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날아오르다 [도서/문학]

멜빈 버제스의 <빌리 엘리어트>
글 입력 2021.02.2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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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북부에 사는 '빌리 엘리어트'라는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이 이야기는 이미 동명의 영화와 뮤지컬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나는 이 작품을 중학교 때 학교에서 영화로 처음 접했는데, 그 때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아마 나와는 공통점이 별로 없다고 느꼈었던 것 같다. 사는 국가도, 환경도, 그리고 관심사도 나와는 너무 다른 아이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나에게 별 의미를 주지 못했던 이 작품은, 몇 년의 세월을 거쳐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같은 작품도 나에게 쌓인 세월에 따라, 경험에 따라 어떻게 이처럼 다르게 다가올 수 있는지를 처음 느끼게 된 계기였다.


'빌리'를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 것은 2017년 말 개막했던 동명의 뮤지컬 덕분이었다. 사실 기존 뮤지컬계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이나 치정을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이었고, 또 이런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식상한 반면 절대적으로 강하기도 했다. 아역배우가 3시간 남짓한 장시간 동안 극 전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특성상 '빌리 엘리어트'와 같은 공연들은 준비 과정에서부터 다른 공연들과는 몇 배에 달하는 준비기간과 오디션이 필요했고, 그리하여 이번 공연도 국내에서 무려 8년만에 재연되는 것이었다. 다양한 뮤지컬을 보자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던 빌리와의 만남에서 나는 극 중 빌리의 표현 그대로 '전기에 감전된 듯한' 느낌을 받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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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의 현실은 요즘 쓰는 말 그대로 시궁창에 가깝다. 고작 12살 아이가 감내하기엔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아이는 너무나 현명하게도 스스로 돌파구를 마련해 상황을 현명하게 해결해나간다. 상황이 해결되는 과정은 아름답지 않다. 사실 빌리가 사는 80년대의 영국 탄광촌은 아름답기는 커녕 온갖 땀냄새와 담배연기가 난무하고, 거친 욕설이 일상적인 곳이다. 그러나 뮤지컬, 영화, 그리고 책으로 이어지는 빌리와의 만남에서 나는 줄곧 어떤 '아름다움'을 느꼈던 것 같다.


교육적 이론에서 아이가 처한 상황은 분명 중요하다. 때로는 그런 환경이 아이의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기도 한다. 다들 아이들 안에는 나름의 잠재능력이 존재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키워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게 실제로 발현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어른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빌리는 이에 정면으로 부딪힌다. 작은 아기새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면서 '나 좀 봐달라'고 하듯이 자신을 뜨겁게 분출하면서 말이다. 빌리의 투쟁은 그것이 당시 사회에서 금기시되던 것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 보수적인 영국 시골 탄광촌에서, '남자라면 남자답게!'를 외치는 아빠와 형 밑에서 자라난 빌리가 발레를 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이 작품이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이러한 도전을 하는 사람이 비단 빌리 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살려 다양한 인물들(빌리 가족들과 마이클)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이들이 결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수 있다. 빌리의 꿈에 태클을 거는 것만 같은 아빠와 형에게도 각자의 속사정이 있다. 하긴 그렇긴 하다. 당장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 하는데 어떻게 확실하지도 않은 아들의 꿈을 지지해 주겠는가?

 

작품의 배경이 되는 80년대 영국 탄광촌의 위기와 이에 따른 탄광촌과 영국 정부의 갈등은 개인의 꿈과 사회의 지향점이 상충되는 현실적인 상황을 너무도 명확하게 그려낸다. 더불어 빌리의 친구 마이클을 통해 각자의 성적 취향은 본래부터 다를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뮤지컬 중 ' Expressing Yourself' 라는 넘버에는 '다름을 인정해달라!' 라는 이러한 빌리와 마이클의 메세지가 가장 잘 드러나 있다. 마지막으로 윌킨슨 선생님은 영국 부유층에 으레 만연해있던 상류층의 게으름에서 벗어나 빌리의 재능을 발견하고, 가꾸어주는 도전을 한다. 비록 그 표현의 방식이 다소 거칠기는 했지만.


여기서의 '발레'는 한 아이의 재능이 어떤 특별한 재능으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모든 아이들은 각자가 어느 방면에서는 '빌리'만큼의 재능과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른 말로, 모든 아이들은 제2, 제3의 빌리다. 어른들이 제공하는 아주 약간의 발판만으로도 아이들은 성장한다. 빌리가 처한 현실은 아름답지 않지만, 그는 본인의 아름다운 재능과 노력으로 독자로 하여금 공연장을 나가면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게끔 하는 힘을 가졌다. 누구라도 빌리가 될 수 있다.

 

 

[강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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