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궁의 옛 물건: 북경 고궁박물원에서 가려 뽑은 옛 물건 18

글 입력 2021.02.1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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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좋아한다는 말은 입에 달고 살면서도 박물관을 좋아한다는 말을 자발적으로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박물관은 유독, 억지로 방문한다는 이미지를 가진 공간이다. 이는 아마 박물관을 방문하는 주 목적에 따른 고정관념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습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던 박물관에는 어딘가 지루하고 재미없는 공기가 흐르고 있다.

 

책 <고궁의 옛 물건: 북경 고궁박물원에서 가려 뽑은 옛 물건 18>(이하 고궁의 옛 물건)은 북경 고궁박물원의 소장품들을 통해 중국의 역사를 설명하는 해설서이다. 북경 고궁박물원은 자금성 내 위치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박물관으로 186만 점이 넘는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한다. 쉽게 감이 오지 않는 이 숫자는 관람객이 하루에 5점씩을 본다고 가정했을 때 전부 보는 데 1,000년이 걸리는 양이며, 아무리 노력해도 매년 전체 소장품의 0.6%밖에 전시하지 못하는 실로 대단한 숫자이다.


저자는 실제 북경 고궁박물원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소장품 중 대표작 18점을 선정하였다고 한다. 박물원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186만 점 중 18점을 가려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다고 한다. '거대한 세계 앞에서 글쓰기란 참으로 미약하다' 말하는 저자의 심정이 마치 대자연 앞에 서면 존재 자체가 한낱 먼지처럼 느껴지는 헛헛한 감정과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책 <고궁의 옛 물건>은 단순히 북경 고궁박물원의 옛 물건들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본 책의 주 골자는 중국사이다. 저자가 직접 '시간을 강조하기 위해' 고궁의 소장품을 '유물'이 아닌 '옛 물건'이라 부른다 말하였던 것으로 보아, 보다 직관적으로 말해서 옛 물건들을 통해 역사를 꿰뚫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라부터 청나라까지 흐르는 중국의 오랜 역사가 이 책 한 권에 담겨있다.

 

나는 유독 역사 영역을 어려워했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지게 복잡하고 어려웠던 중국사가 옛 물건들과 함께 하니 읽어내려가는 속도와 맛이 상당했다. 옛 물건의 기원은 모두 역사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 위해 최대한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라 생각했던 꾸밈 등에는 알고 보니 신성의 의미가 담겨 있었고 꾸밈없이 수수한 물건들은 기술적인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었다.

 

특히 술을 통해 신과 소통한다 믿으며 술 문화를 신성시했던 시대에서 술이 만사를 망치는 근원이라 인식하는 시대로 넘어오며 술그릇의 가치와 그 모양새가 바뀌는 양상이 무척 흥미로웠다. 단순히 귀족의 것은 화려하고 서민의 것은 단순하다 생각했었는데,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그 시대상을 반영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하니 그간의 오해가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제2장_주신의 정신


상상 속의 공간 선산을 향한 염원이 반영된 박산 향로에 얽힌 에피소드 역시 흥미로웠다. 흉노를 쓸어버린 한 무제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을 정도로 매력적인 공간이었던 선산은 불로장생이 가능한 선초가 자란다는 유토피아이다. 한나라 사람들은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지 않는 선산을 향한 염원을 담아 박산 향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향료를 태우는 향로로서의 역할 이상을 수행했던 박산 향로의 진가는 향료가 타며 드러나는 '해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이었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선산의 몽한적인 분위기를 재현해내었다는 문장을 읽으며 불로장생을 바랐던 그 시대 사람들의 윤곽 없는 갈망을 볼 수 있었다. 제6장_책상 위의 선경

 

진시황의 병마용 또한 같은 맥락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진시황이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기 위해서 제작했다고 알려진 병마용의 역할은 사실 '실제 군대'의 재현이었다고 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고 죽은 사람이 사후 세계에서 실제 사용할 수 있도록 생활품들을 함께 매장하였는데, 병마용 역시 실용적인 목적에서 진시황의 사후를 보호하기 위한 군대였다는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저승에서 만나게 될 적들에 대비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용병들을 제작하였던 진시황에게서 저자는 그의 공포를 보았다고 말한다. 늘 위풍당당해보였던 진시황 역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 미지의 세계 앞에서는 두려움을 피할 수 없었다는 문장은 퍽 인상적이었다. 제5장_거상의 부재

 

 

진시황릉은 아무리 장엄하고 아름다워도 두려움을 담는 그릇에 불과했다.

큰 왕릉만큼 그의 두려움도 컸다.

- 제5장_거상의 부재, pp.87 -

 

 

책 <고궁의 옛 물건>을 읽으며 옛 물건들의 실재를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물론 본문 안에 좋은 화질의 사진 자료들이 첨부되어 있긴 하지만, 2D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본 책에서 소개하는 옛 물건들의 경우, 입체적이고 섬세한 것들이 많아 가까이에서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박물관이라 하면 따분하고 재미없다는 인상, 무엇을 보고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했던 내가 박물관에 숨겨진 상당한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 궁금해지고 가고 싶어진 것이다.

 

박물관은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의 참 공간인 듯 하다. 그저 오래된 유물인 줄 알았던 전시품들에 담긴 사연을 알게 되는 순간, 대단한 예술 작품만큼이나 귀하고 소중한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를 회복하게 되니 말이다. 지금은 시국이 시국인만큼 마음을 먹었다 해서 당장에 떠날 순 없지만, 언젠가 북경에 방문하는 날 나는 반드시 북경 고궁박물원을 찾을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며 보고 싶은 옛 물건들을 잘 기록해두어야겠다.

 

 

표지 평면_고궁의 옛물건.jpg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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