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싶습니다 [사람]

글 입력 2021.01.3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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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마지막 토요일이다. 이제 주변 사람들에게 바쁜 척을 하느라 미뤄둔 소중한 카톡들에 마음을 담아 답변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바쁘던 마음이 안정세를 찾기 시작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관계를 건강하게 이어가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에게 쉽게 무심해지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부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가진 가장 큰 단점은 답장이 느리다는 것이다.

 

 

너무 늦어버려서 미안

나 알다시피 좀 많이 느려서


답장(2018) - 김동률

 


내 답장이 느린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일일이 나열하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는 걸 알기에... 지금 쌓여있는 소중한 연락에 빠른 시일 내에 모두 답장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우선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한 달 동안 나에게 연락을 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경로는 다양하다. 고등학교 친구, 대외활동으로 이어진 인연, 동아리를 함께한 친구, 교회에서 만난 친구 등 나와 연락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간 내가 살아온 행적이 그려지는 듯하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까? 그중 인연으로 붙잡아 연락을 계속 이어가는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2년간의 긴 동아리 활동을 마무리 짓고 나니 문득 인간관계에 관한 혼자만의 질문이 쏟아졌다. 함께 한 시간은 2년, 물론 작년은 얼굴을 실제로 보지 못하고 활동하기는 했어도 시험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주 화상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던 사이다. 동아리 이후의 모습이 계속 기대가 될 만큼 멋진 이 친구들과 난, 앞으로도 계속 인연을 이어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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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역사



관계의 시작으로 가족을 이야기해도 되는가에 대해 조금 고민이 있었다. 혈연은 사실 개인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의도가 개입된 관계가 아니더라도 만남과 헤어짐이 존재하는 사이라는 점에서 나는 인간관계의 시작점은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가장 특별한 관계가 아닐까.


시간이 지나 조금 더 성장하면 또래 친구, 동네 친구를 사귀게 된다. 친구들과의 공통점은 나이와 사는 동네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다. 나이와 동네가 비슷하다고 친구가 되다니. 어린 시절에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던 관계의 흐름이 지금으로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에 가졌던 마음을 현재에 대입해보면 나의 친구들은 거의 전교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잊혀져 가는 이름들 얼굴

소중한 추억

바래진 사진 속엔

아는 사람 나뿐이구나


근데 왜(2014) - 페퍼톤스

 


어쩌면 어린 나이에는 한정된 범위의 아이들을 만나 비교적 단순한 조건(나이, 동네)만 맞으면 어렵지 않게 친구가 되었던 반면, 나이가 들고 학년이 올라가 생활영역이 넓어지면서 친구가 되기 위한 다른 조건들이 생겨나는 것인지 모른다. 개인의 관심사가 생기고 자신과 잘 맞는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말이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지나면서 학교뿐 아니라 어떤 사람은 학원이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고, 성인이 된 후 대학교, 동아리, 대외활동 등의 다 헤아리기 어려운 다양한 경로로 관계를 만든다. 사람마다 살아온 모습이 다르기에 세부적인 영역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비슷하게, 닿을 수 있는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에게서 먼 방향으로 관계망을 확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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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서부터 2021년 현재의 나이가 되도록 우리는 무척 많은 사람을 만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잠깐 고등학교 한 반에 있던 학생 수를 생각하면 지금까지 적어도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연락하는 나의 인간관계는 어떠한가. 글쎄... 고등학교 한 반 인원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긴 세월을 살아왔다고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나름 나만의 관계의 역사가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연락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가 있고, 중학교를 함께 졸업했지만, 지금은 서로 연락을 하지 않는 친구도 있다. 내가 용기 내어 사귄 친구가 있고 나를 먼저 좋아해 준 친구가 있다. 어떻게 보면 짧지만, 고유의 이야기가 담긴 시간을 보내며 정리한 관계에 관한 생각이 있다.

 

 

 

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소재가 있어야 한다



소재는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관심사(문화생활, 스포츠, 학문)일 수도 있고, 함께 한 추억(학교, 동아리, 대외활동)일 수도 있다. 개인의 취향(찍먹/부먹, 물복/딱복)도 좋은 소재가 된다. 흥미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공통으로 존재하게 되면 쉽게 계속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추억의 가장 보편적인 예로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다른 대학을 입학해서 어쩌면 이제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이지만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대화가 쉽게 끊기지 않는다. 비록 고등학교 3년 중에 일부의 시간만 함께 했다고 하더라도 수업으로 만난 선생님이 겹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에 어느샌가 고등학교 추억으로 주제가 넘어가기도 한다.

 

관심사가 같은 친구는 언제든 소재와 관련한 소식이 있을 때 쉽게 연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비슷한 분야의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라면 내가 최근에 좋아하게 된 노래를 마찬가지로 흥미롭게 들을 가능성이 크다.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곡을 친구의 SNS에서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잠시 조용하던 대화창이 다시 활발하게 돌아가게 된다.

 

공통된 이야깃거리는 대화를 이어가는 소재가 될 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함께한 경험이 부족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일이 별로 없던 사이라면 서로에 대해 아는 사실이 부족할 수도 있다. 이때 두 사람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찾으면 상대에 관한 관심이 생겨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② 혼자만 노력하는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책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법>을 읽다 보면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관계의 어려움에는 사람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게 가장 먼저라고 생각한다. 누가 먼저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관계를 시작하는지보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이 모두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둘 중 누군가 한 사람만 계속 적극적인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관계를 긍정적으로 이어가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연락하는 건 좋은 방법이다. 중요한 건 이때 상대는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가 나와 비슷한 정도의 관심이 나에게 없는 것 같다면 잠시 시간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간은 상대와 나의 관계가 영영 멀어지게 되는 불안한 시간이 아니다. 누구나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은 다르고 그 시기를 기다리는 것은 오히려 관계 발전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 가벼운 인사를 전했을 때 상대도 마찬가지로 편하게 답변하는 순간을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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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을 편하게 주고받는 사이가 되면 두 사람 모두 상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기반으로 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관심과 사랑으로는 관계가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혼자 이끌고 가는 관계는 자칫하면 관계에 대한 집착으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관계는 나만 원한다고 이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사람을 알게 된 것처럼, 나도 모르는 언젠가 조용히 내 곁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생각하면 마음 아픈 일이지만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인연은 때로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건 소중한 일이다.

 

 

 

살코기 세대



최근 TV 프로그램에서 '살코기 세대'라는 용어를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 전혀 그 의미를 예상할 수 없었는데 기름기를 뺀 살코기처럼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최소화하는 20~30대 젊은 층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왜 이런 삶을 추구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지만(관계를 맺고 유지하는데 지속적으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므로) 이런 현상이 건강한 사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필요한 관계와 불필요한 관계의 판단은 누가 하는 걸까. 개인의 판단이라면, 나는 필요한 관계라고 판단했으나 상대가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경우 살코기에 속하지 못하는 이 관계는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것일까. 사람들 관계의 모습이 이처럼 유지가 된다면 '친구'라는 단어는 역사에만 남게 되는가.

 

나를 위한 시간에 집중하고, 효율적인 시간 활용은 분명 혼자 즐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올 것이고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성공을 이뤄낸다면 분명 행복할 것이다. 나의 기쁨과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없는 성공이 정말 우리가 바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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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이 모두 맞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들 각자 살아온 환경과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우선순위는 분명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개인에게 주어진 상황을 지우고 생각한다면 관계를 줄이고 싶은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를 위해 주는 행복의 시간은 어느 정도 예상한 범위로 주어지지만(주로 돈을 쓴 만큼...), 친구를 만났을 때 얻는 행복은 대부분 내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또 인간관계를 최소화하는 게 정말 젊은 층이 추구하는 모습이라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불안함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불필요한 관계는 편하게 놓아주면 되는 이들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결국 관계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효용이 없더라도 유지하고 싶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우리의 관계는



나 하나 건강히 살아가기도 힘든 세상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게 사치라고 느껴질지 모른다. 내가 지난 1월 한 달간 연락이 늦었던 핑계 중 하나가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에 정신력을 사용했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전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엔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놓고 싶지는 않다. 유지에 있어서 비용이 든다고 하더라도 현재 나에게 주는 좋은 영향이 더 큰 관계들이기 때문이다. 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 나의 사회적인 성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함께 할 때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나에게 충분히 필요하고 값진 선물이다.

 

동아리를 2년간 함께한 친구들인데 지금까지 오직 친목을 목적으로 만나본 적이 없다. 항상 회의, 일, 행사에 관련된 이야기만 나눴던 우리라 앞으로 연락을 하고 관계를 이어간다면 친구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일이 될 것 같다. 낯익은 얼굴들과 낯선 관계를 새로 시작할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설레는 것 같다.

 

관계가 때로는 나에게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더라도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 활력이 생기고 내일을 살아가게 하는 좋은 영향을 준다면 내가 지금 지불하는 시간과 노력이라는 비용도 가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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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리원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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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도란
    • 2021.02.03 18: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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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원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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