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온기를 가진 사람과 마음을 담은 백수린의 글 PART 1 [문학]

문학, 왜 읽으세요?
글 입력 2021.02.21 12:0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단편은 「」, 소설집 혹은 장편소설은 『』로 표기

 

매년 스스로 소설만 편독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왜 다른 분야의 책들은 손이 잘 가지 않는지에 대해 나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데, 백수린 작가님(이하 백수린)의 에세이를 빌려 그 답을 말하고 싶다. 에세이뿐만 아니다. 백수린의 글을 읽다보면 왜 누군가는 소설을 쓰고, 누군가는 그 글을 읽는지, 그리고 그러한 소설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일상을 살아가는 연약한 개인들은 불안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우리의 마음속에 타인을 위해 이불 한 채를 더 마련할 만큼의 온기가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 당장은 두렵더라도, 배척하는 것만이 이 두려움을 해소해 줄 유일한 방법은 아닐 거라고 믿는 나와 당신이 있다고. 비틀거리더라도, 뒷걸음질을 치더라도, 우리는 결국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정한 매일매일』, 218쪽

 

 

백수린작가님_창비.jpg

창비 제공

 

 

백수린은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거짓말 연습」으로 문단에 등장했고, 이후 지금까지 꾸준하게 글을 발표하고 있다.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 중편소설 『친애하고,친애하는』, 짧은소설집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가 있다.

 

언어에 대한 섬세한 성찰과 소통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나아가는 희망,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 영원히 완벽하게 이해 불가능한 사람에 대한 다정한 탐구. 짧은 문장으로는 이렇게 백수린의 글을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이 문장들로는 백수린의 문학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나도 나를 모르고 타인은 더더욱 알 수 없지만



소설을 자꾸만 집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일은 불가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를 적을 수는 있다. 나도 모르는(혹은 그동안 애써 모른 척 해왔던) 나를 찾고, 이해 불가능한 타인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글을 좋아한다. 글을 읽고 나면 글의 등장인물들을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글은 매력적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개개인이 각기 다른 별에서 온 생명체가 아니니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어떠한 면은 꼭 글을 읽는 독자인 나와 겹치기 마련이다.

 

나도 제대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나를 소설의 문장에서 발견하는 일, 나와는 다른 생명체로만 느껴지던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일은 분명 소설이 이끌어낼 수 있는 일 중 가장 큰 매력적인 일이 아닐까.

 

백수린의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멀어지는 데 있어서 예리한 시선을 가지고 이를 묘사한다. 인물들의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그들의 회상은 관계의 회복을 바라는 것보다는 그저 과거의 인연에 대해 생각하는 데 그친다는 점이다.

   

만약 조금 더 극적인 서사를 추구하는 영화라면 과거의 소중한 인연을 다시 찾아 나선다던가, 그 인물과 애틋한 재회를 하는 등의 서사를 선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백수린의 글 속 인물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사실 이것이 현실에 더 가깝다. 사람은 모든 관계에서 완벽할 수 없음으로 개인적으로는 그런 결말에 위로받은 적이 더 많다.

 

예를 들면 「시간의 궤적」(『여름의 빌라』 수록)이라는 작품은 ‘나’가 파리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친해졌던 ‘언니’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는 한때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했고, 서로의 영혼을 돌봐주었던 두 명이 일련의 크고 작은 사건들과 그 때문에 변하는 환경 사이에서 어떻게 멀어지는지를 다룬다.

 

그 시절을 회상하는 ‘나’는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와 ‘언니’ 사이에 왜 거리가 점차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된다. 시간이 오래 지난 후인 현재의 시점에서 ‘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언니가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일이다.

 

「여름의 정오」(『참담한 빛』 수록)는 오래전 오빠의 친구 ‘타까히로’를 좋아했던 과거의 ‘나’가 타까히로를 만났던 장소에서 그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 속 ‘나’ 역시 그를 보러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러 가지 않고 그저 지난 인연을 과거에 머무르도록 한다.

 

백수린의 글을 읽다 보면 과거의 인연을 돌아보는 일은 그저 추억을 떠올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자신이 그 상대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글이 그 인연들을 회상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분명 은연중에 그 시간, 그 장소, 그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걸 화자들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그때가 좋았지’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의 일이 자신의 일부를 바꾸었던 -아주 사소할지라도-경험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인물들의 회상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관계를 돌아보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지나가고 스쳐 갔지만 분명 나의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는 사는 동안 관계에 초연해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지점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나의 문장이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



 

누군가에는 가장 절실한 사연이 왜 타인 앞에서는 진부해지고 마는 걸까.

 

『폴링 인 폴』,「폴링 인 폴」, 81쪽

 

 

위의 인용한 문장은 「폴링 인 폴」(『폴링 인 폴』 수록)의 등장인물 ‘폴’이 자신의 인생인 교포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고 하면 그 이야기는 너무 뻔하다고 말할 때, , 그 이야기를 맞은 편에서 듣던 상대방인 ‘나’의 생각이다. 여기서 백수린의 글이 특별한 지점을 하나 짚어낼 수 있다.

   

백수린의 글은 하나의 문장으로 풀어내면 누구에게나 뻔한 이야기를 그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가진 상황과 마음을 풀어냄으로써 뻔하지 않게 만든다. 이는 곧 제삼자인 타인이 함부로 누군가의 사연을 한두 문장으로 압축할 수 없음을 말하기도 한다.

 

「폴링 인 폴」에서는 미국에 이민을 간 ‘폴’의 가족이 나온다. 폴은 이민을 왔음에도 한국의 가부장적인 정서를 버리지 못하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아버지와 결혼을 두고 갈등을 겪는다. '폴'의 말대로 이민간 교포 가족의 이야기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이 아닌 낯선 타지에서 성공을 바랄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서사와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어를 배우는 폴의 서사와, 그리고 폴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나’의 서사까지. 발화자는 ‘나’지만 다양한 인물들의 입장과 그들의 서사가 글 속에 드러나서 단편 하나를 읽어도 독자인 나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한 인물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따라가게 된다.

 

그렇게 많은 인물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타인과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보는 힘을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백수린의 글은 세상과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볼 힘을 준다. 그 시선이 자연스레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조금 더 다정해지기 위하여



에세이를 즐겨 읽지 않지만,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는 일을 좋아한다. 에세이는 아무래도 소설보다 저자가 훨씬 드러나는 장르이므로,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더 궁금해진다면 꼭 그 작가의 에세이를 읽어보면 좋다. 글은 자연스럽게 글을 쓴 사람의 분위기를 닮아가기에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는 일은 작가가 써 내린 글의 결을 느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백수린책_다정한매일매일(20)[크기변환].jpg

 

 

그런 의미에서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백수린의 에세이 『다정한 매일매일』은 그동안 읽어왔던 작품 안에 깊숙하게 배어있을 작가의 글에 대한 마음가짐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여러 종류의 빵 이름을 보는 것도, 글을 쓰는데 영감을 주었을 작품들을 알게 되는 것도, 소설가인 한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지 읽는 일도 재미있다.

 

백수린의 글에 관심이 있다면(혹은 이 글을 읽고 생긴다면), 작가가 어떤 책들을 읽고, 그로부터 영감을 얻고, 어떤 마음으로 소설을 쓰는지 짧지만 깊이 있는 문장으로 채워진 이 에세이를 추천하고 싶다.

 

글을 마치며 맨 처음 인용한 에세이의 한 문단을 다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백수린의 믿음은 고스란히 그의 글 속에 드러나는 듯하다. 연약한 개인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나아가는 이야기가 그의 소설의 주된 서사를 차지한다. 그만큼 나와 타인과 세상에 대해 계속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에 이르는 과정이 중요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적어도 백수린의 글을 애독하는 독자로서의 나는 백수린의 글을 읽으며 나와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와 노력을 계속하게 되고, 그로 인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전지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84643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1.03.06, 22시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부일로205번길 54 824호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1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