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초공개! 단독공개!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1.29 19:0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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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는 이런 분을 귀히 모십니다!

문화를 애호하고, 사색을 담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기고하실 분.

 

 

그래서 준비했다. D드라이브에 쌓아둔 소설 중 하나를 꺼냈다. 작년 여름 쯤 쓴 글이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어디에도 공개한 적 없는 글인 만큼,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안목 있는 독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약간은 부끄럽다. 하지만 아트인사이트이기에 조심스레 공개해 본다.


문화애호가 분들과 스스럼없이 향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2020년, 여름 즈음 쓴 글



10년 만이다. 다신 이곳에 오지 않을 줄 알았다.


*


‘헤어살롱’은 아주 어둡고 깊숙한 곳에 있다. 가는 방법은 쉽지 만은 않다. 하행선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라. 그리고 지하철 주황색 라인을 타고 범일역 7번 출구에 내리면 왼쪽엔 현대백화점이 있을 것이다. 그대로 2분 정도 생각없이 걸어가다 보면 풍경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양쪽엔 허물어져가는 판잣집과 벽에는 이끼인지 곰팡이인지 모를 검푸른색 얼룩이 있다. 하수구 냄새와 함께 <영화 <친구> 촬영지입니다>라는 팻말이 놓인 작은 육교가 보인다면 제대로 찾았다. 그대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헤어살롱’이라는 간판을 단 가게가 있을 것이다.

 

두려움을 갖고 문을 열어라. 생각보다 ‘헤어살롱’은 무서운 곳이다.


*


세상은 어느새 경험의 상향평준화가 되었다. 내가 전역했을 때, 모든 동기들이 배낭여행은 물론 국토대장정, 해외 봉사활동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이것이 점점 기본값이 되었을 때, 사회는 더 발전해 ‘특이한’ 경험의 상향평준화로 가고 있었다.

 

맨발로 히말라야 등정, 100만원으로 세계일주 등 더 색다른, 더 극한의 경험에만 ‘경험’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이 가치 있다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경험을 사기로 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소문을 듣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헤어살롱’의 문을 열자 백화점 명품관에서 날 듯 한 코튼향이 나를 덮쳤다. 구석구석 곰팡이가 핀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시선을 조금 돌리니 긴 머리를 틀어 올리고 에트로 가운을 입은 50대 여자가 서 있었다.

 

“니 얼마 정도 들고 왔는데?”

 

초면에 반말. 기가 센 그녀에게 초짜로 보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중엔 125만 원이 있었고 어떻게든 200만원은 더 끌어올 수 있었다. 경험을 판다는 여자에게 325만 원으로 살 수 있는 가장 특이한 경험을 달라고 했다.


“그 돈으로 가능한 거 없는데. 그래도 니랑 딱~ 어울리는 시나리오 하나 있는데, 읽어볼래?”


손이 많이 탄 공책을 건네 받았다.


<경험 수위 : 3등급>


# S1. ‘나’의 집

지루한 일상에 지친 ‘나’는 삶을 뒤바꿀 여행을 계획한다.


# S2. 인천공항

이틀 뒤, 50L짜리 가방 하나를 매고 아마존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탄다.

...

# S5. 풀이 무성한 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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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존 마지막 원시부족인 히랄라야 족에게 쫓긴다. 가방은 버린 지 오래고, 신발 한 짝은 벗겨지기 일보 직전이다. 체감상 30km는 뛴 것 같다.

(중략)

‘나’는 우연히 모터배를 타고 있는 여행객을 보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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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했다. 아니, 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 효용과 효율이었다. 나에겐 당장 아마존에 갈 수 있는 시간, 돈 그리고 용기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원주민에게 쫓기는 이야기라니. 지금까지 들어본 경험 중 희소성 최상이었다. 나는 가까운 은행으로 달려가 대출을 받았고 그 경험을 샀다.


그 뒤엔 어떻게 되었냐고? 그 여자는 나를 어두운 방에 앉혀놓고 비디오를 틀었다. 내가 읽은 시나리오가 영상으로 나왔고... 모르겠다. 어느 순간 영상의 주인공이 나였다. 영상이 끝난 후에는 정말 원시부족에게 쫓긴 듯 땀이 흘렀고 신발 한 짝이 없었다.

 

아마존 그리고 원주민과의 추격전. 두 가지는 내재화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해 가장 특이한 경험을 가진 신입사원으로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헤어살롱’의 코튼 향이 지워지지 않았다.


경험의 희소성이 계급화되면서 나의 평판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사람들은 나의 도전정신과 용기를 높게 샀다. 국내 원톱 대기업에서 10년을 버틴 지금, 코튼향은 시간에 깎여 나에게서 지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불현듯 코튼향이 나의 코를 찔렀다.


“안녕하십니까. 미래전략기획부에 지원한 회사의 미래! Q입니다.” 그는 내가 면접관으로 들어간 자리의 첫 번째 지원자였다. Q의 포트폴리오는 지원자 중 가장 두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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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저널 <스페이스X의 민간인 우주 프로젝트에 참가한 유일한 아시안 Q를 인터뷰하다> 2031.01.29.
 


옆에 있던 인사팀장은 눈을 번쩍이며 신나게 질문을 해댔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이 경험을 ‘그곳’에서 샀는지, 직접 경험한 건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Q에게서 전에 없던 코튼향이 났기 때문이다.


*


10년 만이다. 다신 이곳에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범일역, 곰팡이 그리고 육교 옆.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그리고 2031년, 소소한 일상과 작은 경험에서 삶의 가치를 배우는 것이 아닌, 거대하고 특이한 경험으로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밖에 없는 이 사회도 10년 전과 바뀐 것이 없었다.

 

 

 

자유로이,



마음껏 (하지만 아프지는 않게) 감상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로이 말해주길 바란다.

 

묵혀둔 글이 누군가에게 닿아 스파크가 튀었으면 한다.

 

 

[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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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이남기
    • 이 글을 읽고 꼭 댓글을 달아야지, 생각했지만 그 결심에 비해 실행이 너무 늦어버렸네요. 죄송합니다. 저는 이 단편소설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짧은 글 안에 깊은 통찰을 담는 능력이 뛰어나시네요. 사회 문제를 기발하게 풀어내시는 실력도 대단해요. 사실 '경험의 희소성'이라는 단어가 처음에는 생소했습니다. 단지 경험이 '독특하다' 혹은 '눈여겨 볼 만하다'라는 이유로 그 개인이 면접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요. 하지만 생활기록부에 무엇이든 채워넣어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원했던 저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니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경험'에 따라 누군가의 존재가치, 내지는 사용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그만큼 현대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하기도 하지요. 이것에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생각을 하시다니, 기발합니다. 앞으로도 더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면 또 올려주시기를 기대할게요. 저의 단조로운 삶에도 스파크가 튀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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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정
    • 나의 삶 그 어디에 스파크가 튀었을까?
      스파크가 튀던 그 아찔함,아련함을 다시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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