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혼을 위로하는 노래 한 가락 [음악]

가끔 선율에 기대어 쉬고 싶을 때 꺼내 듣는 음악
글 입력 2021.01.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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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휴학 신청서를 제출했다. 시원하면서도 찝찝한 이 기분. 그간 무려 12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른들이 그려준 길을 따라왔다면, 이제부터는 혼자 길을 개척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온라인으로 휴학 사유를 작성하며 보았던 ‘일반휴학’ 칸의 아래에 적혀있는 ‘종료연도: 2022’라는 문구가 참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렇다. 앞으로 한 해 동안 학교에 가지 않기로 했다. 그 이유를 짧고 굵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겠다. (구체적인 진로를 명확히 드러내기에는 아직 계획한 것이 마땅치 않아 이 정도로만 이야기하겠다)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온 것인지 나는 이 젊은 시절의 방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중이다. 물론 20대에 겪는 경험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그 경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것은 나의 몫이기에 어깨에 짊어진 짐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몸은 집이라는 공간에 머물러 있지만, 영혼은 이리저리 맴돌며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는 요즘. 이럴 때일수록 음악은 더욱 절실한 피난처가 된다. 나에게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을 때 듣는 음악 리스트가 있는데, 이를 들으면서 노래에 담긴 가사를 곱씹어 되새기다 보면 영혼을 위로하는 ‘음악의 힘’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이 글에서는 위로의 힘이 담긴 음악, 그중에서도 내가 사랑하는 노래 몇 곡을 추려서 소개하고자 한다. 당신의 취향에 맞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부디 당신에게도 음악이 주는 위로의 손길이 닿길 바란다.

 

  

 

#1. Track 9



방황하는 이들을 위한 노래 한 곡을 뽑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이 노래를 고를 수 있다. 바로 'Track 9'(토마스 쿡 작곡, 이소라 작사)이다. 이소라의 정규 앨범 7집에 수록된 이 곡에는 별도의 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아홉 번째 트랙에 있는’ 노래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제목의 역할을 다한다. 하지만 다소 냉소적인 느낌을 풍기는 제목과 다르게, 노래가 품은 가사와 선율은 듣는 이의 마음을 적신다.

 

이소라는 자신의 곡 대부분의 노랫말을 직접 작사하는데, 그가 작사한 서정적이고도 풍부한 색채를 지닌 가사를 보노라면 왜 이소라가 최고의 아티스트로 손꼽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이 곡에서도 작사가 이소라의 천재적인 능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첫 가사를 듣자마자 놀람의 탄식을 내뱉었다. 인간의 근원적 고민을 이렇게 멋진 운율을 사용하여 노래할 수 있다니. 우리는 모두 자신을 알지 못한 채 태어난다. 그리고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나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이 곡의 초반부에서는 삶을 살아가며 자칫 잊을 뻔했던 우리의 과거를 조명한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 살게 해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중략)

 

나는 알지도 못한 채 이렇게 태어났고

태어난 지도 모르게 그렇게 잊혀지겠지

존재하는 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뿐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세상은 가혹하다.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만들 때도 있으며, 당연해진 고독 속에서 현실을 묻으며 살아가게 만든다. 그렇다면 세상은 허무한 것인가.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마침내 잊혀 없어져 버리는 나라는 존재의 가치는 무엇인가. 칼 세이건의 말처럼 지구라는 행성이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푸르고 창백한 점 하나에 불과하다면, 나 또한 하등 작고 하찮은 존재일 것인데 이토록 아등바등 살아가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허무주의에 빠져 철학적 사유로 위장한 우울감에 잠식되었을 때, 이소라의 목소리는 허무 속에 있던 나를 끌어올린다. ‘존재하는 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뿐’이라며, 결국은 나만의 길을 찾고 때로는 멈추고 풀어야 하는 일이기에 매일 나를 고독하게 만들어 다그치기를 종용한다. 허무는 곧 허상이니까, 평범한 불행 속에서 살지라도 스스로 다그쳐 흘러가게 하라고 외친다.


 



만약 당신의 존재가 희미하고 목표가 흐릿할 때가 있다면, 이 곡에 마음을 맡겨라. 이 하늘을 거쳐 지나가는 당신에게도 나름의 무언가가 있음을 영혼 가득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 독립하는 중



고등학교 때 아카펠라와 뮤지컬 활동을 하는 동아리를 꾸렸던 경험이 있다. 그나마 뮤지컬은 악보를 구하기 쉬웠는데, 아카펠라는 크게 관심을 받는 음악 장르가 아니어서 자료를 찾는 일이 꽤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직접 작곡을 한 것은 아니고, 기존의 음계를 똑같이 가져와 그리는 채보를 시작한 것이다.

 

기존의 음악을 채보하면서 가장 도움이 많이 되었던 아티스트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티키틱(前 프로젝트SH)>이었다. 나는 ‘티키틱’에서 만든 아카펠라 비디오인 '통화 중', '중계 중', '고백 중', '독립하는 중' 시리즈를 모두 채보했다. 이 작품들은 길이가 짧은 편이라 노래하기 어렵지 않았으며, 전체적인 구조와 완결성도 뛰어나 즐겁게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독립하는 중'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양육자의 둥지를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시기가 개인에 따라 빠르거나 늦을 수도 있겠지만, 직접 삶을 영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 곡에서는 ‘생각보다 힘든’ 독립의 과정을 거치는 젊은이들이,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청춘의 고독을 노래한다. 이는 같은 화음 속에서 다른 진행을 이어가는 아카펠라의 특징과 잘 어울리는 구성이기도 하다.

 

<티키틱>의 작품은 짧은 길이로 만들어져 가벼운 ‘스낵 비디오’처럼 즐길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묵직한 메시지는 시청자에게 고차원적인 영감을 부여한다. '독립하는 중'에 등장하는 이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읊는 노랫말처럼, 나도 오늘보다 더 나아질 내일을 기대한다.

 

 

 

#3. 돌팔매



윗글에서 이소라를 극찬했다면, 이번에는 이적을 극찬할 시간이다. 이적이 만들어낸 담담한 듯 따뜻한 태도가 담긴 선율과 가사를 듣다 보면, 아릿하면서도 통쾌한 기분이 든다. 이 남다른 분위기에 특유의 뚝심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더해지면 참 매력적인 노래가 완성된다.

 

'돌팔매'는 이적이 작곡했고, 이적과 김진표가 함께 작사한 노래다. 이 둘은 <패닉>이라는 그룹으로 활동했는데, 그래서인지 <돌팔매> 또한 ‘패닉’ 활동 당시에 만들어진 '달팽이'나 '왼손잡이'와 비슷한 음악적 맥락을 보인다. 음악 속에 꿈과 자유로움을 가진 인간의 ‘존엄’을 담으며 동시에 음악을 통해 인간이 가진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이다.

 

'돌팔매'는 록 음악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에 기본적으로 듣는 사람의 흥을 돋운다. 여기에 가사 안에 사람과 사람 간의 ‘연대’라는 메시지를 담음으로써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목적이 무엇인지 되새긴다. 강렬하지만 한편으로는 포근한 노래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린 제각기 다르지

모두 닮은 존재라면 외려 이상하지

우린 같을 수 없지

인생은 말하자면 그걸 알아가기

 

하지만 누군가 너를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괴롭힌다면

그땐 우린 또 하나지

돌팔맬 그저 모른 척할 수는 없지

 

Get up 같이 안고 일어나

흙을 털어 내 우린 서로들의 편이야

Hands up 다시 손을 내밀어

단단하게 잡고서 한 걸음씩 내디뎌가

 

 

인간은 제각기 다르므로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다름이 누군가에게 ‘돌팔매’와 같은 폭력으로 이어져 상대에게 괴로움을 남기게 한다면 이는 분명한 악행이 된다. 따라서 이 곡은 연대하는 인간의 존엄을 노래한다. 흙이 묻어도 툭툭 털어내고 서로들의 편이 되어주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우린 완전히 남이지

서로의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지

우린 때론 적이지

 

한곳을 향해 가며 겨룰 때도 있지

하지만 누군가 너를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지우려 한다면

 

그땐 우린 또 하나지

돌팔맬 그저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이 곡에서는 맞지 않는 사람과도 무조건 화합하고 의견을 통일하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완전히 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적으로서 대립하기도 하지만,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은 인권 침해를 넘어 살인적인 파괴행위에 가깝다. 하지만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타인의 자유에 기꺼이 침범하여 돌팔매질을 서슴없이 행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돌팔매'에서는 이를 두고 노래한다. “가만히 두고 볼 것인가?”

 

 

 

 

비록 상처를 입는 이들이 나의 적일지라도 그저 모른 척할 수는 없다. 만약 이번에 이 곡을 처음 알게 되었다면, 꼭 인류의 연대 의식과 자유 의지를 마음속에 새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

 

 

 

#4. You Will Be Found


 

'You Will Be Found'는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의 대표 넘버다. <디어 에반 핸슨>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공연되지는 않았지만, 2017년 토니상에서 6개 부문의 상을 휩쓸어 수상할 정도로 파급력과 화제성이 대단한 뮤지컬이다. <라라랜드>, <위대한 쇼맨>의 작사/작곡 팀으로 유명한 '파섹 앤 폴'이 작사와 작곡을 맡았으며, <넥스트 투 노멀>과 <렌트>를 연출한 마이클 그리프가 연출을 맡았다.

 

'파섹 앤 폴'이 제작에 참여한 뮤지컬답게, 모든 넘버의 선율 위에는 인물의 감정이 세분화되어 담겨있다. 듣는 이가 자연스럽게 극의 내용에 동화되어 공감의 끄덕임을 자아낼 수 있도록 철저히 계획적인 작곡과 작사를 해낸 것이다. 특히 이 넘버는 1막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프로덕션 넘버(뮤지컬을 대표하는 하이라이트 장면)'이기 때문에 곡을 들으며 더욱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다.



 

  

'You Will Be Found'에서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Have you ever felt like nobody was there?

Have you ever felt forgotten in the middle of nowhere?

Have you ever felt like you could disappear?

Like you could fall, and no one would hear?

 

 

당신은 아무도 없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아무도 모르게 잊혀 사라질 수 있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당신이 떨어졌을 때 그 누군가도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이 곡에서는 누구나 겪었을 법한 보편적인 외로움을 노래한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혼란으로 이어져 자신을 힘들게 한다면,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 것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당신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Even when the dark comes crashing through

When you need a friend to carry you

And when you're broken on the ground

You will be found

So let the sun come streaming in

'Cause you'll reach up and you'll rise again

Lift your head and look around

You will be found

 

 

이 곡에서는 어둠이 밀려와도 우리 곁에는 친구가 있음을 계속해서 노래한다. 가끔 세상과 단절되어 외면받는 듯한 낯섦을 느낄지라도, 태양 빛은 흘러들어오기 마련이라며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라고 말한다. 이 노래가 혹자에게는 뻔한 위로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듯한 괴로움을 누군가 알아준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기 마련이다.

 

'You Will Be Found'는 마치 작은 연필로 힘겹게 그려낸 스케치와 같은 주인공의 솔로로 시작된다. 하지만 여기에 앙상블 배우들의 간절한 목소리와 가슴 벅찬 화음이 더해져, 결국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변모하여 끝을 맺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의 작은 손길이 모여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로 더없이 행복한 일일 것이다. 주변에 홀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지인이 있다면 그를 발견하여 도움의 손길을 내밀자. 만약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외로움에 사로잡힌다면? 나 또한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

 

*


앞으로의 삶이 순탄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왠지 모를 불안도 밀려온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누군가를 만나 걱정을 털어놓고 상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 자꾸만 혼자 사색과 고민을 이어가게 된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슈바이처는 이렇게 말했다. "고단한 인생의 시름을 달래주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고양이와 음악이다."

 

그래서 나도 음악을 듣는다. 시름을 달래기 위해. 단순히 청각을 자극하는 음악을 넘어, 마음속에 희망의 속삭임을 불어넣고자 음악을 듣는다. 그래서 이번에 소개한 노래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큰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 가끔 선율에 기대어 쉬고 싶을 때 꺼내서 즐기는, 소중한 간식과도 같은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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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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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리원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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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남기
    • 2021.02.05 12: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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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원저의 글이 누군가에게 '좋은 글'로서 남는다는 것이 저에게는 정말 뜻깊습니다. 선뜻 댓글을 달아주심에 감사드리며, 보내주신 말씀을 큰 힘으로 삼아 앞으로 더 열심히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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