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사람

글 입력 2021.02.03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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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나 요즘 좀 힘들어."

"말을 하지."

"그냥 좀 그렇잖아. 나만 힘든 것도 아닌데."

 

 

나를 흘겨보던 너의 눈에 그저 웃음만 났다. 속 좋게 뭘 웃냐고 이야기하던 너의 핀잔마저도 걱정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랬기에 웃음이 났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이야기할까, 말까 초조해하던 나의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고민을 가감없이 털어놓고, 또 그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후회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근심을 덜어놓을 친구가 있어 좋다고 생각할 뿐이다. 누군가는 그런 친구가 있음에도 쉽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다. 그 친구를 못 믿어서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믿음이 스려지는 순간 주위의 모든 것들에 불신이 쌓이게 된다. 설령 그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변하는 건 없다. 겉으로 티 내지는 않지만 자신을 고립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백 번 그 닫힌 문을 두드려 한 번 빼꼼 열었을 때, 후련함과 후회를 동시에 느끼곤 한다. 진작 이야기할 걸, 그리고 조금 더 참아볼걸. 매 순간 느끼는 양가적 감정이지만 여전히 난 후련함을 느끼고 후회를 한다. 그리고 내 옆자리의 사람은 변함이 없다. 어김없이 카톡을 주고받고, 통화하고, 가끔 만나 일상을 공유한다. 모든 것이 그대로이다.

 

예민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편은 아니지만, 난 그 누구보다도 예민한 사람임을 알고 있다. 예민하기에 그 예민함을 티 내지 않는 것뿐이다. 나의 예민함을 다른 사람에게 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에게서 스트레스를 받는 만큼 타인도 언제든지 나에게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사소한 문자 하나도, 말 하나도 나에겐 예민하게 받아들여지기에 난 내 말과 문자를 단속하는 편이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너를 위해서. 이 모든 예민함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함이다. 내가 상처받았던 경험을, 너는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나의, 맹목적인 사랑



맹목적인 이라는 말은 조금 과장된 말일 수 있다. 나 혼자만이 하는 사랑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에게서 나에 대한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나의 사랑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다. 마치 시소를 탄다면 아마 내려가 있는 쪽은 나일 것이다. 네가 날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많이, 내가 널 생각하고 있기에. 그게 외롭거나 하지는 않다. 그저 난 오늘도 네가 그만큼의 사랑을 받을 사람이라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리고 네가 그 말을 듣고 행복하길 바란다. 그렇기에 나의 사랑은 맹목적이다. 받고 싶은 건 없어도 주고 싶은 건 많은 사랑이기에.

 

길을 지나갈 때 문득 네가 떠오른다. 향수는 별로, 라고 이야기하던 네 목소리도 함께. 그럼 난 지체없이 가판대 주변을 서성거린다. 이게 좋아요, 저게 좋아요, 하는 직원의 말은 잠시 들리지 않고, 하나하나 뚜껑을 열어 로션 향을 맡게 된다. 이 많은 종류 중에, 너에게 어울리는 건 뭘까. 네가 평소 좋아하는 스타일과는 어떤 게 잘 어울릴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으면 내 질문의 초점도 어느덧 너에게 맞추어져 있다. 좀 달콤하면서 인위적이지 않은 향을 찾고 있는데요. 그럼 직원은 웃으며 한 바디로션을 추천해준다. 그리고 난 망설임 없이 그것을 골라낸다. 보는 눈이 별로 없기에 타인의 추천에 쉽게 혹하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그럼에도 기분은 좋아진다. 그리고 널 다시 한번 떠올린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고 놀랄 네가 허공에 그려진다.

 

사소한 것 하나 해주고 싶어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고등학생 때 만났다. 사람에 베이고 베여 날카로운 나를 아무렇지 않게 감싸 안던 친구들. 등을 퍽퍽 치며 서투른 위로의 손길을 건네던 친구들이 어느덧 성인이 되었고, 이제는 매점 음료수를 먹으면서가 아닌 카페에서, 술집에서 음료 하나를 끼고 진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심하게 내 의견을 전달하며 난 이 관계가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작은 물건에도 그들을 떠올리는 건 일종의 내 노력이다.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전달해준 위로를, 나도 전달하고픈 노력.

 

 

 

나의, 선 있는 사랑


 

내가 예민하다는 걸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알았다. 무작정 아, 나 예민하네. 이렇게 느낀 건 아니었다. 그저 한 물체를 다룰 때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감정을 많이 넣고, 그 폭이 깊다는 걸 알게 되면서 서서히 내가 예민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민하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내 주변에 큰 변화는 없었다. 내 주변보다는 나 자신이 많이 변해갔다.

 

과거에는 조바심을 내는 성격이었다. 내가 타인의 별 의미 없는 말에 상처를 받았기에 이제는 조심해야지, 내가 먼저 피해야지, 하는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그래서 사람을 사귈 때, 그리고 사귄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래서 심리적 부담이 적고, 단편적인 만남을 선호했다. 잠깐씩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호의적이었고 그 만남이 어렵지 않았다. 주로 나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으며 대화는 밥을 먹으며 이루어졌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밥을 먹고 헤어지는 관계. 그 관계가 건강하다고 믿었었다.

 

신념에 금이 간 건 얼마 있지 않아서였다.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여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하는 나와 달리 그 친구는 진심으로 모든 사람을 대했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되 선을 저 멀리에 두는 나와 달리 그 친구는 모두에게 그 선을 열어 두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꼭 한 번 놀러 가자는 친구의 말이 빈말인 줄 알았는데,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그 친구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엉겁결에 단둘이 을지로에 가게 되었다. 눈으로 물건을 보는 걸 좋아하는 나와 달리 그 친구는 카메라에 모든 걸 담고 싶어 했다. 음식에 꽤 신중을 가하는 나와 달리 그 친구는 아무거나 먹는 걸 선호했으며 나는 앉아있길 좋아했지만, 그 친구와 함께 2시간, 3시간을 걸어 다녔다. 새로운 세계를 개척 당한 느낌이었다.

 

그 아이는 모든 걸 궁금해했다. 내가 싫어하는 건 뭔지, 좋아하는 건 뭔지, 자신이 지금까지 말한 내용 중에 실수한 건 없었는지. 그제야 나는 예민함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예민하기에 상처를 덜 받고 싶어서 숨었지만, 숨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답은 간단한 곳에 있었다. 예민한 만큼 상대방을 존중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친구와는 더는 가벼운 사이가 아니다. 오히려 좋은 일은 같이 나누고 슬픈 일은 덜어주고 싶은, 전보다 무거운 사이가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선을 지킨다. 서로에게 더욱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선마저도 내가 사랑하는 것이기에.

 

 

 

세상의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인간관계에 회의를 가지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나만 놓으면 끝날 것 같은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며, 어색한 미소와 함께 한숨을 흘리곤 한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난 꼭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 그렇다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품을 줄 안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내 친구가 될 수도, 연인이 될 수도, 가족이 될 수도, 나 자신이 될 수도 있지만 무엇 하나 쉬운 건 없다. 하나에 너무 깊게 빠지면 다른 것들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홀해지는 순간, 그 사랑이 불안정해진다. 그 불안정함은 외로움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내 마음 다쳐가며 다른 사람을 챙기는 행동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때 난 그 손가락이 향한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려주고 싶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느끼는 불안정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알고, 내 감정을 돌보는 데에 미숙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당신이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너무 관계에 연연하지 말라는 말도 해주고 싶다. 이상한 말이다. 지금까지 사랑을 그렇게 외쳐왔으면서, 관계에 연연하지 말라니.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정말 많은 관계를 맺어왔고, 풀어왔다. 사람은 모두가 같을 수 없기에 모두가 서로 다른 사랑의 깊이를 가진다. 그 사랑이 깊은 사람은 얕은 사람보다 상처를 조금 더 많이 받게 되지만, 언젠가는 동일한, 혹은 더 깊은 사랑의 깊이를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과정이 조금 거칠고 험난할지는 몰라도, 결국엔 당신과 꼭 맞는 사랑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깊이가 없을 정도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맹목적이고, 선이 있는. 그렇기에 관계에 연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지나갈 사람은 지나가고, 남을 사람은 남게 된다.

 

관계라는 게 그렇다. 꼭 달라붙어 있다가도 결이 조금만 달라지면 금방 식어버리곤 한다. 누구 한 명이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어그러지곤 하는 관계는 나의 잘못도, 너의 잘못도 아닌 관계의 특성 때문에 그렇다. 쉽게 이어진 듯하다가도 돌이켜보면 그 관계는 절대 간단히 형성된 게 아니고, 어렵게 만들어진 것 같다가도 돌아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게 관계이다. 순간에 충실하고, 그 충실함이 재가 되어 돌아와도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맹목적이고, 선이 있어도 괜찮다. 그마저도 네가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은 중의적인 표현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 모두를 가리킬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되었든, 모두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관계가 어그러졌을 때, 손가락의 방향을 바꾸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 잘못이 아닌, 내 사랑을 다시 한번 돌아보자. 사랑하는 나는 좋은 사람이다.

 

 

[안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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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김지선
    • 공감이 뎌는 진솔한 글입니다
      읽으면서 뭉클했네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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