게 움직이는 시간과 느리게 줄어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절망을 느꼈다.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걱정이 머리를 스쳤다. 내일 가장 빠른 비행기를 예매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우린 돈이 없으니 오늘 쇼핑한 것들을 다시 환불을 해야 한다거나, 공항에서 하루 노숙을 해야 한다거나, 앞으로 다시는 여행을 허락 안 해주면 어쩌지, 하는 걱정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탑승에 성공하기는 했다. 이륙하기 10분도 남지 않았을 때 자리에 앉았던 걸로 기억한다. 자리에 앉아 역동적으로 뛰어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한참 동안 스스로 진정시켰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서 다행이었지만, 나는 그때 절망감을 넘어 공포에 잡아 먹혔던 것 같다. 지금도 친구들과 이때를 회상하면 다들 목소리가 커지곤 한다. 정말 무서웠다며. 울고 싶었다며.


사실 코타키나발루에서 있었던 시간은 비행기를 제외한다면 더없이 행복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뻔했던 경험은 결코 잊을 수가 없기에, 이걸로 인해 또 한 번 불완전한 여행이 탄생했기에 말하고 싶다.

 

 

 

#이유 없는 친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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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2월, 급작스럽게 친구들과 하노이로 떠났다. 베트남의 공기를 음미하기도 잠시, 우린 사기를 당했다. 새벽에 하노이 공항에 도착해 호텔로 가기 위한 택시를 잡으려는 중 현지인이 말을 걸어왔다. 밖에 자신의 택시가 있으니 그걸 타고 가자고. 얼마에 해주겠다고. 사실상 나쁠 게 없는 조건이었다. 왜냐하면, 하노이에 도착한 날이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지라 대대적으로 택시 자체가 없었고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던 사람과 운전석에 앉아있던 사람. 두 명의 현지인과 다섯 명의 우리는 같은 차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미리 돈을 준비하기 위해 봉투에 있던 돈을 꺼내 세고 있던 중, 조수석에 앉은 사람의 손에 돈이 들리더니 택시비를 제외한 돈이 다시 넘어왔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친구는 남은 돈을 마저 세었다. 한참을 세고 나서야 알았다. 20달러가 사라진 것을.


전체 경비의 절반만 공항에서 환전했던 지라 나머지는 달러로 이루어진 돈 봉투에서 약 22만 원의 돈이 증발하였다. 다섯 개의 머리를 굴려 봐도 정답은 하나였다. 현지인의 손에 돈뭉치가 넘어갔던 찰나에 돈이 ‘밑장빼기’ 된 것을. 차 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졌고 앞의 두 사람도 우리가 눈치챘음을 인지했는지 곧잘 하던 농담도 전혀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운전만 했다. 정말 많이 고민했다. 달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러나 타국에서 초면의 성인 남자 두 명과 밀폐된 공간에 있다는 것은 그들 뜻대로 따라줘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결국, 목숨값이라 생각하자며 달관한 채 호텔에 도착했다.


이후 우리는 길거리에서 돈은 물론이고 휴대폰조차 함부로 꺼내지 않았다.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은 의심부터 했다. 그때 나는 화나는 건 물론이고, 따지지도 못하는 상황의 억울함과 힘들게 모은 돈이 사라졌다는 허무함도 들었다.

 

 

 

#불완전하기에 더 아름답다.


 

여행이 주는 기억은 한없이 미화되는 특징이 있다. 흔들리며 강해졌던 시간으로 인해 여행은 더욱더 단단해지고 각색되기도 한다. 특히 내가 흐르는 시간 속에서 구르고 뒤섞일 동안 서랍 속에서 그대로 정지되어버린 여행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볼 때 벅차오르는 감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좋은 감정과 양가적으로 이루어졌던 불행의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행복함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여행 속에서 배움과 성장을 얻는다고 말한다. 과연 그들이 썼던 각본대로 모든 일이 흘러갔다면 배움과 성장을 얻을 수 있었을까. 분명 진주처럼 빛났던 ‘여행’이라는 이름하에 진흙탕 같았던 순간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진흙탕 앞에서 약해지기도 강해지기도 했던 불완전한 시간이 모여 ‘여행’이라는 두 글자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그렇기에 더욱 아름답다.


모든 여행은 불완전하기에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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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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