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를 위해 쓰는 마음 [사람]

나는 아직 충분히 마음을 쓸 수 있다.
글 입력 2021.01.0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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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려보니 새해다.



코로나 19는 해를 넘기는 순간까지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고, 나는 처음으로 집과 가족에게서 떨어져 오롯이 혼자 연말과 새해를 보내야 했다. 홀로 맞이한 ‘처음’은 생각했던 만큼 끔찍하거나 외롭진 않았다.


온종일 밀린 방송 프로그램을 보며 시간을 보냈고, 틈틈이 요리해서 끼니를 챙기고 집 구석구석을 깨끗이 쓸고 닦았다. 그동안 제대로 펼쳐 보지 못한 책들을 쌓아두고 침대와 책상을 오가며 마음 가는 대로 읽기도 했다.


저녁이 되면 소중한 사람들에게 보낼 연하장을 짬짬이 만들며 고요하면서도 부산스럽게 해를 넘겼다.


4평 남짓의 정사각형 공간 속 외부와 단절되어 흐르는 시간 틈으로 때론 고독이 밀려들기도 했다. 말 걸어줄 사람이 없으니 자연히 생각에 잠기는 순간이 잦았고, 어쩔 수 없이 마음은 단 한 순간도 내 마음처럼 풀리지 않은 지난 시간들과 마주해야 했다. 뭐가 이리 답답하고 막막하고 억울한지, 모두 비슷한 상황일 거라 생각해봤자 내겐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다.


억울한 마음이 컸으리라. 세상을 경험하고 느끼며 그 감각을 공유하는 즐거움으로 뛰었던 맥박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를 이름만으로 더듬어 피해야 하는 현실에 그저 뚝- 하고 잘려 나갔으니까. 그 어떤 말로도 쉬이 마음을 어루만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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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졸업했어야 했다. 교수님과 동기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일 년을 달려, 졸업과 동시에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내 온 열정을 쏟아부었어야 했다. 모든 불확실성은 당장이라도 출발선을 박차고 나갈 만큼 부딪힐 준비가 되어 있던 내겐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지금껏 그래왔듯 극복하면 그만인 것이었다.


그러나 한순간 세상은 멈췄고, 돌진할 준비가 된 내 앞의 많던 길들이 하나씩 끊어지는 걸 목도했다. 나는, 그저 타오르는 열정을 해소하지 못해 마음을 새하얗게 연소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내 능력이 모자라서, 내 재능이 부족해서 돌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거라고 흔적도 남지 않을 만큼 나를 잘게 찢었다.


내 탓이 아니었지만 탓할 데가 없어 나를 공격했던 수많은 밤사이에 한 학기를 억지로 마쳤고, 생애 첫 공식 인턴 생활을 경험했다. 지금은 다른 분야의 공모전을 준비하는 중이라 머리를 싸매며 씨름하고 있다.

 

이렇게 자꾸만 무기력해지는 몸과 정신을 붙잡으려 뭐라도 도전하며 나를 채찍질하며 마구 달리던 중, 정신을 차려보니 2021년의 첫해가 떠 있었다.

 

 

 

'나’를 돌아본다



연휴 동안 시간이 흐르는 대로 몸 가누지 않고 실컷 뒹굴다 보니 일말의 자책감이 일어 지난 시간을 반추해보려는 마음이 조금 생겼고,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 어쨌든 이제 지났으니까’라는 생각으로 합리화하며 2020년의 내 모습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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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기억하고픈 순간이 있었고, 웃으며 보낸 날들이 있었다. 여전히 노래하고,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걸으며 계절을 지나왔다.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기회를 박탈당한 것은 변치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가족에게 큰 슬픔이 닥치기도 했고, 스스로 가두고 사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울분이 왈칵 터져 나오던 뒤편으로 달가운 시간도 함께 지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이 깨달음은 벅찬 기쁨과 감동이라기보다 무심히 지나던 담장 사이로 한 움큼의 생명을 발견한 흥감에 가깝다. 어떤 기쁨은 너무 큰 나머지 찌릿한 통증을 일으키며 감각을 거칠게 깨우기도 하지만, 이 사소하고 달가운 기쁨은 폭발 직전의 나를 겨우 달래며 4번의 계절을 여전히 함께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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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식물 '환기'와 함께한지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간다. 여건이 허락할 때 나를 위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사진첩을 뒤적이다 깨닫는다.

 

 

그 사소하고 여린 기쁨의 순간에 함께한 모든 것들은 더듬을수록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소중한 이들, 내가 좋아하는 공간, 언제 들어도 반가운 멜로디와 마음을 진정시키는 내음까지. 마치 요리에 서툰 친구가 나를 위해 차려준 어설픈 밥상처럼 기쁜 울렁임으로 차려졌다.

 

생각해보면, 내 탓이 아닌 상황에 나를 공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을 붙잡는 것만큼 나를 미워하는 일도 없다. 보내줄 것은 보내고, 나를 위해 간직할 순간과 마음을 잘 추려내는 것이 나를 위해 낼 수 있는 최선의 용기임을,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담담히 마음에 새겼다.

 

 


'너'를 위해 쓰는 마음



이렇게 남은 하루를 나를 위해 온 마음 쏟으며 보내고 1월 2일이 되자 몸이 조금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소중한 이들에게는 새해 인사를 핑계로 안부라도 전해야겠다 싶어, 형식적인 문구 대신 내가 아는 선에서 각자에게 건네고픈 말을 짧게 담아 천천히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답장이 차례로 도착하고, 생각보다 진솔한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다. 대다수가 코로나로 인해 힘들었던 한 해를 잘 보내서 다행이라고, 새로운 해에는 더 즐거운 일이 가득하길 바란다고 답했지만, 무엇보다 연락해주고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말이 되려 내 마음을 쓰다듬었다.


지난 일 년의 시간 동안, 나는 내게 손 내밀 수 있는 사람임을 간과하고 있었다. 또 누군가에게도 그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걸 잊고 지냈다. 내 탓이 아니었던 재난에 나를 탓하느라 모든 걸 뒤로하고 멍하니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간조차 후회하지 않으려 한다. 돌고 돌아 다시 찾아온 ‘나’는 이전보다는 더 단단하고 유연해졌다고 믿고 있기에 그저 나를 위해 충분히 마음을 쓰고는 나를 마주하는 ‘너’를 위해 마음을 쓰며 그 시간도 필요했다고 끄덕이면 될 것 같다.

 

 

 

마음의 자생력



지금 나는 외조부의 장례식장을 지키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마음을 조금 다독였다고 생각했더니 다시 마음을 꺾어버리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는 요즘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나는 나를 다독일 시간을 머리로 그려보며 먼저 다른 이의 마음을 보듬고, 품어주려 노력하고 있다.


나는 내 마음의 자생력을 믿는다. 누군가에겐 위태로워 보일지 몰라도, 나는 아직 충분히 마음을 나눌 수 있다. 그러니 ‘너’를 위해 쓰는 나의 마음은 위선도 동정도 아닌 응원임을, 나 자신도 잊지 않으려 애써 볼 테다.

 

그리고 투박하게나마 내미는 손마다 반갑게 잡아주는 이들의 마음마저 소중히 간직하며 ‘너를 위해 마음을 쓰는’ 한 해가 되리라는 조용한 다짐을 한다. 이 다짐이 쌓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손 내밀기 시작한다면, 더없이 기쁘겠다.


나는 우리 마음의 자생력을 믿기에.

 


[김현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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