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환상의 쓸모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다시, 환상의 세계로
글 입력 2021.01.25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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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느낀 감정은 ‘낯설다’였다. 책장을 넘기며 익숙한 내용을 기대했지만, 알고 보니 나는 이 책을 읽은 적이 없다. 앨리스라는 캐릭터가 너무 친숙한 나머지 책을 읽었다고 착각해 온 것이다. 수많은 2차 창작물 덕에 이상한 나라와 앨리스를 쉽게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색 원피스에 흰 앞치마를 입은 앨리스, 시계를 보는 토끼, 트럼프 카드처럼 생긴 병정들까지.


새로움이라는 낯선 장막을 걷어내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괴상함이었다. 물담배를 피우는 애벌레, 생체 크기를 조절하는 버섯, 틈만 나면 병정들의 목을 노리는 여왕, 웃음 없는 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이 없는 웃음… 순한 맛으로만 접했던 앨리스의 맵고 짜고 단 맛이 온 신경을 자극했다. 여태껏 본 적 없는 독특한 이야기가 따뜻한 삽화와 함께 펼쳐졌다.

 

 


모험의 시작



무료함에 빠져 있던 앨리스는 어떤 고민도, 두려움도 없이 무릎 반사처럼 눈앞의 토끼를 따라간다. 단지 ‘조끼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보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서 말이다. 어딘가 이상한 토끼를 따라 커다란 토끼 굴로 들어간 앨리스. 그는 저 아래로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추락 끝에 이상한 나라를 맞이한다.

 

앨리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역시나 난관이다. 그는 의심 없이 ‘날 마셔요’라 적혀 있는 약병을 마시고 몸이 순식간에 25cm로 줄어버린다. 몸이 그렇게 줄어버렸는데도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는 작은 통로를 통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뒤이어 ‘날 먹어요’라 적힌 케이크도 고민 없이 먹어 치운다. 몸이 다시 커져도, 더 작아져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정원으로 갈 거니까, 어느 쪽으로 변하든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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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없고, 낙천적이고, 도전적이고, 순진하고, 무례한 앨리스. 책을 읽다 보니 이런 앨리스가 부러웠다. 커갈수록 겁이 없어지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20대 중반이 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겁이 많다. 새롭게 뭘 시작하는 게 무섭고, 익숙함만 쫓게 됐다. 익숙함의 쳇바퀴를 돌다가 한순간 매너리즘에 빠지고, 한심한 나를 한참 동안 손가락질하다가 겨우 몸을 일으키고, 다시 쳇바퀴를 돌렸다.

 

내 몸에 선명히 새겨져 있던 모험이라는 글자는 세차게 지우개질해 버린 듯 흔적만 간신히 남아있다. 나도 한때는 앨리스처럼 모험을 했다고, 내게도 모험이 존재했다고, 좁은 방 안에서 생각하니 조금 우울해졌다. 하지만 이 책은 내게 우울을 주기 위해 찾아온 존재가 아니다. 환상의 세계로 초대하는(간접 경험하게 해주는) 토끼굴이다.

 

 

 

환상의 쓸모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건 모든 사람이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는 거라고 들었는데요.”

 

앨리스는 말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손에 들린 스마트 폰만 들여다보는 익숙한 나라에서, 익숙하게 나를 잃어갔다. 왜 화를 내는지, 왜 악을 쓰는지(아이유 - RED QUEEN)도 모른 채 화를 내고 악을 쓰고 있었다. 이유 없는 분노만 쌓일 때, 환상은 물처럼 밀려와 평온하게 나를 다스렸다. 비록 모든 것이 꿈이었을지라도, 초롱초롱한 눈과 생기 있는 모습으로 잠에서 깬 앨리스처럼.

 

특별한 상상 한 스푼으로, 세계는 조미료를 넣은 듯 풍성해진다. <패터슨>의 버스 운전사 패터슨처럼 공책을 들고 일상을 재발견하기도, <인 디 아일>의 크리스티안처럼 지게차 소리에 귀 기울이며 바다를 데려오기도 한다. 봉준호 감독처럼 지루한 수업 시간에 주변에서 괴물이 날뛰는 모습을 상상하며 무료함을 쫓기도 한다. 상상은 일상적인 순간을 특별하게 바꾸고,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견딜 만한 것으로 바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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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안이라고? 그럼 내가 꺼내줄게!”

 

 

불통의 사회다. 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상상, 서로서로 도우며 지내는 환상이 절실하다. 단순히 별난 일이 벌어지는 이상한 세계라고 단정해버리면 안 된다. 환상의 세계에서 앨리스는 생쥐처럼 작아지기도 하고, 기린처럼 목이 길어지기도 하고, 모든 동물을 위협할 만큼 몸이 커지기도 한다. 시야와 마음가짐은 매 순간 달라진다.

 

이렇게 ‘네가 되어 보기’는 못할지언정, 상상이라도 해봐야 한다. 상대의 입 모양에 집중해 비슷하게나마 유추해야 한다. ‘이상한 나라’에서처럼 모두에게 트로피를 줄 수는 없겠지만, 경기를 하려면 상대방이 필요하기에. 빨간 불 앞에서 스마트 폰에 빠져 있다가 옆 사람의 움직임을 느끼고 따라 걷듯이, 알게 모르게 서로 의지하고 있기에.

 

순식간에 주저앉게 될 때,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만나게 될지,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을 때, 모든 것이 낯설 게만 느껴질 때, 어떤 게 맞는 선택인지 확신할 수 없을 때, 그동안 해 온 선택이 옳은 것인지 의심이 들 때,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을 때에도. 환상은 모든 순간 작동한다.

 

 

 

이상한 나라의 아이유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줄래?”

“그건 네 목적지가 어디냐에 달렸어.”

 

 

스물셋, 아이유는 마치 앨리스처럼 어디로 갈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음악에 담아냈다.

 

2015년 발매된 아이유 미니 앨범 제목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나오는 말하는 고양이 ‘CHAT-SHIRE(체셔)’다. 그는 타이틀 곡 ‘스물셋’에서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다가도 물기 있는 여자가 되고 싶다고, 죽은 듯이 살겠다고 하다가도 다 뒤집어 보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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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믿어주라고, 대충 속아주라고, 당신 마음에 들고 싶지만, 난 지금이 좋다고. ‘스물셋’의 아이유는 막 토끼 굴에 빠진, 통제 불가능한 앨리스 같다. 속마음과 표정이 다른데 어느 쪽이 진짜인지 맞혀봐. 나를 쉽게 정의할 순 없을걸. 한 마디를 안 지고 약을 올린다. 하지만 앨리스는 점점 자신을 조종하고 남을 배려하게 된다. 오른손과 왼손에 각각 들린 버섯을 먹어 몸을 키우기도 줄이기도 하면서, 동물들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다.

 

어디로 갈지 선택하는 것. 그 선택이라는 것도 별거 없다. 모든 길에 답이 있다면, 답을 안다면 우리는 선택 자체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지 못한 길’과 손에 쥐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언제나 뒤따르기 때문에. 다시 환상을 덧씌우자. 중요한 것은 선택의 결과보다 스스로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스물셋에 이 모든 것을 깨우친 듯한 아이유. ‘스물셋’의 곡 설명은 다음과 같다.

 

여러 개의 보기가 있고 그 중 오답은 없다. 무엇을 골라도 답이며 그저 당신이 뭘 믿고 싶은지에 달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by 애나 본드_표지커버.jpg

 

 

도서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애나 본드 그림

원제: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저자: 루이스 캐럴 지음 / 애나 본드 그림 / 고정아 옮김

출판사: 월북

발행일: 2020년 12월 24일

페이지: 192p

판형: 188*245mm

정가: 22,000원

ISBN: 979-11-5581-326-3 (03840)

 

 



[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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