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색연필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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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다. 훌륭하다. 좋다.
단어의 글자 수조차 겹치지 않는 이 세 단어가 도통 구분이 안 가는 시절이 있었다. 잘하면 좋고, 훌륭하니 잘하는 거고, 좋은 건 곧 훌륭한 게 아닌가? 그러니 셋은 같은 말이 아닌가?
그 다름의 출처를 잘 인지하지 못한 시절엔, 나는 바깥에 나를 드러내길 그렇게도 겁내하는 아이였다. 저명한 사람들처럼 되고 싶어 나의 부족함을 그들과 비교하여 찾아내곤 했다. 그때마다 발견되는 부족함은 주로 ‘지식이 부족함’, ‘돈이 없음’이었다. 지식도 한참이고, 돈도 궁할 때니 그런 내가 부끄러워 몸을 사리는 식이었다.
그런 내게 꼬질꼬질 한데다, 하는 말마다 참 단순했던 선생님이 있다. 고등학생 때 미술 담당이셨던 구름 선생님이다. (선생님의 이름엔 ‘운’ 자가 들어갔는데, 천하태평인 그의 성격을 빗대어 보면 ‘구름 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까무잡잡하고 키가 작고 마른 편이었는데, 후줄근한 배낭을 메고 매일 출근했다. 혹시 동묘에서 옷을 사시는 건 아닐까, 몇 년을 입으신 걸까 싶은 세월이 묻은 옷과 그에 비해 정갈한 하얀 신발은 그의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지나가다 본 구름 선생님은 인사를 건네도 쉽게 웃어주지 않고 어딘가 무뚝뚝해서 처음엔 조금 무섭고 이상했다. 내 소묘 수업 담당으로 구름 선생님이 배정된 고등학교 2학년, 별다른 그림 재료가 없던 나는 연필과 커터 칼을 가져갔다.
뭐, 또 연필을 뾰족하게 깎아서 사과나 그려보게 되려나 싶었는데, 뜻밖에도 구름 선생님은 봄과 겨울을 그려보자 하셨다. 그것도 지금 가진 재료를 힘껏 망쳐가면서 말이다. 나는 평소 연필을 쓰던 대로 쥐어 살살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연필 심을 조금 부러뜨리더니 칼로 종이를 북북 찢는 지경에 이르렀다. 와! 이거 진짜 재밌잖아?
암만 연필심으로 날카롭게 선을 그려 칼 같은 겨울의 바람을 표현한들 종이를 직접 찢어낸 표현보단 덜하다. 언제는 한번 색연필을 사 오라 하셨다. 나는 엄마 찬스를 동원해서라도 색이 아주 많고 질이 좋은 브랜드의 색연필을 사 올 참이었는데, 이런 내 허영을 눈치채셨던 건지 무조건 12색 색연필을 사 오라고 당부하셨다. 치, 옆 반 선생님은 애들에게 150색 색연필을 먼저 뽐내시고 그러던데.
이번에 그릴 소재는 내 손이었다. 아니 12색엔 피부색이 없는데 손을 그리라뇨. 흰 도화지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내게 구름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가진 색연필에서 최선을 찾는 거야. 단, 검은색과 흰색은 안 돼. 그건 신의 색이거든.”
가지고 있는 색들로 어떻게든 그려보려고 내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니, 손의 뼈마디마다 살짝 붉고 칙칙한 빨강이 눈에 들어왔다. 손이 실은 주황 같기도, 노랑 같기도 했다. 피부 안에 퍼런 핏줄이 보이기 시작했다. 손이 그 자체로 생생할 수 있던 건, 피부 겉 껍질이 아니라 그 안에 혈관 덕이었다. 주황, 빨강, 노랑에 언뜻언뜻 초록 보라가 섞인 손이 완성되었다. 아무렴, 나는 완성된 내 그림이 좋았다. 정말 훌륭했다.
여전히 12색을 쓴다.
잘하다. 훌륭하다. 좋다.
여전히 잘하면 좋고, 훌륭하니 잘하는 거고, 좋은 건 곧 훌륭한 것 같다. 구분이 도통 선명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날고 긴다는 바깥의 사람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이뤄지는 일이었다. 돈이 궁한 내가 종이를 찢고 눈을 부릅떠 손안의 핏줄을 발견하면서 배운 사실이다.
나는 구름 선생님의 마음으로 글을 쓴다. 태초에 가진 색은 많지 않지만, 그 안에서 과감하고 재미있으려 노력한다. 혹은 욕심을 부려 오버하진 않았나 경계한다. 자랑하고픈 마음에 쓴 글은 친구들에게 엄마 카드로 생색내다 딱 들켜버린 성인 딸내미처럼 금방 부끄러워진다.
결국 가진 걸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그것이 마음에 오래 남는가 보다. 공감의 영역이다. 바로 그 지점이 저마다의 색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만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최혜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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