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3국의 전통극 분장을 퀴어링

퀴어 이론에 비추어
글 입력 2021.02.2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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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은 사람의 표피에 붙어서 만들어진다. 분장한 이의 얼굴은 오랜 시간동안 나에게 깊은 매력이었다. 청소년 시기부터 가부키, 경극 속 인물로 ‘분한’ 사람들의 마스크에 매료되었다. 알듯 말듯한 그들의 얼굴은 그 자체로도 기묘하게 아름다웠고, 분장 너머의 인물도 보다 더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전통극에 대한 관심도 극 자체보다도 분장을 한 그 얼굴의 무서운 아름다움이 좋아서 생긴 것이었다.

 

아는 이가 무대분장을 한 채로 다가오면 기분이 이상하다. 분장한 얼굴이 주는 생경함 때문일 것이다. 완전히 모르는 사람도 완전히 익숙한 사람도 아닌 낯선 얼굴은 기괴한 감각을 주곤 한다. 분장은 현실의 얼굴에 달라붙어 있는데도 그 존재를 한 뼘 다른 시공간으로 띄우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얼굴은 내가 아는 것이기도 하고 모르는 것이기도 하며, 익숙한 골자 위에 전혀 새로운 획을 더한다. 분장을 하는 사람도, 거울 속의 상과 기존의 자신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분장의 힘은 고전이라 불리우는, 의도적으로 퀴어니스가 삭제된 장에서부터 본질부터가 퀴어 수행으로 옮겨간 시공간으로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동아시아 3국의 전통극 분장을 퀴어링

-퀴어이론에 비추어



 

경극의 분장

 

경극의 역할 분류에 따라 ‘단(旦)’과 ‘생(生)’이 주로 하는 분장은 ‘준분(俊扮)’이라고 한다. 준분은 연지 화장으로, ‘실제 사람얼굴을 경극의 미의식에 준하는 아름다운 얼굴로 만드는(마신정, 「중국경극 검보의 분장에 관한 연구」)’ 분장이라 할 수 있다. 배역의 성격을 분장 자체에 드러내는 검보와는 달리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주로 하는 분장인 것이다. 영화 패왕별희의 상징처럼 떠오르는 청데이(장국영)의 분장은 ‘단’으로서 분한 것이다. 준분 중 ‘단’은 여성 인물로, 대체로 흰 분과 빨간 연지를 활용하고 선은 먹을 통해 긋는다. 눈썹과 아이라인이 강렬하다. 입술은 붉은색으로 곡선을 그리게 표현하며 파우더를 통해 매트하게 피부를 표현한다. (문정은, 「경극분장의 상징적 의미와 특성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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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극은 서술되어 있는 아름다움의 묘사가 경극적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추상화되고, 그 아름다움이 다시 분장으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일상적인 화장이나 미학적인 관점과는 다른 과감하고 명확한 색의 사용으로 절대적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단’의 얼굴이다.

 

 

가부키 '온나가타'의 분장

 

가부키의 경우 ‘온나가타’가 하는 분장과 단의 분장이 맥락적 유사성이 있다. ‘온나가타’는 백분으로 얼굴을 칠하고 홍색으로 ‘메바리’와 입술을 붉은 색으로 칠한다. 눈썹에 있어서는 역할의 성격적 특성을 담아 두께, 강도, 각도 등에 차이를 둔다. 남성 인물의 분장보다 최소화된 모양이라는 점도 단의 분장과 유사하다. 가부키의 특징적인 면모는 얼굴과 가슴까지도 분장을 한다는 점이다. 기모노를 입은 모습에서 분칠이 되어있는 가슴팍을 볼 수 있다. (조마리아, 「한중일 전통극에 나타난 분장 표현기법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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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국극의 분장

 

경극과 가부키의 분장 중 단과 온나가타의 분장이 개중 사실주의적인 표현에 가까우나 여성 국극의 분장은 인물의 성별을 가리지 않고 대체로 보다 사실주의적으로 분장을 한다고 분석된다. 여성국극의 여성 인물 분장은 붉은 색을 활용하여 눈매를 강조하였고 홍색과 황색을 섞어 밝고 붉은 얼굴 표현이 중점적으로 이루어진다. 콧날을 강조하고 음영을 많이 주었으며 아이라인과 눈썹 역시 진고 뚜렷하다. 남역 배우들의 분장은 얼굴 톤을 상대적으로 어둡게 하며 붉은 면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강조되는 것은 눈썹이었는데, 굵고 짙게 표현하고 음영을 강하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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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의 퀴어함

 

그들이 연기하는 몸짓과 말소리, 노랫소리와 마찬가지로 몸 그 자체에도 세련된 기술로서의 연기를 요한다. 그 위에 덧입혀지는 분장을 단순히 부가적 꾸밈으로 읽는 것은 너무나 아깝고 부족한 일이다. 분장으로 성취하는 미학적인 감각과 고조되는 긴장감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 긴장은 퀴어적 폭발을 향해가면서도 어느 정도 배우와 캐릭터 간의 불화에 의해 조성되기도 한다. 분장이라는 막이 접촉하고 있는 면은 배우와 무대 양방향이다. 이로 인해 창출되는 퀴어함이 무대 위의 일이고 극 내부의 일이면서 동시의 배우 개인의 일이 되며 사회적 규범의 영향권 내의 일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재미있는 것은 연기자와 연기하는 인물 사이의 간극이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더욱 극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배우의 성정체성(성별과 성적지향을 포함한)이 캐릭터의 성정체성과 어떤 기류를 형성하는지, 관객들은 상상한다. 때로는 단정되기도 한다. 이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로 인해 퀴어적 긴장은 더욱 극대화되며 극의 안팎으로 관객을 홀린다. 그렇기에 여장남자, 남장여자라는 이름으로는 담을 수 없는 팽팽한 긴장과 퀴어함이 가득한 이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성 국극의 경우 여성 캐럭터 분장들이 무대라는 공간적 특성에 의해서 강한 음영, 존재감 있는 눈썹 등으로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여성 국극, 경극, 가부키의 여성 인물의 얼굴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연기하는 배우의 성별이 모두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연기하는 이는 무대라는 공간을 위해 세상의 조각들을 모아 거대한 패러디 수행을 준비해온다. 각 극, 각 배우 개인의 패러디가 전통극의 여성 캐릭터 문법과 그 미학의 지휘 아래에서 유사한 맥락으로 묶인다는 것이다. 이는 성별이분법과 공고한 규범을 우아하게 깨부수는 행위가 된다. 모호함과 과장됨 사이에서 캐릭터의 정체성과 배우의 정체성은 페르소나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뻗어나가는 동시에 내외부에서도 융합하기 시작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사실주의적 표현 수준인 여성 국극이라고 할지라도 일상의 젠더표현 그 이상의 강도로 표현된 얼굴이 된다는 점이다. 퀴어적 분석에 있어서 과잉됨은 쉽게 드랙을 연상시킨다. 드랙 퍼포머들이 젠더표현들과 다양한 여성성, 남성성의 표징들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생각해본다면, 상징을 가지고 노는 행위자들에게 가시적 표현으로서의 분장이 주는 쾌감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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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경극과 가부키 속 여성 역할의 분장들에 매력을 느꼈고 동시에 여성 국극 남역 배우들의 분장을 좋아했다. 자신의 눈썹털이 난 방향과는 달리 꺾어가며 그려진 검은 눈썹도, 일상적이지 않은 범위로까지 가득 칠해진 아이라인도. 과잉된 미학을 알게 해주는 것은 바로 분장이다! 모호함이 주는 두근거림과 물성을 뛰어남는 미감. 분장을 하고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함축된, 프로페셔널함을 향한 동경. 분장의 미학은 이렇듯 보는 이에게도 복합적이다. 얼굴 위 몇 가지의 색과 화장 보다 겹겹이 쌓인 층위가 더해지는 것이다. 이는 드랙 퍼포머들로도, 댄서들의 얼굴로도, 일상 속 크고 작은 분장으로 자기를 수행하는 이들로도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한병철의 투명 사회에는 베일의 에로티시즘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감벤의 말에 따라 포르노적인 것과 에로틱한 것을 구분하려 한다. 투명하지 않은 것은 노골적이며, 성스럽지 않기에 포르노적인 것이라는데, 이 부분은 차치하고 베일의 에로틱함은 분장과 상통한다. 분장은 분명 그 존재를 투명하지 않게 만든다. 한 겹의 베일이 더해진 그 인물은 일상적이던 순간의 그 사람이 아니다. 분장을 하고 다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일지, 분장 그 자체의 동력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은 분장을 통해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된다. 그 베일은 분장 너머의 존재를 신비롭고 아름답게 만든다.

 

분장은 하나의 페르소나를 제공한다. 이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모든 존재들에게는 중요한 의례이다. 자아를 분리하든 융합하든, 분장은 새로운 차원의 페르소나로의 간단하고도 명쾌한 전환이다.

 

분장은 물리적이다. 그러나 부피를 차지하지 않고도 공간을 형상한다. 분장은 인물에게 밀착하여 베일을, 막을 형성한다. 분장 행위는 퀴어적 퍼포먼스를 향한 비교적 간단한, 물리적이면서도 얇은 수행적 공간을 제공한다. 밀착됨으로써 분장은 어떤 물리적인 변형과 노력보다도 극적이고 강렬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이면서도 ‘그’가 아닌 자아가 피부 위로 투영되고 분장 너머의 인물과 일정 부분 섞여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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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한 아름다움은 경계를 확장하고 세상의 모호하게 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분장은 하는 이를, 보는 이를 모두 모호하게 만들며 온세상은 그 얼굴의 접촉면으로 만든다. 이 흡입력, 이 아름다움, 이 매혹의 힘을 전통극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신명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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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Waybetter
    • 분장과 퀴어링... 그리고 모호성.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참신한 주제와 글이네요.
      좋은 글을 읽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군요...
      감사합니다.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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