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곧 떠날 나의 도시, 딜라이트 서울

글 입력 2021.02.2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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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서울을 떠난다. 20여 년을 함께했던 나의 도시를 떠난다는 사실이 조금은 힘겨웠다.

 

알고 지내던 동네 복권방 아저씨, 내 바지를 찰떡같이 줄여 주시던 수선집 아주머니, 갈 때마다 서로 안부를 주고받던 단골 카페. 3분만 걸어나가면 서울, 강화, 인천공항, 강남, 종로로 뻗어갈 수 있는 버스가 있었는데. 더군다나,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 특히 <서울>이라는 지역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해진 시기였다.

 

<딜라이트 서울> 전시를 가기 전 가졌던 의문이 한 가지 있었다. 이 전시를 통해, 나는 서울에 대한 집착을 견고히 할 것인가, 아니면 한적한 동네로 이사하는 것에 대한 설렘을 얻을 것인가.

 

결과적으론, 두 가지를 다 얻었다. 집착의 이유는 전시 주최지가 ‘서울’이기에 최신 기술이 결합된 인터랙티브 전시를 가장 먼저 경험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딜라이트 강원> <딜라이트 제주>처럼, <딜라이트 서울>를 잇는 전시 시리즈가 열릴 것인가? 아마 긍정적으로 대답하진 못할 것 같다. 문화예술 대부분의 분야는 서울이라는 공간을 기점으로 발전해가기 때문에, 나는 그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전시 안에서 서울이라는 지역의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 밤이 되어도 빛이 사리지지 않는 도시, 끊임없이 들려오는 좋고 나쁜 소식들. 그러한 종류의 혼란 속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왔으니, 평화로운 지역에 대한 동경을 맛보기도 했다.

 

 

The Myth_01.jpg

The myth

 

 

전시회 초입부, 나를 수호하는 십이지신을 만났다. 다른 한국적인 전시회와 가장 다른 부분이 이런 것들이었다.

 

내가 만들어가는 전시, 나의 바코드 한 줄로 만들어진 미디어를 관람하는 것. ‘나’에 대한 것들이기에 높은 몰입도를 가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사주 오행을 활용하여 운명을 점친다. 서양에서는 별자리를 활용한다.

 

해당 섹션을 경험하며 외국인 친구들이 떠올랐다. 한국 ‘전통힙’을 공간 전체에서 느낄 수 있다니, 그들이 방문할 수 있었다면 어찌나 자랑스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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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delight

 

 

서울에 오래도록 살아오며, 밤의 치안과 빛의 피로감은 떼놓을 수 없는 항목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피로감 안에는 자동차 경적 소리, 물건이 나동그라지는 소리,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의 소리 탓이었을 수도 있겠다.

 

Welcome to delight에는 산의 소리와 빛이 함께한다. 내가 느끼던 피로감과는 사뭇 다른, 환상 속 공간과 같은 모습이었다. 바뀌어가는 청사초롱의 빛을 바라보며 서울의 낮, 밤을 떠올렸다.

 

어쩌면, 후에 내가 그리워할 빛의 변모를 한 번에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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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ho of Soul

 

 

또, 한글의 그래픽이 주는 매력이 있었다.

 

내가 아는 언어를 그래픽, 타이포로 풀어내기는 꽤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그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그것의 형태적 특성에 대해서는 무딘 채 살아가는 게 대부분이니까.

 

나는 ‘홋홋홋’을 입력했다. 우리나라 글자의 타이포를 가장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글자라는 생각이었다. 외국인 관광객 몇 명이, ‘모자를 쓴 사람이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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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entic Street

 

 

도시마다 ‘사람’이 주는 영감이 있다. 프라하에 지낼 땐 그들의 온기와 여유를 닮아 돌아왔고, 파리에 지낼 땐 ‘파리지앵’이 주는 클래식한 로망들을 담아왔다.

 

많은 사람들의 사진이 스쳐 지나가는 거리를 보며, 서울에선 어떤 것들을 담아 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빠르게 움직이지만 과거의 것들을 지키려는 노력. 그 노력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깊이가 우리 도시의 ‘힙’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모든 섹션을 한 글에 담진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다소 혼란스러운 전시였기 때문이다. 애써 서울에 대한 미련을 털어내려 노력하다가도, 우리들이 흠씬 느껴온 편리함과 빛의 물결을 떠올리면 그리운 감정이 달라붙는다.

 

또, 한국 콘텐츠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고민했다. 한 번 스쳐 지나갈 유행이 아니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문화 강국의 자리를 꿰차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낯설도록 화려해지는 거리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것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

 

 

++

 

서울을 테마로 한 실감형 미디어 아트 전시 <2021 딜라이트 서울(2021 Delight Seoul)>을 6월 30일까지 인사 센트럴 뮤지엄에서 만날 수 있다.
 
음악, 영화, OTT 콘텐츠 등 미디어의 발달과 문화의 무경계성으로 한국의 문화는 세계적으로 급부상 중이다. 이와 더불어 디자이너, 아티스트, 미디어 기업도 전 세계를 무대로 많은 전시와 최고의 미디어 기술을 선보였다. 이에 디자인실버피쉬는 해외에서 인정받은 미디어 전시 기획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서울의 다이내믹한 변화를 주제로 삼아 실감형 콘텐츠로 제시한다.
 
'실감형 미디어'는 오감을 자극하여 생생한 경험을 제공하는 미디어로 가상현실, 증강현실, 홀로그램 등의 기법이 활용된다. 이번 전시는 순수한 한국의 미디어 전시로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중인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가 참여해 서울의 문화와 일상이 담긴 이미지들을 여러 가지 미디어를 활용해 공감각적으로 재구성했다.
 
서울의 잠재력을 품은 서울의 모습을 시작으로 전통힙을 느낄 수 있는 환영, 한국인의 소울을 응집한 한글과 우리의 일상이 가진 힘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거리, 은유 등 총 11개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친숙함을 낯설게 재구성한 공간에서 익숙함 속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테마별로 바코드를 통한 비대면 인터랙티브 체험을 통해 청각, 미각, 공감각을 자극하고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경험으로 인문학적 상상력을 실현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디자인실버피쉬 홍경태 대표는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공간이라서 특별함을 몰랐던 서울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가진 것들의 내면의 힘을 다시 한번 발견하고 코로나19로 인해 고단한 마음에 힘을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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