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광주가 사랑하는 사람, 이강하 [미술]

민주, 인권, 평화를 예술로 외친 이강하 작가의 작품들
글 입력 2021.02.2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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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의 화가’로 불리는 한 작가가 있다. 바로 故이강하 작가이다. 그는 한평생 무등산을 품은 광주에서 그의 예술 세계를 올곧게 펼쳐나갔다.

 

최근 광주 양림동에는 이강하 작가를 기억하기 위한 미술관이 생겨났고, 많은 시민들이 다시금 작가를 찾으며 그의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광주의 오월, 평화, 그리고 남도에 대한 애정이 절로 느껴진다. 광주가 사랑하는 사람, 이강하 작가를 만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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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하 작가

 

 

이강하 작가는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스물여덟의 나이에 광주의 한 대학교 미술학과에 입학하였다. 입학과 동시에 5·18민주화운동을 겪게 된 그는 시민군으로 참여해 항쟁의 목소리를 냈고, 걸개그림을 그려 부당함과 맞서 싸웠다. 이는 옥중 생활로 이어졌고 이곳에서 민주, 인권, 평화에 대한 열망을 다지게 되었다.

 

또한 그는 남도에 대한 애정이 큰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남도 예술의 맥을 잇고자 ‘남맥회’를 창립했고, 남도의 크고 작은 역사를 예술로 기록하고 남도 예술가들의 소통을 이끌어냈다. 남맥회는 지역 예술계를 유지시키는 크나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광주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을 화합하는 주축이 되고 있다.

 

그는 삶의 마지막까지 작품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아직 표현하고 싶은 세계가 많은데, 삶을 끝내야한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쳤다고 한다. 예술로 사회와 사람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었던 이강하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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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2, 1984

 

 

목판화로 그려진 해당 작품은 오월 민주화운동이 느껴진다. 담담하면서 투박한 목판화의 느낌은 당시 거친 오월의 느낌과 잘 어울린다. 특성상 음각에 따라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표현되는데 이러한 형식이 작품 속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묵직하고 강한 울림을 감상자에게 전달한다.

 

해당 작품은 시민군으로 옥중생활을 해야 했던 이강하 작가의 경험을 담아낸 듯하다. 함께 수용되어 있던 시민들의 얼굴에는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다. 절망과 슬픔이 가득한 표정 혹은 무력감과 비참함도 느껴진다. 밖에도 어둠이 내려앉았는데, 이들의 상황이 더욱 암울하게 느껴지게끔 만든다. 희망을 품을 수 없는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을 바라보는 감상자들은 당시 오월의 분위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불합리함이 무력으로 당연시 되던 사회, 무엇이 옳은 것인지 판단이 혼란해지는 시기, 폭력과 아픔만이 가득하던 도시. 광주의 눈물이 목판화 속에 꾹꾹 담담하게 담겨있다. 작가의 작품을 통해 아주 조금이나마 당시를 체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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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1995

 

 

위 작품은 1995년 제 1회 광주 비엔날레 출품 전시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13m에 달하는 대형 작품으로 단연 눈에 띄는 압도적인 스케일을 선보인다. 길게 늘여진 작품을 실제로 마주하면 마치 무등산을 눈앞에 옮겨 놓은 듯한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섬세한 필치와 과감한 색감은 작품의 존재감을 더욱 높이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강하 작가는 작품에 오방색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는 작품 속에 우리 민족의 정서를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가 담겨있다. 자유와 평화에 대한 열망은 우리 민족의 바람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비단에는 원앙과 연꽃이 수놓아져 있는데 이는 화합을 의미하는 작가의 작은 단서이다.

 

작가의 작품에는 나체 여성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나체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진심, 사실을 표현하는 수단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여성의 몸짓은 광주의 과거, 시간, 미래를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압도적인 규모와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이 작품은 묘한 매력으로 감상자들을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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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등산의 봄, 2007

 

 

따뜻하고 또렷한 색감에서 봄이 저절로 느껴진다. 들판은 초록빛으로 생기를 되찾았고, 꽃들도 빛을 받아 붉은 빛을 내뿜고 있다. 새들도 나무 위에 자리 잡아 따뜻한 봄의 정취를 즐기고 있는 듯 하다. 제목처럼 무등산의 봄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작품이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봄의 풍경을 포착하여 화폭에 옮겨 담았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구도는 무등산의 크기와 위엄을 실감하게 한다. 작가의 크고 작은 행동에 용기를 실어줬던 건 아마 무등산이었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몸집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무등산의 모습이 그에게는 정신적으로 큰 위로와 의지가 되었을 것이다.

 

<무등산의 봄>은 작가의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다. 무등산을 바라보며 크고 작은 꿈을 이뤄갔던 그는 마지막까지 무등산을 가슴에 안으며 삶을 마무리했다. 그가 떠올린 무등산의 평소 풍경은 그림과 같았을 것이라 짐작한다.

 

자신을 포근히 안아주던 따뜻한 무등산의 모습, 광주 시민의 곁에서 든든히 자리를 지켜주던 무등산의 모습을 떠올리며 화폭을 채워갔을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우리는 역사를 관통할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 화가는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작가는 그것을 읽을 수 있어야 하며, 음악가는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것들을 조형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성찰의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각기 다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이 뒤따르지 못하면 그것은 단지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이강하 작가노트 중

 

 

이강하 작가는 예술가로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부단히 고민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 고민의 흔적과 결과물들이 그의 인생관과 작품에 묻어나있다. 그래서 광주 시민들은 이강하 작가를, 지역 작가로서 한계보다 가능성을 찾아 헤맸던 사람 그리고 광주의 80년대를 겪어오며 좌절보다 행동을 보여주었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광주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이강하 작가의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캔버스에 눌러 담은 역사를 눈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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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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