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인이 된 버스 운전사와 우편배달부 [영화]

우리 마음속 시인의 정체성을 찾아서
글 입력 2021.01.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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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낯선 우리와 우리 곁의 시인들



‘도대체 무슨 말이지?’

 

교과서 속 실린 시들은 문장 그대로 쉽게 이해되는 법이 없었다. 하나의 단어 안에 함축된 의미를 찾아야 했고(그렇게 정답을 맞혀야 했다), 자연스럽게 시어와 일상어는 구분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과 시와의 거리는 벌어져 왔다. 시가 낯선 사람들에게 시는 알쏭달쏭, 이해할 수 없는 단어와 단어의 조합, 문장의 나열로 느껴진다.

 

여전히 시가 낯선 사람들에게 우리가 시를 읽으면 어떤 점이 좋은지, 나아가 우리가 시를 쓰는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 위한 영화들이 있다. 이 영화들 속 주인공의 직업은 각각 동네의 버스 운전사와 작은 마을의 우편배달부이다. 우리가 스쳐 지나가며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

 

이들은 특별한 뜻이 있어서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살면서 자연스레 그것을 글로 옮긴다. 그리고 그것은 시가 된다.

 

 

 

시선이 시가 될 때


 

패터슨_영화포스터[크기변환].jpg



영화 <패터슨(Paterson, 2016)>의 주인공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 주의 작은 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이다. 그의 하루는 규칙적인 반복으로 이뤄진다. 아침 6시에서 6시 반 사이에 일어나고, 시리얼을 우유와 함께 먹고, 직장에 출근해 23번 버스를 몰며 동네 곳곳을 누빈다. 점심시간에는 혼자만의 공간에 앉아 밥을 먹고, 다시 일하고, 퇴근 후에는 아내 로라와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이후 반려동물과 산책을 하며 동네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매일 비슷한 일과로 이뤄진 그의 하루하루에서 변주되는 것은 그가 쓰는 시이다. 하나의 시는 하루가 지나면 단어 하나라도 달라진다. ‘퇴고’의 과정을 패터슨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의 시들은 패터슨의 손길 아래 조금씩 변한다. 온전하게 그의 마음에 들 때까지 말이다. 이렇게 그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다른 주제와 다른 행을 가진 시가 탄생한다.

 

영화는 패터슨의 어느 일주일을 다룬다. 그의 옷차림과 날씨로 계절을 짐작해보지만, 분명 다른 계절의 어느 일주일도 아마 비슷한 나날일 것이라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와 항상 함께하는, 그가 자신의 시를 쓰는 일명 ‘비밀 노트’는 날마다 한 장 한 장 다르게 쓰여 글자로 가득한 페이지의 수를 늘려간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쓰는 시는 어떻게 조금씩 쌓여갈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일상의 ‘순간’들을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패터슨의 시는 식탁 위에 놓여있던, 패터슨과 로라가 자주 사용하는 성냥갑에서 시작된다. 성냥갑을 아내인 로라가 쓰는 순간, 성냥갑이 생긴 모양새, 이런 작은 것들이 시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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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에게 시의 영감이 되어주는 '오하이오 블루팁 성냥'

 


패터슨은 버스를 몰면서 달라지는 승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버스 창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기도 한다. 패터슨의 시선을 보여주는 영화 속 장면들은 일상적이지만 아름답다. 예를 들어 일어난 직후 눈앞에 보이는 아침햇살이 벽에 드리우는 순간과 같은 장면들. 패터슨의 시선을 옮긴 이런 장면들은 아마도 나중에 패터슨의 시가 되어 줄 것이다.

 

하루하루가 똑같아요. 우리는 어쩌면 이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는다. 하지만 자세히 각자 자신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그 안에서 우리의 일상은 똑같은 순간들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그것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패터슨의 시선을 따라가는 우리의 시선은 함께 특별해진다. 그렇게 그의 시선을 옮긴 시를 따라 읽으며 시의 매력에 시나브로 빠져들게 된다.

 

 

 

시인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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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 The Postman, 1994)의 제목은 이탈리아어로 ‘우편배달부’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주인공 마리오는 작은 섬인 칼라 디소토에 사는 어부의 아들이다. 그는 우연히 그가 사는 마을로 망명을 오게 된 유명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우편을 책임지게 된다. 한 사람을 위한 (임시) 우편배달부가 된 것이다. 작은 마을의 우편배달부와 유명한 시인의 만남으로 이 영화는 시작된다.

 

마리오는 어느 날 마을의 한 주점에서 일하는 베아트리체 루소에게 반하게 되지만, 그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런 마리오가 선택한 방법은 자신의 마음을 글로 옮겨서 전하는 것이었다. 그 글은 파블로 네루다에게 배운 은유로 가득 차 있다. 온전한 마리오의 마음을 옮긴 시, 그 시들은 마리오와 베아트리체를 잇는 다리가 되어 그들이 부부의 연을 맺도록 만들어준다.

 

처음에는 유명한 시인이 자신이 사는 마을에 오는 것이 신기해서 궁금증을 갖게 된 ‘시’라는 것은 이후 마리오의 삶을 조금씩 바꿔 나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훌륭한 수단이 되어주었고, 삶의 못 보던 부분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으며, 결과적으로 마리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만들어 준다.

 

마리오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짐을 다음과 같은 장면의 변화를 통해 영화는 보여준다. 파블로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처음으로 이 섬에서 아름다운 것에 대해 말해 달라고 했을 때, 마리오는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 베아트리체 루소를 말한다. 시간이 지난 후 나중에 파블로 네루다가 섬을 떠난 뒤, 마리오는 그에게 다시 섬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다음의 목록들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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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가 '7번.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담는 장면

 

1번. 바다의 작은 파도

2번. 큰 파도

3번. 절벽의 바람 소리

4번.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 소리

5번.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6번. 신부님이 치시는 교회의 종소리

7번.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8번. 뱃속에 있는 파블리토의 심장 소리

 


아름다움은 자신과는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마리오는 자신의 주변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숭배했고 자신을 그저 우편배달부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마리오는 결국 자신만의 시를 써 내려간다.

 

 

 

새하얀 종이에서 시는 쓰여진다



두 영화 모두 주인공들이 자신이 시인임을 부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패터슨은 자신의 비밀 노트를 남에게 보여주지 않고 혼자 간직한다. 아내 로라가 자신의 시를 좋아해 주며, 그의 비밀 노트를 복사해 놓기를 바라는 부탁에도 왠지 얼떨떨해하다가 겨우내 약속한다. 마리오 역시 파블로 네루다가 자신에게 준 노트에 어떤 글자도 써 내려가지 못하며 자신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평한다.

 

하지만 자신의 시선과 목소리를 글로 옮겨낸 그들을 분명 ‘시인’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자신의 글을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패터슨은 분명 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좋아하는 시인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와 자신을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마도 그저 자신은 ‘버스 운전사’라고 남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마리오 역시 유명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보는 세상과 자신의 세상은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시의 세계는 자신의 세계가 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을 시인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들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과 비슷하다. 시인의 정체성은 나와는 거리가 먼일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시인의 정체성을 마음속에 갖는 순간 분명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라고 이 두 영화는 말한다. 패터슨과 마리오의 이야기는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욱 더 감각적으로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서 시를 읽고 쓰기를 권한다.

 

이 영화들을 보고 나면 나의 시선이 다채로워지기 위한 일에 비해 준비는 간단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도 시인이라는 정체성과 새하얀 종이, 펜 하나면 충분하다.

 

 

[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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