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세계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종이책'으로 만들어진 동화같은 공간이었다.
<라스트 북스토어> 전시는 책을 소재로, 마지막 서점이라는 제목을 가졌는데,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했었다. 종이책을 이용해서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었구나. 흡사 해리포터가 떠오르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오르는 그런 풍경들. 일부러 배경을 크리스마스 색감- 짙은 녹색과 붉은색- 두 가지를 쓴 걸까 싶기도 하고. 아, 트리도 있었지.
몇 번 방문해본 K현대미술관은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이번에도 예상대로였다. 사진 찍기 좋은 공간. 트랜드를 맞춰서 가는 곳이다. 이제는 웬만한 전시는 거의 다 (플래시 켜는 것을 제외하고, 몇 작품만 가능 한 곳도 있지만) 사진 찍는 것을 허용한다.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는, 사진을 찍고 공유하면서 자동적으로 홍보가 되기 때문에.
다만 K현대미술관의 늘 아쉬웠던 점은 마무리였다. 컨셉은 좋으나, (미술전공자인 내가 보기에 더 잘보였겠지만) 그림은 마무리가 잘 안되어 있다. 조금만 더, 스케치 선이나 명암이나 색감을, 손 한 번만 더 대면 완성이 될 텐데 왜 마무리를 안할까 하는 아쉬움이 항상 있다.
나는 이곳의 미디어아트가 좋다. 트레이드마크처럼 있는 작은 비디오 화면들이 쌓여있는 작품. 구성 배치도 좋고, 나오는 화면들도 좋다. 배경음악이 없는 전시여서 더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특유의 옛날 디지털 기기의 삐-하는 소리까지. 이 공간의 적막감이 좋았다.
온갖 책들이 있었다. 작품을 위해 의도적으로 손상된(?) 책들을 보니 내가 괜히 다 아깝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헌책방에 놓으면 그래도 멀쩡히 있을 친구들인데... 조금 속상하기도 하고. 작품을 위해 고귀한 희생을 했구나. 접히고, 잘리고, 그려지고, 묶여지고, 붙여지고, 박제되고, 찢어지고 등등. 만드는 사람도 고생, 이 책들도 고생을 꽤나 했겠구나. 책을 적게 쓰기에는 의도가 드러나지 않을테니. 특히 책 집(?)은 좀 슬프긴 했다.
<숨겨진 보석>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정육면체 나무 틀에 빨간 실이 복잡하게 엉켜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책들이 중간 중간 걸려있다. 막대기 조명도 있다. 뒤에는 나뭇가지들이 있다. 조형적으로도 아름답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인연은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 많은 인연들을 형상화한 것일까.
게다가 펼쳐진 책의 페이지는 의미가 있는 장면들일까. 어떤 책을 골랐을까. 책을 포함한, 혹은 담기지 않은 모든 연들을 나무틀(책) 안에 담아놓은 걸까. 기하학 도형(사실은 그냥 직선) 조명까지 같이 있어 날리는 책 비주얼과 비슷하게 조형적 균형을 더 극대화시켜준다. 게다가 배경은 실선과 닮은 가느다란 나뭇가지 자연요소까지. 배경이 짙은 녹색이라 더 연말파티 분위기를 내준다.
종이책들의 마지막 서점이라니. 사실 기획의도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내가 파악을 잘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와 상관없이, 산책하기 좋은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