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의식을 맡긴 채 보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도서]

글 입력 2021.01.1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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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애나 본드 그림)는 우리가 어릴 적 한 번쯤 동화로 읽어봤을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의 이야기에 라이플 페이퍼 사의 디자이너 ‘애나 본드’의 풀 일러스트로 꾸며져 상상에 색감을 더했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앨리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번역의 다양함과 함께 그의 모험이 건강하고 안전하길 바라는 진심 어린 시선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의 큰 틀은 변하지 않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변해가는 우리의 시선은 매번 다르기 때문에 그 매력이 더 증폭되어 다가온 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왜 지금 다시 앨리스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이다혜 기자는 책 서문에서 '이상한 나라'는 우리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익히고 적응해야 했던 어른의 세계 그 자체일 것이며, 이 세계는 혼란으로 가득 차 있고 뜻이 다른 것들을 같다고 믿는 사람들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책을 읽는 어른들은 알아차리게 된다. 그 사이에서 오직 아이들만이, 뜻이 통하지 않는 것들을 찾아낸다고 말한다.

 

이상한 나라는 앨리스와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 말장난은 계속되며 그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다. 세세한 것을 따지고 들기엔 너무나 바쁜 삶을 살고 있어 여유가 없는 어른들을 대변하는 것이진 않나 생각해본다. 어렵게 돌아가기보다는 쉽고 간편하게, 대충 아우르는 문장으로 서로를 설득하고, 긴 설명을 듣기보다는 ‘저자의 목을 베라’고 말하며 속단하고 끝을 내는 것이 ‘이상한 나라의 여왕’ 입장에서는 훨씬 쉬운 일이니 말이다.


책을 읽으며 고민했다. ‘어른 언어’를 조금은 알 것 같은 나를 축하해야 할까? 그래도 앨리스처럼 여전히 모르는 게 많아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이 고민은 이내 다음 질문에 답이 되었다.


 

하얀 토끼를 따라 숲속으로 사라지는 소녀의 뒷모습에서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나도 어쩔 수 없이 점점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가 ‘어른 언어’를 쓰게 될 텐데, 그렇다면 하얀 토끼를 따라가는 아이들만은 ‘이상한 나라’에서 이왕이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혼돈은 있더라도 최소한은 다치지 않고 지치지 않는 세상이 된다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곧, 그 세계를 젤리처럼, 솜처럼 만들어 굴로 들어가는 작은 아이에게 미소를, 잠시 경험한 세계를 그저 ‘오후의, 잠깐의 달콤했던 단잠’으로 만들어 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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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어린이였을 수도 있는) 이상한 나라의 어른들은 각기 다른 캐릭터를 가진 어른을 생각나게 한다. 앨리스를 환영하면서도 본인들의 잣대로 평가하거나 “꼬마는 조용히 해”라며 언뜻 아이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나 꼬마의 말은 신경 쓰지 않는 꽃봉오리들, 차를 마시며 정신 나간 다과회를 즐기고 있던 토끼와 모자 장이 등. 당시의 현실을 풍자했다지만 어쩐지 지금에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담배를 뻐끔 피우며 앨리스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하던 애벌레는 특히 기억에 남았다. 너는 누구니? 란 질문을 반복하는 모습이 본인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말로도 느껴지고, 어린이의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쳐 어른에게 답을 구하는 게 아닌 (사실은 귀찮아서 그랬을지언정)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를 주려는 모습은 아니었나, 괜히 씁쓸했기 때문이다. 애벌레의 조언은 그런 것이었을까.


때론 어지럽게 질문을 뿜어내던 앨리스는 이내, 이상한 나라에 대해 이해하기를 포기한다. 앨리스가 포기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이야기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은 상태로 읽어갔던 나는, 앨리스의 선택이 기특하기만 했다. 그저 천천히 상상하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나처럼, 책에 의식을 맡긴 채 넋 놓고 보는 것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즐기는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곳곳에 애나 본드 특유의 그림채와 함께 앨리스와 함께 꿈같은 시간을 보낸 나는, 약간의 몽롱함과 함께 책을 덮었다.


 

시작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간 다음에 거기서 멈춰.

 


웃어넘긴 왕의 대사의 한 부분이다. 곱씹어보면, 어린아이에게도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게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어렵게 표현해내는 것 같다. 도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런 오묘함을 가지고 있다. 아이 같으면서도 어른이 되어가는. 한때는 앨리스였고, 한때는 어른이었을 독자에게, 책은 ‘이상한 나라만이 가진 매력’을 통해 때론 아이처럼 흘려보내고, 어른처럼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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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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